호우총·천추총·태왕릉의 ‘#’문양의 정체…‘광개토대왕’? ‘운수대통’?[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을묘년 국강상 광개토지호태왕 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우十)’. 1946년 5월14일이었다. 경주 노서리 140호분(돌무지덧널무덤)을 파고 있던 국립박물관 조사단이 ‘발굴 일지’의 표현대로 ‘쎈세이순’한 명문 유물을 찾아냈다.
고급의 청동제 그릇 밑바닥에 아로새겨진 ‘광개토대왕(재위 391~412)’, 그 분의 묘호가 빛났다. 해방 후 첫번째 ’우리 손 발굴’에서 이뤄낸 개가였다. 당시 신문(동아일보 5월25일)의 보도처럼 명문 유물의 착안점은 두가지였다.
■광개토대왕비 판박이
“(청동 그릇에) 만주 호태왕비문에서와 같은 명문이 있다. 약 1530년전 당시 서거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유업을 사모하여 제작한 그릇을 신라에 보낸 것….”
신문 보도에 나왔듯이 명문은 1880년 무렵 중국 지안(集安)에서 발견된 광개토대왕 비문을 쏙 빼닮았다.
두 명문의 필체는 물론 글자구성과 내용도 거의 같았다. 마치 동일인의 필적 같았다.
그렇다면 ‘광개토대왕’ 이름이 찍힌 청동제 그릇이 왜 신라의 수도 경주의 돌무지 덧널무덤에 고이 묻혀있었을까.
우선 ‘을묘년’의 간지가 눈에 띄었다. ‘을묘년’은 광개토대왕 서거 3년 후인 415년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광개토대왕 서거 3주기(혹은 3년상 후 안장 1주년)를 맞아 대왕의 업적을 추모하려고 제작한 기념품일 가능성이 짙다. 연구자들은 ‘노서리 140호분’의 이름을 시그니처 유물(청동제 용기)을 딴 ‘호우총(壺우塚)’이라 했다.
■인질 복호의 유품
그럼 누가 언제 이 ‘광개토대왕’의 묘호가 찍힌 청동용기를 신라로 가져왔을까.
유력한 인물이 <삼국사기>에 등장한다. 내물왕(356~402)의 아들이자 눌지왕(417~458)의 동생인 복호(생몰년 미상)이다.
“412년(실성왕11)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갔던 복호가 418년(눌지왕2) 나마(17관등 중 11등) 박제상(363~419)과 함께 귀국했다”(<삼국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동용기를 가져온 인물도, 이 무덤(호우총)의 주인공도 복호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맹점이 있다. 호우총의 연대가 출토 유물로 미뤄볼 때 6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개토대왕’ 명문이 찍힌 청동용기의 제작시기(415년)와는 100년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복호설’을 따른다면 어떨까. 조상인 복호의 유품을 가보로 간직하고 있던 직계 자손 무덤일 수도 있다.
■10번째 ‘한정판’
이 17자 명문 중에는 160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남아있다.
우선 맨 마지막 부호(혹은 숫자)인 † 혹은 십(十)이다. 발굴단은 공식보고서에서 “이 †(十)자를 다만 여백을 채우는 의미로 보아야 할 줄 안다”고 얼버무려 놓았다. 한마디로 ‘해석불가’ 판정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을 숫자인 십(十)으로 읽으면 어떨까. 415년 광개토대왕 서거 3주기 기념품을 ‘리미티드 에디션’, 즉 한정판으로 제작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호우총에서 발견된 청동용기는 ‘광개토대왕’ 이름이 찍힌 한정판(10번)이 되는 셈이다.
물론 그 또한 추정일 뿐이다.
■해시태그 운동의 원조?
그보다 더 해석불능인, 알쏭달쏭한 부호 혹은 글자가 명문 윗부분에 있다.
부호라면 ‘#’으로, 글자라면 우물 정(井)자로 읽어야겠다. #이라면 어떨까.
고구려가 ‘해시태그(hashtag·특정 단어 또는 문구 앞에 #를 붙여 관련 정보를 묶는 꼬리표) 운동’의 원조인 셈인가. 우스갯 소리지만 이 #(혹은 井)의 정체를 두고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설왕설래 중이다.
1946년 발굴보고서는 ‘†(十)’자와 마찬가지로 “#(井)자 역시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고 여백을 메우는 한 장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좀 무책임한 것 같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될 일을, 굳이 ‘여백을 메우는 장식’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었을까. 다른 곳도 아닌 국립박물관이?
