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의 경제읽기]인플레이션 고착화가 무서운 이유
5월 중순에 발표된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1분기 내내 금융 시장의 우려를 모았던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안정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았다는 데 있어서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위원 중 가장 입김이 세다고 알려진 월러 이사는 4월 소비자물가지수에 대해 C+라는 학점을 부여하며 “나쁘지는 않지만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그 이전 3개월 연속 이어진 물가 우려에 비해 완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4월 소비자물가지수에서도 끈적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그대로 묻어났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여러 가지 항목을 담고 있는데, 크게는 상품 물가, 주거비 물가, 그리고 서비스 물가라는 세 가지 대분류로 접근해볼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크게 뛰어올랐던 국제 유가와 당시 심각하게 치달았던 공급망 문제로 인해 2022년 인플레이션 급등 시기에는 앞서 언급된 상품 물가가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셰일 오일 생산 급증 및 전략 비축유 공급, 그리고 공급망 리스크의 완화 등이 집중되면서 미국의 상품 물가는 큰 폭으로 안정되면서 물가가 더 오르지 않는 상황을 의미하는 ‘디스인플레이션’ 단계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상품 물가의 가파른 하락은 2022년 6월 9.1%로 정점을 찍었던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를 현재 3%대 초반으로 밀어내린 가장 큰 동인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주거 및 서비스 물가라고 할 수 있다. 2023년 1월 연준 파월 의장은 주거비 물가가 지금은 높지만 시차를 두고 안정될 것임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15개월여가 지난 2024년 5월 현재에도 미국의 주거비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주택 공급 부족 및 계속되는 주택 가격 상승이 주거비 물가의 고공행진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탄탄한 미국의 고용 및 소비는 미국의 서비스업에서의 소비 폭발로 이어지며 서비스 업종의 인플레이션을 높게 유지시키고 있다. 즉, 상품 물가의 안정에도 불구, 주거비 및 서비스 물가의 끈적함이 전체 물가지수를 연준이 목표로 하는 2% 수준으로 낮추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높은 금리가 결국에는 미국의 소비 성장을 둔화시키고, 이로 인해 시차를 두고 주거 및 서비스 물가를 안정시킬 것이라는 주장에는 나 역시 공감한다. 그렇지만 연준의 물가 목표인 2%로 되돌려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잉태하게 된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가 연준의 목표치인 2%를 상회한 것은 2021년 3월이었다. 현재가 2024년 5월인 점을 감안하면 3년2개월이 지나도록 미국의 물가가 연준의 목표로 되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감기 환자로 따지면 3년이 넘도록 감기를 치료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 병을 앓고 있는데, 특정한 병이 장기간 지속되면 이른바 고질병, 즉 ‘고착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인플레이션의 고착화는 경제 주체들의 마음속에 인플레이션이 자연스레 자리잡게 만드는데 이 경우 인플레이션을 목표치로 되돌리는 것도 어렵지만, 설령 목표치로 되돌리더라도 약간의 문제가 생겼을 때 언제든지 인플레이션이 재차 튀어오를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고질병의 경우 약간만 무리를 해도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 고착화로 높은 재발 가능성을 안고서 과거와 같은 경기 침체가 닥쳐왔을 때 강한 경기 부양을 할 수 있을까? 경기 부양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겠지만 무제한 양적 완화와 같은 ‘과감한 부양’에는 큰 부담이 따를 것이다.
고착화가 낳는 부작용. 연준이 조금이라도 빠르게 인플레이션을 제압해야 하는 이유다.
오건영 신한은행 WM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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