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연출·음악·극본 도전 박칼린 “엄청난 퍼즐 풀기, 공포 속의 행복”
수천년 전부터 샤먼은 이승과 저승을 매개하는 자로 여겨져왔다. 때로 고통에 빠진 인간을 위무했고, 때로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했다.
국립창극단 신작 <만신: 페이퍼 샤먼>은 한국의 무속문화와 샤머니즘을 소재로 한 창작극이다. 영험한 능력을 갖춘 소녀 ‘실’이 강신무가 돼 세계의 비극과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뮤지컬 감독으로 유명한 박칼린이 처음으로 창극 연출·음악감독·극본에 도전했다. 국립창극단 간판스타 유태평양은 안숙선 명창을 도와 작창보로 데뷔했다. 제작진과 출연진이 29일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박칼린은 “‘예민한 자’(The Sensitive)가 태어나 자기 힘을 발견하고 업을 받들어 사람, 자연, 우주에 소박한 기도로 힘을 보태는 이야기”라며 “엄청난 퍼즐을 풀어나가고 있다. 공포 속의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적 소재에서 출발한 작품이지만, 지평은 한국에 머물지 않는다. 실은 2막에서 세계 5대륙의 샤먼을 만난다. 동해가 대서양 노예무역 과정에서 익사한 아프리카 흑인 노예의 사연과 연결된다. 문득 불어오는 바람은 서부 개척 시대에 희생당한 미국 원주민의 비명과 이어진다. 비무장지대의 동물, 열대우림 파괴로 사라져간 아마존 원주민 부족의 사연도 등장한다. 박칼린은 “한국은 이제 문화 강국이다. 우리도 다른 나라를 치유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경을 넘으면 음악의 느낌과 강약이 다를 뿐, 스토리텔링의 재능이 있는 소리꾼들이라면 이야기를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태평양은 “예전에 아프리카에 머물며 음악을 배웠는데 국악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며 “사람의 아픔을 달래준다는 점에서 샤머니즘의 목적은 어디나 같다고 생각한다. 음악도 뿌리로 올라가면 굉장히 비슷한 느낌의 곡이 많다”고 설명했다.
박칼린은 미국에서 첼로, 한국에서 국악 작곡을 전공했다. 고 박동진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운 적도 있다. 어린 시절 부산에서 자라며 집이나 주변에서 굿을 자연스럽게 접하기도 했다. <만신: 페이퍼 샤먼>에 참여한 게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박칼린은 “대본에도 있지만, ‘나는 알겠는데 다른 사람은 왜 안 느껴지지?’ 하는 애매한 것들이 있다. 누군가에겐 스포츠, 누군가에겐 음악이다. 그런 예민함이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의심 없이 썼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 단원 김우정·박경민이 ‘실’ 역에 더블캐스팅됐다. 지난해 국립창극단에 부임한 유은선 예술감독의 첫 신작이기도 하다. 유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창극의 다양한 실험적 요소를 정착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만신: 페이퍼 샤먼>은 6월26~3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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