■소설가의 상상력
이 #(혹은 井)과 관련해서 매혹적인 해석을 내린 이가 있었다. 소설가 최인호(1945~2013)였다.
최인호는 소설 <제왕의 문>에서 # 문양을 ‘하늘의 우물(井)인 백두산 천지’라 풀었다.
그러고는 정복군주 광개토대왕과 욱일승천하는 고구려를 상징하는 문양이라 했다. 소설가 다운 상상력이었다. 그러나 고고학·역사학계에서 최인호의 설을 ‘그건 소설일 뿐이야’라고 치부할만한 견해를 펼친 연구자들은 없었다.
그 사이 #(井)자와 †(十)자는 물론이고 Ⅹ, 卍, 小, 工 같은 수수께끼 같은 문양(혹은 문자)들이 새겨진 일상 토기가 쏟아져 나왔다. 지안(集安)과 변경 지역(남한) 등 고구려는 물론이고 백제나 신라 영역에서도….
그러니 더욱 해석이 난감해졌다. 호우총 청동용기에는 ‘광개토대왕’ 명문과 함께 뭔가 심오한 철학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 틀림없는 #(井)와 †(十)를 아주 정연하게 새겨져 있지 않은가. 그렇게 지체높은 명문용기와, 아무렇게나 각종 부호(글자)를 ‘찍찍’ 그어놓은 일상 토기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는 걸까.
그렇지만 1946년 발굴 이후 8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井) 혹은 †(十)을 다룬 ‘단독 논문’이 사실상 전무했다.
■182건의 #유물
그런데 최근 한국목간학회가 주최한 한·중·일 학술대회에서 반가운 제목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고구려 연구자인 여호규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고구려 유적의 #자 출토 현황과 그 의미’ 논문이었다.
필자는 ‘#(井)’을 주제로 쓴 단독 논문을 처음 봤기에 학술대회장에서 여교수의 발표를 경청했다.
여교수는 호우총 청동용기 뿐 아니라 지안의 국내성은 물론 남한 지역에서 출토·수습된 ‘#(井)’자를 총정리했다.
“고구려 초기 도읍지인 국내성 지역에서 132건(최대 229건), 남한 지역 50건(최대 56건) 등 182건의 ‘#’ 유물이 확인됐다. 국내성에서는 ‘글씨 새긴 돌(석각·3건)’, ‘구름무늬 막새(권운문와당·4건)’, 기와(125건) 등 다양한 유물에서 #’자가 확인되지만, 남한지역의 사례는 모두 토기에 새겨진 것이다.”(여호규 교수)
■광개토대왕과 새
자료 정리와 함께 기존의 연구 성과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즉 부호설(#)과 문자설(우물 정·井)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호우총 #(井)과 †(十)을 그저 ‘여백을 메우려는 장식 부호’로 치부했던 1946년 발굴단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장식 부호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런 #부호에는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는 이른바 ‘벽사(辟邪)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즉 음(陰)의 사악한 기운을 굴복시키는 숫자인 ‘구(九)’를 단순화한 기호라는 것이다.
또 최인호 소설가의 ‘#=광개토대왕 상징 기호설’과 함께 ‘#=하늘과 연관된 부호’로 보는 연구자도 있다. 지안(集安) 산성자 산성 출토기와에서 보이는 새 문양에 착안한 견해다. 새는 예부터 하늘계와 지상계를 연결해주는 전령사로 알려져 있다.
■‘대부#대부#’과 ‘대부井대부井’
단순한 부호가 아니라 문자, 즉 ‘우물 정(井)’자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특히 문자설을 따른다면 ‘우물 정(井)=물과 비’를 연관짓기 쉽다. 즉 비나 물을 관장하는 신 혹은 용왕과 관련된 명문이나, 물을 중시하는 농경의례와 제사 등 주술적인 목적으로 해석한다. 김해 예안리에서 출토된 ‘정물(井勿)’ 명문을 두고 ‘井(우물)+勿(물)’, 또는 ‘井(우물)+勿(ㄹ)’와 같은 이두 표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
‘문자설’은 아차산 시루봉 유적(고구려) 등에서 ‘井(#)’가 ‘大夫(대부)’라는 글자와 함께 출토됨으로써 힘을 얻었다.
