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전환마을을 넘어 전환도시로

기자 2024. 5. 2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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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행 중 남서부 데번주에 있는 유명한 전환마을 토트네스와 인접한 다팅턴의 대안대학 슈마허 칼리지를 찾아갔다. 런던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세 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인구 800만명인 런던을 벗어나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완만한 구릉 지대에 끝없이 펼쳐지는 숲과 목초지 그리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와 양들뿐이다. 인구나 국토 면적이 비슷한 한국의 교외 지역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삶을 지탱하는 도로, 논밭, 창고, 공장, 유원지, 송전탑 등으로 난잡하게 구성된 것과는 사뭇 다르다.

영국은 기차,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처음 발명한 나라답게 대중교통망이 무척 촘촘하다. 토트네스역에 내리자 중심거리까지 걸어서 10분밖에 안 걸린다. 토트네스 안내 책자에는 1000년대 노르만족 정복 당시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성곽에 올라가서 전체 풍경을 조망하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다트 강에서 카약을 타보라는 등 전형적인 관광 안내밖에 없다. 100m 남짓한 중심거리를 돌아다녀도 오래된 교회, 빵집, 잡화점, 식당 등 평범하기 그지없다. 도착하기 전에 상상했던 태양광 패널, 풍력발전기가 사방에 깔려있고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전환마을의 모습과는 달랐다.

이런 의문은 민박집 주인 사라 할머니의 설명을 듣자 조금 풀렸다. 토트네스에서 오래 살아온 퇴직교사인 그는 TTT(전환마을토트네스라는 단체)에 대해 들어봤지만 자신은 참여한 적 없으며 아주 소수만이 참여하지 않을까 추측했다. 그러면서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아침마다 들려오는 새소리와 전통적인 분위기 때문이며 여기에 대기업 체인은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중심가의 상점은 직접 만든 물건이나 중고품, 음식, 지역 농산물을 주로 팔고 있었다. 마을 텃밭이나 공유공간도 많이 눈에 띈다. 전환마을 운동 덕분에 마을은 대도시 경제에서 극적으로 전환할 필요 없이 소박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소박하고 평화롭기는 슈마허 칼리지도 비슷했다. 학교가 위치한 다팅턴 영지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인도의 시성으로 추앙받는 타고르에게는 레너드 엠허스트라는 영국인 제자가 있었다. 그가 부유한 미국 상속녀 도로시와 결혼하자 타고르는 그에게 산업문명에 저항하는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라고 했다. 부부는 다팅턴홀(건물)이 포함된 영지를 사들여 학교를 세웠고 당대 지성들과 교류했다. 그 후 인도 출신 평화운동가 사티쉬 쿠마르가 폐쇄 직전인 이 학교를 슈마허 칼리지로 발전시켰다. 고스란히 보존된 영지에서는 유기농업이 실현되고 학생들이 성장한다.

이 학교에서 만난 영국 청년 매트는 쿠마르가 젊은 시절 반핵을 외치며 인도부터 영국까지 순례했던 데 감명을 받아서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웰빙을 전파하고 요가를 가르치며 두 달간 도보여행을 시작하던 참이었다. 교육프로그램 책임자인 윌은 초기 학교를 설립한 이들이 경제적 보탬이 되고자 심었으나 지금은 기후와 명상수업이 열리는 울창한 삼나무 숲으로 안내했다. 학교에는 넓은 텃밭과 아름다운 정원, 명상실 등이 있다. 여러 나라에서 온 학부, 대학원 과정의 학생들은 농사법과 함께 삶의 방식을 배워서 자신의 터전에서 실현하고자 한다. 마침 풀밭에서 수채화 특강이 열리는 그곳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다팅턴과 슈마허 칼리지는 여러모로 충남 홍성군 홍동면과 풀무학교를 연상케 했다. 제국주의, 산업문명, 농약과 비료를 쓰는 관행농에 반대하는 대안으로 설립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에서도 자리 잡은 대안 공동체의 여러 사례에 비춰보면 아주 특별한 느낌은 아니다. 그러나 특유의 영적인 분위기가 충만하고 젊은이들이 많아서 활기가 느껴졌다. 마찬가지로 토트네스 마을 역시 내적 전환이나 ‘어머니 지구’와의 공감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성장이나 이윤 위주의 바깥 세계와 차별성을 갖기 위한 노력이다.

이들을 보면서 훨씬 가파른 전환이 필요한 서울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사는 성북구의 경우 도서관에서 생태책 읽기 모임을 하고 리빙랩을 통해 구에서 수립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의 주민수용성 조사를 벌인다. 대중교통 이용을 줄이기 위한 자전거 강습, 옷 수선이나 교환행사, 제로웨이스트 캠페인도 종종 열린다. 재개발에 반대한 단독주택 지역을 중심으로 정원을 가꿔서 매년 봄에 개방하는 정원축제도 있다. 그러나 아직 너무 소수여서 주류 문화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활동들이 소진되지 않은 채 다수의 삶으로 확산될 수 있을까? 전환마을보다 원대한 전환도시의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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