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철밥통은 파업...노동 약자들은 “우린 고용 안정이 절실”

김윤주 기자 2024. 5. 29.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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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파업선언 전날, 배달·경비 등 미조직 비정규직 호소

“가장 큰 희망은 ‘고용 안정’입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9일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파업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후 대형버스에 현수막을 매다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뉴스1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파업을 선언하기 전날인 28일 서울 모처에 프리랜서, 배달 기사, 경비, 콜센터 직원 등 근로자 92명이 모였다.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이 취약한 근로 환경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의견을 듣고자 ‘지역 순회 원탁회의’를 연 것이다.

이날 참석자 상당수는 연대할 노조조차 없는 ‘미조직 근로자’였다. 절반 이상이 계약직과 프리랜서였다. 일하는 주기가 비정기적이거나 최근 3개월 내 ‘투 잡(두 일자리)’ 이상을 동시에 했다는 참석자도 열 명 중 네 명꼴이었다. 이들은 전체 임금 근로자의 12%인 대기업 정규직(260만명)과 나머지 88%(1936만명)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 구조에서 88%에 속한다.

참석자들은 6~7명씩 여러 원탁에 나눠 앉아 4시간 동안 토론을 벌였다. 이들이 쏟아낸 이야기는 29일 평균 임금이 직장인 상위 4%에 속하는 삼성전자 노조가 임금을 더 올려달라며 파업을 선언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 얘기였다. 고용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근무 환경이 어떻게 열악한지, 사 측의 일방적 횡포에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기본적인 근로자 권리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날 한 참석자는 “제 직종에는 (근로 조건을 명시한) 표준 계약서가 없다”며 “업무 특성과 숙련도 등이 반영되지 않은 일반 계약서를 쓰다 보니 경력보다 낮은 급여를 받을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한 예술 분야 강사는 “10년 동안 일하면서 강사료는 겨우 5000원 올랐다”고 말했다. 하도급 업무에 종사한다는 한 근로자 역시 “야근을 해도 추가 수당을 못 받을 때가 있고, 임금이나 근무 조건을 사업주 마음대로 할 때가 많다”고 호소했다.

그래픽=이진영

참석자들에게 ‘일터에서 무엇을 우선 개선해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가장 많은 32.1%가 ‘고용 불안정’을 꼽았다. 병원에서 약사 보조를 한다는 한 근로자는 “(사 측이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지 않으려고) 23개월씩 ‘꼼수 계약’을 하고 있다”며 “한 직장에서 2년을 못 채우고 퇴사하다 보니 장기 근무를 해도 고용이 불안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한 강사는 자신을 “수강생 규모에 딸린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고용 안정 다음으로 개선이 필요한 분야로는 임금(29.8%)이 꼽혔다. 이날 전체 참가자의 21.4%는 한 달 평균 소득이 ‘100만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또 많은 참석자가 자기 급여가 적정 수준인지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근로자 교육이 부족하다거나 구직 활동을 할 때 도움을 받고 싶다는 요청도 있었다.

이날 정부는 참석자들에게 ‘현재 노동 환경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물었다. 그랬더니 “노동자에게 불리한 각서 작성을 금지해 달라” “불법 하도급을 강력 근절해 달라” 같은 의견이 나왔다.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를 줄여달라” “더 위험한 일을 하는 비정규직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 밖에 업무 전문성을 반영한 업종별 표준 숙련도 인증제를 도입해 달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50대 남성은 “낮에는 택배를, 밤에는 배달을 한다”며 “함께 토론하며 우리 이야기를 직접 나눌 수 있어 많은 위안을 얻었다”고 후기를 전했다.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경기, 인천, 대전, 대구, 부산, 광주에서도 근로자들의 의견을 더 듣고 정책에 반영할 예정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이날 회의장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허울뿐인 몇 차례 원탁회의를 통해 시혜성 정책 지원을 운운하면서 정권 잣대로 노동자들을 노동 약자와 강자로 편 가르기 할 것”이라며 “또다시 국민과 노동자들의 눈과 귀를 가려 속이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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