즉 시루봉에서는 ‘大夫#大夫#’으로 이어지는 명문 토기가 출토됐다. 물론 이 명문은 ‘대부#대부#’, 즉 ‘글자(대부)+부호(#)+글자(대부)+부호(#)’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글자(대부)+글자(정·우물)+글자(대부)+글자(정·우물)’ 등으로 6자 전체를 하나의 문구로 볼 수도 있다는 견해가 등장했다. ‘대부정(大夫井) 대부정(大夫井)’으로 읽어야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정(井)’은 우물이 지니는 생명성과 보편성을 상징하는 길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대길=#’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제기된 ‘#(井)’ 관련 견해를 정리한 여호규 교수는 본격적으로 ‘자신 만의 학설’을 설파한다.
즉 호우총 명문(415)에 등장하는 ‘#(井)’의 기원을 찾는데서 출발한다.
여교수의 시선을 잡아끈 자료는 고구려의 초기 도읍인 지안에 조성된 서대묘와 천추총, 태왕릉 등이었다.
서대묘는 4세기 전반, 즉 331년 서거한 미천왕릉으로 추정된다. 천추총과 태왕릉은 4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세 고분은 호우총보다 적어도 30~80년 먼저 조영된 왕릉급 고분이다.
이중 가장 먼저(4세기 전반) 조성된 서대묘의 장대석에서 ‘대길(大吉)’이라는 명문이 확인됐다.
‘운수 대통’ ‘만사형통’을 의미하는 ‘길상구’이다. 그런데 서대묘보다 늦은 시기(4세기 후반)에 조성된 천추총과 태왕릉의 계단석과 지대석(건축물 터에 쌓은 돌)에는 ‘대길(大吉)’이 아니라 ‘#(井)’가 새겨져 있다. 즉 4세기 전반까지 고구려 왕릉급 무덤에 쓰인 길상구가 ‘대길(大吉)’에서 4세기 후반이 되면 ‘#’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여교수는 이 논리를 보강하는 자료로 국내성 유적에서 확인된 ‘구름무늬 막새’(권운문 와당)를 선보인다.
즉 314~324년 제작된 구름무늬 막새(지안제2소학교와 국내성터 남문 안쪽 출토)의 한가운데 원 안에 ‘대길’이라는 명문이 보인다. 또 서대묘 출토 ‘구름무늬 막새’에도 ‘대길(大吉)’을 연상시키는 ‘대(大)’와 ‘길(吉)’자가 역시 원 안에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고분들보다 50년 이상 늦게 조성된 천추총 출토 ‘구름무늬 막새’의 원 안 명문을 보라.
‘#(井)’ 문양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시차를 두고(4세기 전반과 후반) 제작된 ‘구름무늬 막새’의 원 안 문양이 ‘대길’에서 ‘#(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떨까. ‘#(井)=운수대통(大吉)’의 의미였다는 것이다.
■운수대통?
그렇다면 남한 지역인 아차산 시루봉 보루에서 출토된 항아리 명문인 ‘大夫#(井)大夫#(井)’은 어떤 의미일까.
여호규 교수는 이 명문의 ‘#(井)’은 독립적인 부호(#)가 아니라고 추정했다. 즉 ‘大夫#’는 세 글자가 아니라 ‘대(大)’와 ‘夫+#’로 된 두 글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大夫+#’은 ‘대길(大吉)’의 이체자로 보았다. 그러니까 ‘夫+#=吉’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시루봉 보루에서 출토된 ‘대부+#’ 명문 역시도 ‘운수대통’을 뜻하는 ‘대길(大吉)’이라는 것이다.
항아리를 제작하면서 ‘운수대통 하라’ ‘만사형통 하라’는 축원 글귀를 새겼다는 것이다.
어떤 근거일까. 여교수는 350년 무렵 제작된 국내성 출토 막새의 명문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즉 ‘夫一’이라는 글자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이것을 ‘부일(夫一)’, 두 글자로 읽었다. 그런데 중국 연구자 가운데는 ‘부일(夫一)’의 두 글자가 아니라 한 글자, 즉 ‘夫+一’이며, 그것을 ‘길(吉)’의 고어체로 해석하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자의 해석이 맞다면 ‘길(吉)’은 350년 무렵 ‘夫+#(井)’으로 자형을 변형하여 새롭게 창안한 글자인 것이다.
그것이 때에 따라서 ‘夫+一’나 혹은 ‘#(井)’ 등으로 부호화 해서 표현되었을 것이다.
여 교수는 또하나의 근거를 댄다.
