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민 박사 “한글 과학적으로 설명된다면 세계화 더 쉬워” [차 한잔 나누며]

이보람 2024. 5. 29.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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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한글 작품전 개최’ 김태민 박사
나사·MS 출신 공학박사 이력
“佛 친구에게 한글 가르치다 착안
직관적인 표로 만들어 정리 나서”
한글주기율표 처음으로 만들어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연구원 출신의 40대 박사가 화학의 ‘원소주기율’처럼 ‘한글주기율’ 표를 만들어 전시회를 열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 중인 김태민(48) 박사다. 그는 7월14일까지 울산시 남구 산업문화갤러리 잇츠룸에서 자신이 만든 한글 소리 주기율표 ‘한글읭’ 등 40여개 이색 한글 작품으로 ‘소리의 가르침, 한글전(展)’을 연다.

22일 찾은 잇츠룸에서 김 박사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글의 제자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한글은 어디에나 있는 점(·), 선(ㅡ·ㅣ), 기본도형(△·□·○)으로만 만든 글자로, 논리·과학이 완벽하다”며 “한글읭은 그 논리를 한눈에 알기 쉽게 표로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민 박사가 22일 울산 남구 산업문화갤러리 잇츠룸에서 자신이 만든 한글 소리 주기율표 ‘한글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박사의 한글주기율표는 자음과 모음 그리고 태극무늬처럼 생긴 글자를 구성하는 틀(모아쓰기·템플릿)로 구성됐다. 자음은 ㅁ, ㅅ, ㄴ, ㅣ, ㅇ에 한 획씩 더해져 ㅂ, ㅈ, ㄷ, ㄱ, ㆆ이 되고, 다시 한 획을 더해 ㅍ, ㅊ, ㅌ, ㅋ, ㅎ이 되는 것을 보여준다. 모음 역시 ·, ㅣ, ㅡ를 기초로 한다. ㅡ와 ㅣ에 ·이 상하좌우에 붙으면서 ㅗ, ㅜ, ㅓ, ㅏ가 되고, 거기에 ·을 한 번 더 더해 ㅛ, ㅠ, ㅕ, ㅑ가 되는 것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러한 낱자들은 틀을 통해 쓰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빨강, 노랑, 파랑으로 된 틀 위에 ‘한글읭’을 써뒀다. 이유를 묻자 그는 “한, 글, 읭이라는 글자가 여는 소리(초성), 잇는 소리(중성), 닫는 소리(종성)를 모두 가진 음절로, 키 큰 모음, 살찐 모음, 통 큰 모음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글자여서”라고 말했다. 그의 한글전엔 한글주기율표 외에 한글발음법, 한글 뼈대 같은 다양한 전시물을 소개 중이다.

김 박사의 이력은 전시회나 한글과 거리가 멀다. 울산에서 초·중·고를 나와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졸업했고, 이후엔 대부분 미국에서 최첨단 기술을 연구했다. 2009년 나사에서 달표면 탐사기술을, 2016년엔 페이스북에서 가상현실을,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선 증강현실을 다뤘다. 1년여 전부턴 매직리프에서 증강현실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런 그가 ‘한글동자’라는 개인 명함을 만들 정도로 한글에 빠지게 된 건 2010년부터다. 당시 김 박사는 프랑스 리옹에 초빙교수로 가게 됐다. 그곳에서 한 가족의 초대를 받았는데,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한글을 가르치게 됐다. 그는 “한글 자음은 논리와 과학으로 설명했는데, 모음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이 익히 알고 있는 모음의 원리, ‘천지인’을 설명하려니 막막했다고 한다. 자음이 가진 논리와 과학의 완성도를 모음에서 비슷하게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김 박사는 “모음의 논리와 과학성만 확보하면 한글의 세계화는 물론, 교육적 파급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한글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공부했다. 실험장치는 논리를 따지는 그의 머리와 소리를 내는 발성기관으로 충분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한글주기율표가 만들어지기까지 5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한글주기율표 등을 담은 그의 책 ‘한글, 가르침의 소리’는 2015년 국제 특허로 출판했다. 그는 ‘ㅣ’를 설명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혀뿌리가 서는 것을 나타낸 글자인데, 처음엔 혀끝이 선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논리와 과학은 훈민정음해례본에 얼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다만 직관적으로, 보기 쉽게 표로 만든 사람이 없었을 뿐”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범용음성기호인 한글의 세계화를 꿈꾼다. 실제 더 많은 사람이 보다 한글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려는 계획도 있다. 그는 “그동안 우리는 한글에 대한 애착과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은 있었지만, 한글의 논리·과학에 대한 지식은 부족했다”며 “한글세계화를 위한 조직과 재원이 필요하다. 한글의 세계화에 보탬이 된다면 언제든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울산=글·사진 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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