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라파 난민촌 또 공격…탱크 진격 등 지상전 본격화
WHO “전면 공격 땐 마지막 남은 병원 1곳도 기능 상실”
공격을 중단하라는 국제법원의 명령도, ‘학살’을 멈추라는 국제사회의 들끓는 여론도 소용없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라파 난민촌 공습으로 최소 45명의 민간인이 숨진 지 불과 이틀 만에 이스라엘군이 또다시 라파 인근 난민촌을 공격해 사상자가 속출했다. 이스라엘군은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면서도 피란민들이 생활하는 텐트촌을 연이어 공격하는 한편 라파 중심부까지 탱크를 몰고 진격하는 등 작전을 확대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인도주의 구역’으로 지정한 라파 북서쪽 알마와시의 피란민 텐트촌이 이날 네 차례 포격을 받아 최소 21명이 사망하고 64명이 다쳤다. 이스라엘은 지난 6일 라파 동부에 지상군을 투입하며 이곳 민간인들에게 알마와시로 대피하라고 명령한 바 있다.
이스라엘군은 공격이 ‘인도주의 구역’ 안쪽에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공격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확인한 결과, 포격이 ‘인도주의 구역’ 안쪽은 아니지만, 그 인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공격 지점을 비롯해 이스라엘군이 알마와시 인도주의 구역의 경계를 최소 5차례 이상 임의로 변경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6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45명이 사망한 라파 북서쪽 탈 알술탄 난민촌도 재차 공격을 받아 최소 16명이 숨졌다. 사망자 가운데 7명은 이틀 전 공습 지점과 불과 200m 떨어진 유엔시설 옆 텐트에서 변을 당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날 국제사회의 규탄에 민간인 사망은 “비극적 실수”라고 항변한 바 있는데, 불과 하루 만에 같은 지역을 재차 공격한 것이다.
이곳 텐트촌에 피란을 온 팔레스타인 언론인 압델라흐만 이스마일은 “공포의 밤이었다”며 “밤새도록 전투기와 드론이 날아다녔고 폭발음이 계속 들렸다”고 AP통신에 말했다.
국제사회가 일찌감치 경고했던 민간인 피해가 지상전 개시로 점차 현실화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군사작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군 탱크는 알아우다 모스크가 있는 라파 중심부까지 진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군은 이미 라파에 투입된 5개 여단에 더해 병력을 추가했으며, 라파에서 무장세력과 ‘근접전’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CNN은 지난 26일 탈 알술탄 난민촌 공습 영상을 분석한 결과, 당일 공격에 미군이 지원한 GBU-39 폭탄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CNN은 미 보잉사가 제조한 GBU-39는 250파운드급 소형 유도폭탄으로, 이스라엘군이 하마스의 지하터널을 파괴할 때 자주 사용해온 무기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선 살상 위력이 커질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리처드 피퍼콘 세계보건기구(WHO) 팔레스타인 구호 책임자는 이날 WHO 연례총회인 세계보건총회에서 “이스라엘이 라파를 전면 공격하면 상당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마지막 남은 병원 1곳도 기능을 상실할 것”이라며 “우리는 침공 상황을 염두에 둔 비상계획을 세워두고 있지만 사망자가 속출하고 질병이 급증하는 상황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WHO에 따르면 라파에 있는 3개 병원 가운데 현재 알에마라티병원만 부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700여명의 투석 환자를 치료했던 알나자르병원과 인근 쿠웨이트병원은 운영이 중단됐고, 라파 서부에 있는 야전병원 3곳도 모두 폐쇄됐다. 특히 라파 중심부에 있는 쿠웨이트병원은 전날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의료진 2명이 사망한 뒤 운영을 중단했다. 알자지라는 이날 병원 인근에서 이스라엘군의 포격이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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