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극성 팬덤이 키운 김호중 사태
잘못된 팬심이 이성적 판단 막아
정치서도 편가르기·낙인찍기 횡행
혐오 조장하는 팬덤정치 끊어내야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집이나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이나 컴퓨터와 씨름하는 이를 흔히 괴짜로 부른다. 타인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미국식 ‘너드(nerd)’ ‘긱(geek)’과 같은 의미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은둔’ ‘외톨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도 있지만 이면에는 다분히 천재성이 풍긴다. 실리콘밸리를 주름잡으며 전 세계 IT업계를 선도한 빌 게이츠와 제리 양, 마크 저커버그 역시 젊은 시절 ‘너드’ 취급을 받았다.
단적인 예가 가수 김호중의 음주뺑소니 사건을 둘러싼 극성 팬덤이다. 김씨와 소속사의 잇따른 거짓과 변명이 의혹을 키웠다. 김호중은 “술잔에 입은 댔지만 마시진 않았다”며 구차한 거짓말을 했다. 블랙박스 메모리 칩은 소속사 직원이 알아서 제거했다. 이런 와중에 고양·창원에서 버젓이 콘서트까지 열었다. “모든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하지만 그가 국민과 공권력을 철저히 기만한 이유는 자명하다. 15만명에 달하는 팬카페와 누적 앨범 100만장을 사들인 팬덤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사고 직후 일부 팬들은 “얼마나 힘들었으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두둔했다. 여론이 나빠지자 그제서야 팬카페는 “책임을 통감하며, 사죄의 말씀과 용서를 구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씨의 처신은 상식을 한참 벗어난다. 후회하고 반성한다는 입장문을 국민과 언론에 앞서 팬카페에 먼저 알렸다. 조사가 끝나고 모든 결과가 나오면 집으로 돌아오겠다고도 했다. 뺑소니 음주가 확인된 만큼 형량의 경중만 남았을 뿐 처벌은 불가피한데도 복귀할 생각부터 한다. 감정에 사로잡힌 팬심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킨 결과다.
김호중의 팬덤과 정치계의 팬덤문화가 다르지 않다. 아이돌·연예인만 바라보는 대중문화 팬덤은 그래도 상대방에 대한 비난은 자제한다. 오히려 방탄소년단(BTS) ‘아미’의 선한 영향력은 팬덤문화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BTS가 미국 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게 된 데는 가사나 영상을 직접 영어로 번역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며 언어장벽을 낮춘 아미의 역할이 지대했다. 빌보드 차트에 영향력을 미치는 지역 방송국엔 직접 BTS의 곡을 틀어 달라고도 했다.
급진적 팬덤문화가 횡행하는 정치판은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이념과 진영 논리에 갇힌 사람이 늘면서 확증편향이 확산되고 있다. 건전한 논의와 이성적 대안은 싸그리 무시된다. 더불어민주당 내 ‘개딸’로 불리는 강성지지층은 자신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 적이다. 당내 ‘비명’(비이재명)·‘친문’(친문재인)계를 겉과 속이 다르다며 ‘수박’으로 매도한다. 국민의힘 내 ‘친윤’(친 윤석열)계 역시 ‘반윤’ 세력을 도외시한다.
남는 건 편가르기와 집단 낙인찍기뿐이다. 팬덤정치가 혐오정치로까지 변질됐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렬 팬덤정치는 대중정당이 아닌 사당화 비판에 직면한다. 대다수 시민과 중도층을 정치 무관심으로 내모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일반적 정서와 동떨어져 있음에도 국민의 뜻이라거나 개혁이라고 주장하며 굴복을 강요한다. 강성 팬덤을 끊어내는 것은 정치인의 책임이다. 궤도를 벗어난 팬덤정치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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