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타기’·운전자 바꿔치기...김호중 판박이들이 받은 죗값은
추가음주, 운전자바꿔치기, 늑장출두 등으로 논란을 빚은 트로트가수 김호중(33)씨가 구속된 가운데 김씨와 같은 음주운전 후 사법방해적 행태가 빈번한 것으로 드러났다. 처벌의 공백을 악용한 사례들로, 최근에는 가짜 증인이나 서류를 내세우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적발될 경우 상당수가 음주운전보다 훨씬 더 중한 형으로 처벌받았다.
◇'사고후 술마셨다’진술조작 들통나, 벌금200만원에서 실형으로
김호중씨는 지난 9일 오후 11시 40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도로에서 반대편 택시를 추돌하는 사고를 냈다. 그는 사고 직후 경기도의 한 호텔 인근에서 맥주 4캔을 구입했다. 정확한 혈중알코올농도 측정을 막기 위한 이른바 ‘술타기’ 수법으로, 사고 후 17시간만에 출두해 음주운전 기준치인 혈중알코올농도 0.03%미만의 음성 판정을 받았다.
본지가 대검찰청에서 입수한 사례 분석 결과 이런 ‘술타기’ 수법이 진술조작까지 이어져 실형이 선고된 경우도 있었다. A씨는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자 혐의를 모두 인정했고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발령받았다. 그런데 무죄를 주장하며 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운전 후 음주측정 전에 지인과 추가로 술을 더 마셨다’며 지인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하지만 돌연 증인신청을 철회하고 ‘A씨와 추가로 술을 마셨다’는 지인의 사실확인서만 냈다. 이상하게 여긴 검사가 지인을 증인으로 신청했는데 여기서 반전이 있었다. 지인이 “함께 술을 마신 적도, 사실확인서를 써 준 적도 없다”고 한 것이다. 부산지검은 A씨로부터 사실확인서 위조를 자백받아 기소했고,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10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B씨는 음주상태에서 주차된 차를 들이받고 도주한 사건으로 기소됐다. 그의 음주운전 재판에서 전처(前妻)가 증인으로 나왔고, ‘B가 주차 후 운전석에서 소주를 홀짝홀짝 마시는 것을 보았다’며 추가음주를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이 B씨와 전처의 통화내역, 접견내용을 분석한 결과 B씨가 전처에게 ‘주차 후 차에서 소주를 마시는 걸 옆에서 봤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인천지검은 올해 1월 B씨를 위증교사로, 전처를 위증으로 기소했고 지난 18일 법원은 B씨에게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전처에게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입법 필요”지적, ‘김호중 방지법’ 제정 나선 검찰
추가음주에 더해 추가음주를 가장하는 행태까지 생겨난 것은 사고 전 음주량을 엄격하게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 법원 판례 때문이다. C씨는 자동차바퀴가 논에 빠지는 사고를 내고 약 2시간 후에 음주측정을 했는데 혈중알코올농도가 만취 상태인 0.236%로 나왔다. 그는 “운전하기 전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며 “운전 중 휴대폰을 떨어뜨려 사고가 난 것이고 사고 후 집으로 가다 미리 사둔 술을 마셨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들기는 한다”면서도 “운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당시 기준수치인)0.05%이상이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는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술을 마시고 5톤 화물자를 운전하다 다른 승용차를 들이받은 운전자가 현장을 이탈해 소주 1병을 더 마신 D씨는 사고 직후 혈중알코올농도가 0.169%로 측정됐다. 추가음주의 영향을 가리기 위해 사고 두 달 후 소주 1병을 마시게 하고 측정했는데, 이때 0.115%가 나왔다. 검사는 실제 음주측정 수치인 0.169%에서 검증을 통해 나온 0.115%를 뺀 0.054%를 음주수치로 기소했다.
