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왕과 국민의 대등함을 외친 태국 청년의 죽음

기자 2024. 5.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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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태국에서 국왕모독죄 혐의로 감금되었던 네티폰 사네상콤 활동가(별명 ‘붕’)가 모든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하며 110일간 단식투쟁을 한 끝에 사망했다. 28세였다. 이를 계기로 태국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같은 인간의 기본권을 통제하는 형법 112조, 일명 국왕모독죄의 전근대성 문제가 재점화되었다.

네티폰 활동가는 원래 보수적인 중산층 집안에서 성장해 2013~2014년에는 보수 성향 민주당 정부에서 부총리를 지낸 수텝 트악수반이 이끄는 극우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5월 라차프라송 거리 사태를 두고 민주당 정부가 반정부 성향의 레드셔츠를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며 유혈진압을 정당화했는데, 사실은 이들이 무기가 없는 무고한 시민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왕당파의 대척점에 섰다.

네티폰 활동가는 2020년 MZ세대가 주도한 대규모 반정부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때 그는 ‘나쁜학생’ 소속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기득권층이 정해놓은 옳고 그름의 기준을 뒤엎는 일종의 저항문화를 이끌었던 ‘나쁜학생’은 두발 단속과 제복 강요 등 권위주의적 학교문화의 쇄신과 성소수자 인권 보장, 나아가 당시 쁘라윳 군사정부의 퇴진 운동을 벌였다.

네티폰 활동가는 궁궐을 향해 돌진한다는 의미의 ‘탈루왕’이란 단체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명확했다. 왕실 수호를 명분으로 일어나는 쿠데타를 그때마다 승인하는 군주제야말로 태국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고, 국왕모독죄는 이에 반발하는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 점을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6년 쿠데타 이후 건마다 최대 15년형을 선고할 수 있는 국왕모독죄로 수많은 지식인, 일반 시민이 투옥되고 망명을 선택하고 죽기까지 했다. 국왕모독죄 연루자들의 경우 보석이 기각되고 재판 전 구금 기간이 너무 길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유엔과 국제인권단체들도 국왕모독죄의 가혹성을 문제 삼았다. 태국인권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20년 7월 대규모 시위 이후 정치적 이유로 1954명이 기소됐다. 이 중 최소한 272명이 국왕모독죄에 해당했다. 152명은 선동죄 혐의를 받았다. 현재 태국에는 45명의 정치범이 수감돼 있다. 그중 한 명인 인권변호사 아논 남파는 2020년 반정부시위 당시 군주제 문제점을 가장 먼저 거론했다. 군주제 특권세력(network monarchy)을 향한 대담한 도전이었다.

2020년 7~8월에 국왕모독죄 폐지를 외쳤던 ‘해방청년’, 과거 레드셔츠 진영까지 끌어안은 ‘해방인민’의 함성은 지난해 군주제 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전진당을 제1당으로 만드는 쾌거로 이어졌다. 그러자 군주제 특권세력의 반격이 시작됐다. 국왕모독죄 개정을 추진했다는 이유로 전진당의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요청했고 결국 전진당 역시 전신인 신미래당처럼 해산 위기에 놓였다.

네티폰 활동가는 국가폭력에 희생됐다. 그의 동료 탄따완과 낫타논도 단식투쟁 중이다. 탄따완은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28세 나이로 생을 마감한 네티폰 활동가는 외로운 투쟁을 하지 않았다. 그의 ‘탈루왕’뿐만 아니라 하늘을 뚫는다는 의미의 ‘탈루파’, 하늘 아래 국왕과 국민은 대등하다는 ‘파디야오깐’ 등 청년조직들이 국왕모독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활동했고 활동 중이다.

솜욧 프륵사까셈숙은 네티폰 활동가가 따랐던 인권운동가다. 그 역시 국왕모독죄로 7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국왕모독죄의 개정이 아니라 폐지다.” 그는 늘 마지막 싸움을 생각한다.

도덕정치와 거리를 두었던 마키아벨리까지도 <군주론>에서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군주는 위기를 피할 수 없음을 경고했다. 과연 태국 군주제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박은홍 성공회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은홍 성공회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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