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잘 있어요, 서울
다음 달이면 월세살이 한 지 딱 2년이다. 집주인 계좌에 마지막 월세를 부치며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잘 살다 갑니다.” 그렇게 2년 남짓한 서울 생활의 끝을 통보했다.
서울로 올라온 계기는 갑작스러웠다. 출시한 지 1년 안 된 미디어 플랫폼 스타트업 회사에서 헤드 헌팅을 당했다. 파격 인사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황당 채용 정도가 그나마 적확한 단어 같다. 당시 나는 12년 동안 공장 일만 한 사람이었고 한글 문서밖에 쓸 줄 몰랐다. 화이트칼라 노동 경험이라곤 하나도 없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서울에 올라와 반 년 동안 즐겁게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러다 첫 책이 나왔다. 여러 가지 운이 겹쳐 내 능력을 벗어난 성공을 거두었다. 행복한 경험이었지만 직장 생활엔 되레 마이너스였다. 강연과 외고에 신경 쓰느라 회사 생활에 소홀했다. 무엇보다 초조했다. 작가로서 이름값은 올라가 있었는데 정작 본업에서 실적과 능력은 형편없었다. 성과는 도무지 나오질 않았고 회사 업무에서 계속 겉돌았다. 좋은 동료가 많았는데도 출근만 하면 혼자가 된 느낌이었다. 못 버티고 1년 3개월을 채우고 회사에서 나왔다. 퇴사를 빙자한 도망이었다.
백수 생활이 시작됐다. 글쓰기 자신감과 의욕은 뚝 떨어져 있었다. 청탁받은 글의 마감은 어찌저찌 맞췄지만 ‘내 글’이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소설가가 꿈이었고 간신히 계약서까지 썼는데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 괴로워서 매일 술만 마시며 무직으로 지낸 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 인천의 한 대기업 물류센터로 일당직을 하러 갔다. 단편소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글감은 도무지 안 떠올라 선택한 궁여지책이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딱 하루만 일했을 뿐인데 쓸 거리가 넘쳤다. 눌러앉아서 열흘 만에 한 편을 완성했다. 그제야 확신했다. 아, 나는 앉아서 글 쓰는 사람이 아니구나. 직접 몸으로 부딪쳐야만 글이 나오는 사람이구나. 원고를 보내면서 입사 초기 내 모습이 떠올랐다. 2022년 6월 대우조선 파업 당시, 난 내가 이 사태를 다른 어떤 사람보다 잘 정리해서 쓸 수 있으리라 오판했다. 자신만만하게 거제도로 내려갔지만 막상 할 수 있는 일이 전무했다. 내겐 언론사 명함도, 취재원 연락처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제 난 ‘현장 사람’이 아니라 외부인이었다. 일하면서 자연스레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를 바깥에선 마치 1등급 보안 사항처럼 알아내야만 했다. 겉핥기로 써낸 기사는 형편없었고 출장비만 날려 먹은 채 거제도행은 마무리됐다.
부끄럽고 괴로운 이 기억은 회사를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성찰의 경험으로 다가왔다. 바깥에선 접근할 수 없고 오로지 현장에서만 나오는 글이 있다. 사실을 깨달은 순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경남으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은 너무 편하다. 내 글은 불편함에서 나온다. 서울 주민들이 숨 쉬듯 누리는 요소, 괜찮은 일자리와 편안한 교통, 천만 단위의 인간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편의성에서 배제당했을 때 비로소 생동감을 가진다. 그토록 불편한 서울 밖에서 해답을 찾아내고 싶다. 내 고향은 정말로 끝물일까. 이제 지방은 쇠락이 예정됐고 좋은 일자리 따윈 없으니 천천히 괴사만 기다려야 할까. 아니라고 믿고 싶다. 다 떠나서, 옳지도 않고 나라 미래에 바람직한 현상도 아니다. 이미 저명한 학자들이 지방 소멸을 경고하며 균형 발전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있다. 그 주장에 한 스푼이나마 얹고자 지방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당분간 안녕이다,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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