1심은 징역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D씨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위드마크 공식(술을 마신 후 시간이 지난 경우 음주량, 체격, 경과시간 등을 넣어 운전 당시의 혈중알코올농도를 계산하는 공식)을 적용하면 추가음주로 인한 혈중알콜농도 증가분은 0.141%이고 이를 사고당시 측정 수치에서 빼면 0.028%로 처벌기준치인 0.03%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이 판결을 확정했다. 그러면서 “죄증(罪證)을 인멸하기 위한 추가 음주행위를 통해 음주운전자가 정당한 형사처벌을 회피하게 되는 결과를 용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당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입법적 조치 등이 이뤄질 필요가 있지만 이런 조치가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죄형법정주의와 검사의 엄격한 증명책임이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존중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판결은 최근 대검찰청이 ‘김호중 방지법’제정을 추진하는 데 상당히 영향을 줬다고 한다. 대검은 지난 20일 ‘음주 교통사고 후 의도적 추가 음주’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 신설을 법무부에 입법 건의했다. 적발을 면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술을 더 마시면 1년~5년의 징역 또는 500만원~2000만원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으로 음주측정거부죄와 형량이 동일하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추가 음주를 비롯해 이른바 ‘운전자 바꿔치기’, 계획적 허위 진술과 진상 은폐, 증거인멸 등 사법방해 행위에 엄정 대응하라고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다.
◇ “형이 운전했다고 해” 운전자 바꿔치기
김호중씨는 사고를 낸 후 골목에 차를 세우고 매니저와 통화했고 해당 매니저는 김씨가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경찰서에서 허위자백했다. 이 같은 행위는 김씨의 증거인멸 우려를 높여 결국 그가 구속되는데 크게 작용했지만, 현실에서도 적잖은 ‘운전자 바꿔치기’가 횡행하고 있다.
음주상태에서 화물차를 운전해 기소된 E씨는 친형에게 ‘형이 내 차를 운전했다고 해라’고 부탁했다. E씨가 처벌받아 일을 못하면 생활비, 병원비를 부담하지 못하게 될 것을 염려한 친형은 동생 부탁대로 ‘내가 운전하고 동생은 조수석에 탔다’고 위증했다. 영월지청은 지난 2월 수사과정에서 E씨의 위증교사 녹음파일 등을 발견해 두 사람을 구속기소했다. 지난 17일 E씨는 징역 1년 6개월, 형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운전자 바꿔치기’가 적발된 후에도 계속해서 ‘내가 운전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는 경우도 있다. F씨는 자신의 음주운전 재판에서 내연녀가 운전한 것처럼 거짓 증언을 시켰고, 내연녀는 위증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F씨는 내연녀의 위증 재판에서 판사와 검사로부터 여러 차례 ‘사실대로 말하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내가 운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지난 3월 위증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현재 1심 재판중이다.
◇21시간 지나 출두하니 알코올 0.. ‘늑장출두’도 횡행
김호중씨는 사고 발생 후 경찰이 수차례 출두를 요청하는 전화와 문자를 보냈으나 답하지 않다가 사고 17시간 후 출두했다. 음주측정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결국 김씨는 혈중알코올농도가 기준치 미만으로 나왔고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대신 특가법위반(위험운전치상)이 적용돼 영장이 청구됐다. 특가법위반(위험운전치상)은 기준치(0.03%)이상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요하지 않지만 ‘음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해 사고가 난 경우’에 성립한다.
‘늑장 출두’의 경우 수사기관은 음주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하는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하지만, 법원은 이 수치가 ‘추정’에 기반한 것이라며 더 엄격한 증명을 요구한다. 술을 마시고 운전해 신호기를 들이받아 기소된 운전자가 사고 21시간 경과 후 음주를 측정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로 측정됐다. 검사는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 운전 당시 알코올농도를 0.148%로 계산해 기소했으나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0.05%이상인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음주장면 CCTV가 있어도 무죄가 나기도 한다. F씨는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밤 10시 20분쯤 반대차로의 차량을 들이받아 상대방 운전자를 다치게 하고 도주했다. 검찰은 이날 저녁 7시쯤 그가 식당에서 소주를 마신 CCTV를 확인해 혈중알코올농도 0.044%로 추산해 기소했다. 하지만 1심은 “소주잔으로 보이는 잔에 담긴 액체를 마신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는 특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같은 ‘음주운전 사법방해’ 는 최근들어 더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음주단속 피하는 법’ 과 같은 꼼수를 인터넷 검색이나 소셜미디어로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 음주운전 단속 건수는 13만 150건이다. 2022년 13만 283건, 2020년 11만 7549건 등으로 최근 5년간 매년 11만~13만건의 단속이 이뤄지고 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다른 범죄와 달리 단속 건수가 많고, 일반인들도 대상이 되다 보니 추가음주, 운전자바꿔치기와 같은 사법방해가 비교적 죄의식 없이 행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추가음주 자체를 처벌하는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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