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홍대 앞과 강남의 기분

기자 2024. 5. 29.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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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는 집에선 창문으로 산이 보인다. 집의 벽과 천장은 자로 그은 것처럼 반듯하고 두꺼운 이중창은 듣기 싫은 바깥의 소음을 모두 막아준다. 잘 쓰지 않는 살림을 축적해놓을 방도 있고, 버리기 애매한 쓰레기를 방치할 수 있는 작은 베란다도 있다.

이사를 온 뒤 처음 몇달간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서울에선 지금 집과 같은 가격으로 원룸에 살았다. 그 집의 천장은 윗집 화장실에서 샌 물 때문에 늘 축축했다. 도배지 조각 몇겹 덧발라 주고는 천장 방수 공사를 마쳤다고 했던 집주인 할아버지는 “아가씨는 운이 좋아. 이 위치에 이 가격대 집이 어디 있어? 없어, 없어” 하고 떠났다. 맞는 말이었다. 그때의 빠른 수긍은 불평을 하면 집세를 올릴지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지금 집으로 이사를 한 뒤 잠을 청할 때마다 내내 그 할아버지의 말에 시달렸다. ‘없어, 없어.’ 그러면 나는 뜻밖에 얻은 보물의 안위를 살피듯이 반듯한 새집 천장을 꼼꼼히 바라봤다. 서울을 포기하고 얻은 마르고 반듯한 천장을.

전보다 넓고 튼튼한 집에 살게 되었지만 그것이 곧장 성취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안부를 묻는 친구들은 ‘아직도? 언제 와?’라는 말을 자주 했다. 서울에서 사귄 친구들이니 당연한 것이었지만 나는 혼자 그 물음을 되뇌고 곱씹으면서 자괴감으로 발전시켰다. 만남을 기약하는 흔한 인사말에 굳이 ‘몸이 아파 지방에 있다’며 상대가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 사정을 변명하듯 늘어놓거나, 굳이 성수동에서 열리는 관심 없는 브랜드의 팝업 행사와 음료값이 비싸서 몇번 가보지도 못한 서촌 카페의 폐업 등을 이야기하며 ‘서울에 살지 않는 나’를 꽁꽁 숨겼다.

1.5평 고시원 옆 호실에 살던 남자는 새벽마다 나 들으라는 듯 쉴 새 없이 음란한 소리를 냈다. 나는 그것을 참고 참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홍대앞에 갔다. 언제 어느 때에 가도 홍대앞 거리에는 어리고, 이상하고, 불량해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취한 채 길거리에 있었다. 고성에 두통을 느끼고 길을 걷다 가래침을 맞아도 그곳이 내 작은 고시원 방보다 훨씬 안전한 곳처럼 느껴졌다. 새벽 내내 ‘삼거리 포차’ 앞에서 흐르는 빅뱅의 노래를 듣고, 승리가 운영했던 ‘아오리라멘’에서 돈코쓰 육수를 마셨다. “홍대 땅은 전부 ‘YG’거야.”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우쭐대며 말했다.

직장 사무실이 강남으로 이전하게 되었을 땐 꼭 벼슬에 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돈이 없다면 머무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인 땅에서 월급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니 얼마나 황홀한가? 나는 빌딩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자주 강남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서 본 호텔, 클럽, 지하철역은 늘 사람으로 붐볐다. 그렇게 내가 그 풍경 속을 이리저리 걸으며 안도할 때, 같은 공간에 있었을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다. 벌을 받는 사람은 없었다. 이 도시엔 주인이 있고, 그들을 거역해선 안 된다. 내 인생의 오차를 계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도망치듯 거리를 나온 마음 같은 것은 이곳에서 가장 사냥하기 쉬운 대상이었다. 이런 논리가 지탱하는 도시에서 어떻게 일상을 꿈꿀 수 있을까? 맨몸으로 도로 위를 달리고 다 죽으라며 저주를 퍼붓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나약함은 그 상상 속 질주마저 회사의 반경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나는 종종 내가 혹시 그 위태로운 감정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어쩌면 서울이란 도시에서 느꼈던 환멸을 통해 내 상황을 추스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포기, 낙오, 상실감…. 아마도 이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엔 꽤 긴 시간이 걸릴 것이고, 어쩌면 평생 극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친구의 ‘언제 와?’라는 질문에 ‘네가 와’라는 대답을 하면서 서울에서의 지난 삶을 추모할 뿐이다.

복길 자유기고가

복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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