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간극 넘어 감동 재현···'절제된 열정' 임동혁이 펼친 차이콥스키의 '낭만적 선율'

정혜진 기자 2024. 5. 29.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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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서경 음악회 '차이콥스키 VS 드보르작'의 협연자로 관객들을 맞이한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되새긴 단어는 '겸손'과 '충실'이었다.

그가 고른 곡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2001년 프랑스의 롱티보 국제 콩쿠르 결선에서 거침없는 기세와 호방한 손놀림으로 모든 이들에게 임동혁에 대한 강렬한 첫 기억을 안겨 준 곡이다.

피아니스트에게 분신 같은 곡이 있다면 임동혁에게는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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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음악회 ‘차이콥스키 VS 드보르작’
깊어지고 우아해진 임동혁의 분신 곡
"변함없이 충실하게 표현하고자 노력"
여자경 지휘 '드보르작 교향곡 8번'
선율 물 흐르듯 섬세한 균형 선보여
[서울경제]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트리니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내림나단조를 연주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늘 저를 겸손하게 하는 곡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클래식 음악처럼 저도 이 곡을 그렇게 변함 없이 충실하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임동혁 피아니스트)

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서경 음악회 ‘차이콥스키 VS 드보르작’의 협연자로 관객들을 맞이한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되새긴 단어는 ‘겸손’과 ‘충실’이었다. 그가 고른 곡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2001년 프랑스의 롱티보 국제 콩쿠르 결선에서 거침없는 기세와 호방한 손놀림으로 모든 이들에게 임동혁에 대한 강렬한 첫 기억을 안겨 준 곡이다. 피아니스트에게 분신 같은 곡이 있다면 임동혁에게는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그랬다. 임동혁은 연주 전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은 러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작곡가인 차이콥스키가 미국 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게 된 첫 곡”이라며 “수 많은 콩쿠르에 참여하던, 열정적이고 치열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라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여자경 지휘자와 눈짓을 주고 받은 직후 경건하게 건반을 어루만진 뒤 허공을 가르는 그의 손가락이 건반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2001년의 롱티보 콩쿠르 결선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는 이전보다는 섬세하고 날렵한 손놀림과 더불어 우아함이 느껴졌다. 특유의 호방하고 거침 없는 질주는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때 피아노의 카덴차가 또 다른 무아지경으로 내달리자 관객들은 숨을 삼켰다. 1악장 마지막에 콧잔등의 땀을 닦았을 때는 연신 같이 땀을 닦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어 여린 피치카토(현을 손가락으로 튕기어 음을 내는 방식)로 시작한 2악장에서 분위기 전환에 시동을 걸던 임동혁은 3악장에서 1악장 이상의 강렬한 열정을 보여줬다.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여 지휘자와 교감하며 마무리를 장식했을 때 관객들 사이에도 카타르시스가 전해졌다. 박수 갈채가 터져 나온 건 마지막 건반을 타격하기 직전이었다. 옆 자리의 관객은 “임동혁의 음악이 더욱 깊어졌다”며 엄지 손가락을 올렸다.

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임동혁(왼쪽)과 여자경 지휘자, 트리니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내림나단조를 협주한 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관객들의 환호성에 연신 인사로 화답하던 그가 고른 앙코르 곡은 차이콥스키의 ‘사계’ 10번이었다. ‘가을의 노래’로 불리는 이 곡은 흥분한 관객들을 차분하게 진정시켰다. 저마다 우리가 놓친 무언가를 떠올리며 아련함에 젖어 들었다. 연주를 마친 뒤 허공에 몇 초간 머문 그의 손은 무언가를 잡으려고 하는 듯 했다. 관객들에게도 임동혁에게도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 듯 했다.

2부에서 여자경 대전교향악단 상임 지휘자가 이끄는 트리니티 오케스트라는 ‘드보르작 교향곡 제8번 G장조’를 들려줬다. 19세기를 대표하는 체코의 작곡가인 드보르작의 서거 120주년을 맞아 선정한 이 작품은 고전파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드보르작 특유의 창조성과 더불어 보헤미안 색채를 담아내 시대에 획을 긋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현악기의 선율이 물 흐르듯 흐르며 체코 전원의 목가적인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2악장 아다지오(매우 느리게)는 악기들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올리면서도 특정 악기가 과하게 부각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데 장기인 여 지휘자의 역량이 극대화됐다. 그가 양 날개를 펴듯 팔을 뻗어올리면 오케스트라는 내달리고 눈을 맞추며 작은 손짓을 보내면 작은 방울들이 흔들리는 것처럼 섬세한 표현도 가능해졌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차이콥스키와 드보르작의 향연에 관객들은 탄성을 터뜨렸다. 평소 앙상블부터 서로 듣는 연주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여 지휘자의 철학을 숨 쉬듯 받아들일 수 있는 연주였다.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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