“시루봉 보루 출토 항아리의 ‘大夫#大夫#’ 명문에서 ‘#’는 ‘夫’자와 반대 방향으로 거꾸로 새겼다. 혹시 항아리의 명문을 새긴 이가 우물 정(井)자를 정식으로 새긴 것이 아니라 ‘夫’자와 한 글자임을 나타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반대 방향에서 거꾸로 새긴 것은 아닐까. ‘夫+#’자라고? 그리고 이 ‘夫+#’는 ‘길(吉)’이라는 단어의 이체자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견해의 한계가 있다. ‘길(吉)’의 이체자로 꼽은 ‘夫+#’을 아직까지는 어떤 자전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발표자 본인도 고백했다. 하지만 이 논문에는 1946년 발굴 이후 본격 연구 없이 단편적으로 다뤘던 주제를 두고 수십년간 고민해온 연구자의 분투가 녹아있다.
“‘2005년부터’였습니다. 중국측이 고구려 고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펴낸 4권의 고구려왕릉 보고서에 나온 대길(大吉), #(井)자 유물의 사례를 보고 준비해왔습니다.”
20년 준비한 논문 한 편이란다. 길(吉)의 고어체(夫+#)를 찾지 못했지만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공유하고 싶었단다.
이 논문이 1946년 발굴자가 ‘그저 여백을 메우는 장식 부호’로 치부했던 ‘호우총 #(井)자의 비밀’을 탐구하는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
■동북아 공용의 기호
여기서 드는 한가지 궁금증 하나. 415년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찍힌, 귀하디 귀한 청동그릇에 새겨진 ‘#(井)’자가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훗날에는 일반 백성들이 뭇 토기에 낙서처럼 쓱쓱 새겨넣을 정도로 대중화 했을까.
여호규 교수의 견해를 긍정한다면 이 대목에서 ‘입춘첩’을 떠올리게 된다.
4세기 초중반~5세기 초반까지 왕릉급 무덤, 그것도 광개토대왕의 제사 때 사용된 ‘길상구’가 어느 순간에는 대중화되었다는 것. 점차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널리 수용되었고, 그것이 이웃나라인 백제나 신라, 일본 등 주변국에도 널리 전파되었다는 것. 그래서 #(井)은 동북아 공용의 상징부호가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井)은 하늘, 십(十)은 땅?
이 대목에서 필자가 들춰본 <주역>의 구절을 소개해본다.
“…우물은 고칠 수 없으니(不改井) 마셔도 없어지지 않고, 놔둔다고 넘치지도 않는데(无喪无得) 오고 가는 이 모두 길어 먹으니(往來井井) 두레박 줄이 짧아 물을 퍼올리지 못하고 쪽박을 깨버리면 흉하다.”(<주역> ‘수풍정’)
무슨 말인가. 물이 나오는 원천은 고치면 안되듯 모든 제도나 법령 등은 백성의 민생안정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또 ‘정(井)은 통하는 것’이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모든 백성들이 고루 잘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마지막까지 백성을 위한 마음을 버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주역의 대가인 야산 이달(1889~1958)은 “비어있는 정(井)의 중심에 음양이 교차하는 십(十)을 넣으면 전(田)이 되니 자연의 이치와 인간만사가 이 속에 있다”고 해석했다.
결국 <주역>을 풀면 정(井)은 하늘이고 십(十)은 땅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호우총의 16자 명문의 맨 위와 맨 마지막의 #(井)과 †(十)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백성을 위한 광개토대왕의 마음씨가 녹아있는….(이 기사를 위해 여호규 한국외대·이병호 동국대·김재홍 국민대 교수, 고광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심광주 한국성곽연구소장, 이용현 전 경북대 교수가 자료와 도움말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참고자료>
여호규, ‘고구려 유적의 #자 출토 현황과 그 의미’, <제3회 한·중·일 목간연구 국제학술대회-동아시아 고대의 주술과 문자>, 한국목간학회·중국사회과학원 간백(簡帛) 연구중심·일본목간학회 공동주최, 2024
고광의, ‘남한 출토 고구려 토기 명문 연구’, <목간과 문자>27호, 한국목간학회, 2021
김재홍, ‘신라 왕경출토 명문토기의 생산과 유통’, <한국고대사연구> 73, 한국고대사학회, 2014
박찬규, ‘집안지역에서 최근 발견된 고구려 문자자료-1990∼2003년 조사보고를 중심으로’, <고구려발해연구> 19, 고구려발해학회, 2005
백종오, <고구려 기와의 성립과 왕권>, 주류성출판사, 2005
심광주,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출토 명문자료에 대한 검토’, <목간과 문자> 4호, 한국목간학회, 2009
국립박물관, <호우총·은령총 발굴조사보고서>, 을유문화사, 1948
서울대박물관·구리시 등, <아차산 시루봉 보루 발굴조사 종합보고서>, 2002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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