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상위 4%’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선언
삼성전자 사내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29일 파업을 선언했다. 노조의 파업 선언은 1969년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처음이다. 삼성전자 사측과 직원 대표 간 협의체인 노사협의회는 올해 초 임금 5.1% 인상에 합의했으나, 노조는 이보다 높은 임금 인상과 유급휴가 1일 추가를 요구하며 쟁의에 돌입했다.
전국삼성노동조합(이하 전삼노)은 29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업을 예고하며, 내달 7일 집단 연차를 내겠다고 밝혔다. 내달 6일이 현충일인 것을 감안하면 이틀 연속 휴무를 하겠다는 것이다. 손우목 노조위원장은 “파업 선언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며 “총파업을 목표로 단계를 밟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삼노는 삼성전자 내 5개 노조 중 최대로 소속 노조원은 2만8000여 명이다. 삼성전자 전체 직원 12만여 명의 약 20%를 차지한다. 삼성전자 DS(반도체 사업부) 부문 직원이 절대다수로 파악된다. 이들은 지난해 회사가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삼성전자 직원의 평균 임금(등기이사 제외)은 1억2000만원으로, 직장인 상위 4%에 속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만 약 15조원 적자를 냈다. 최근 대표이사가 교체되는 등 사실상 비상 경영에 돌입한 상황이다. 다만 전삼노가 소수이고, 실제 파업 지지자가 많지 않아, 이들이 파업에 돌입한다 하더라도 반도체 생산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1969년 창립 이후 ‘무노조 경영’을 이어왔다. 대신 회사와 근로자 대표가 참여하는 노사협의회에서 매년 연봉 협상을 해왔다. 하지만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2019년 한국노총 산하 전국삼성노동조합이 출범했다. 이듬해 이재용 당시 부회장이 국정 농단 관련 대국민 사과를 통해 무노조 경영 방침을 공식 철회했다. 이후 삼성전자 내 노조는 5개까지 늘어났다. 2022년과 지난해에도 임금 교섭이 결렬되자 노조가 조정 신청을 거쳐 쟁의권을 확보했으나 실제 파업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올해 삼성전자 내 5개 노조 중 전삼노가 쟁의에 적극적인 것은 성과급 때문이다. 전삼노 조합원 90%는 반도체 부문 소속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지난해 DS(반도체 사업부)에서 약 15조원의 적자를 내면서 DS 소속 직원에게 성과급을 지급하지 못했다. 이현국 전삼노 부위원장은 “지난해 적자로 직원 성과급은 0원이었는데, 임원들은 수억 원씩 받았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임원은 3년간 경영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는 ‘장기 성과 인센티브’ 제도에 따라 주고 있어 다른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DS 소속 일반 직원들도 2015년 현재의 성과급 제도가 도입된 이후 2022년까지 거의 매해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받았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전삼노는 노사협의회에서 합의된 연봉 인상률 5.1%를 거부하고 6.5% 인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억대 연봉자의 노동 쟁의’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거세지자 최근 구체적 연봉 인상률 조건을 철회했다고 한다. 대신 성과급 지급 조건을 경쟁사처럼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후 영업이익에서 이자 등 자본 비용을 제하고 성과급을 산출하고 있다. SK하이닉스·LG전자는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전삼노는 현재 한노총 소속이지만, 최근엔 민노총과 연대를 하고 있다. 29일 기자회견에도 민노총 금속노조 소속 부위원장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삼노가 민노총으로 상급 단체를 갈아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그룹 내 4개 계열사 노조가 속한 ‘초기업 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직원 근로 조건 향상이 아닌 상급 단체(민노총) 가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여 목적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당장 전삼노의 파업 선언이 경영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회사 측은 본다. 하지만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고전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이 같은 노조 활동이 경쟁력 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실제 노조가 파업을 예고한 29일 삼성전자 주가는 3.09%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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