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존의 窓] 잘 있어요, 한국
저평가 안타깝던 초기와 달리, 이제는 K컬처 세계를 매혹
친절·호기심·활기가 한국인의 매력... 한국 홍보 대사 꿈꾼다
독자 여러분께.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지낸 생활을 마치고 떠난다. 1984년부터 지금까지 세어보면 무려 총 19년을 한국에서 보냈다. 가회동 집에서 출근할 때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며 그동안 살아온 이 동네, 이 도시, 이 나라가 내게 준 모든 것을 되돌아보았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이곳저곳을 보니, 지난 수십 년 동안 전통 건축물을 보존하면서도 현대 건축물과 가게들이 도시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한 신중한 노력이 눈에 띈다. 공원과 박물관도 도시 곳곳에 점점 더 생겨나고 있다. 전통 가옥인 한옥을 중심으로 활기차게 어우러진 이곳은 완전히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입이 벌어질 정도로 멋진 궁궐과,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지닌 이곳이,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아 저평가되는 것 같아 늘 답답한 마음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이제는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와 한국이 더 이상 나만 아는 “비밀”이 아니라는 사실에 괜스레 아쉽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15년 전만 해도 영화와 TV 프로그램 스트리밍 플랫폼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을 줄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뿐더러, 한국의 콘텐츠가 그 플랫폼에서 세계를 매혹하리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 인디애나에 있는 고향 친구들에게 한국에 산다고 말하면 “좋겠네” 또는 “거기가 좋아?” 하는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 지금은 친구들이 눈에 띄게 흥분하며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또는 멋진 한국에 사는 나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말해 주곤 한다. 그리고 나 역시 한국을 ‘’정말 멋진” 장소로 기억할 것이다.
고향을 떠나는 사람이 그렇듯 나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이다.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 덕분에 한국은 언제나 나에게 특별했다. 조선일보의 이 칼럼을 통해 한국에서 살고 여행하며 만난 거의 모든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 감탄을 드러냈다. 미국에 돌아가 친구들과 해외여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여행지에서 갔던 관광지나 맛집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물론 한국 여행에 대해서도 산, 사찰, 음식, 문화, 현대 건축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울 여행에 관한 대화는 필연적으로 사람 이야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방문객에게 보여주는 친절함, 방문객에 대한 호기심, 방문객과 상호작용하는 한국인의 활기찬 모습 등을 기억하지 않고는 한국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고향인 인디애나주로 돌아와 ‘인디애나 글로벌 경제 서밋’에 참석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여기서는 한국의 문화, 경제,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가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K팝 그룹이나 한국 드라마가 무엇인지, 모든 한국인이 넷플릭스에서 보는 것만큼 멋지고 잘생겼는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져 들어온다(내 대답은 항상 “당연하죠!”이다). 나는 한국인들의 친절, 호기심, 그리고 활기찬 모습이 한국 문화와 엔터테인먼트가 세계 무대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요소일 거라 생각한다. 삶과 타인들에 대한 넘치는 열정이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화면과 음악을 통해 다른 세계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따로 설명할 필요 없는 아름답고 독특한 한국만의 특성이 아닐까 싶다.
이제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을 위해 아내와 나는 한국에서 지낸 추억을 짐과 함께 담아 도쿄로 옮길 예정이다. 물론 일본에서 보내는 삶도 흥미진진한 모험이 될 것이며, 가족 모두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 아니 내가 처음 한국에 도착한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국의 하루하루 또한 모험의 연속이었다. 솔직히 말해 K팝이나 한국 영화, 한국 드라마를 두고 떠나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인터넷에서 언제든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동안 칼럼을 읽어준 독자들, 한국에 있는 친구들, 그리고 매일 걸어 다니며 누린 이 아름다운 나라를 깊이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내가 경험한 한국과 한국이 가지는 의미를 돌아볼 기회를 마련해 준 조선일보에 감사 말씀을 드린다. 추후에도 자주 한국에 돌아와 한국의 정수를 알리는 홍보 대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한국어를 공부할 때 처음 배운 말이 “시작이 반”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제 막 여기서 시작하는 것처럼 느낀다. 한국에서 여정을 함께한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올린다.
‘에릭 존의 窓’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과 에릭 존 사장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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