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K] 사회적 약자에게 취약한 소송제도…대책은?

고민주 2024. 5. 2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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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주] [앵커]

KBS는 중증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년후견인의 소송사기 사건을 탐사 보도해 드렸죠.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사회적 약자가 법원의 무변론 판결과 현 송달제도에 취약하다는 문제점도 전해드렸는데요.

오늘은 탐사K 보도를 이어온 고민주 기자와 함께 자세한 내용 살펴보겠습니다.

고민주 기자 안녕하세요.

이 사건을 처음 접하시는 시청자분들도 계십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중증 지적장애인을 울린 소송사기 사건,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기자]

네, 소송사기 혐의를 받는 건 한 60대 성년후견인입니다.

자신으로부터 중증 지적장애를 가진 처제가 돈을 빌린 것처럼 가짜 차용증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소송으로 처제의 돈을 받아내려 한 사건입니다.

이 성년후견인은 당사자를 대면하지 않는 법원의 약식절차인 지급명령을 악용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는데요.

결국, 소송사기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특히,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소송사기 혐의를 받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법적 절차인 지급명령과 무변론판결, 송달제도가 사회적 약자에게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도 충격으로 다가왔거든요.

무변론 판결과 현 송달제도가 사회적 약자에게 왜 위험한 도구였는지 설명해주실까요?

[기자]

네, 취재진은 지적장애인인 처제를 상대로 소송사기 혐의를 받는 60대 이 모 씨에 대한 취재를 계속해왔는데요.

취재 과정에서 올해 3월에도 피해자인 지적장애인 고 모 씨에게 갖고 있는 땅의 지분을 원고에게 넘기라는 내용의 또 다른 판결이 내려진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판결 내용을 살펴보니, 정말 황당했는데요.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자신과 사돈지간이었던 피해자 고 씨의 아버지가 거액의 돈을 빌려 갔다고 말합니다.

당시 돈을 갚지 못하면 딸인 고 씨 땅의 지분을 넘긴다고 약속했는데, 빌려 간 돈을 받지 못했으니 약속한대로 고 씨의 땅 지분을 넘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고 씨에게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다름 아닌 고씨의 친언니였습니다.

[앵커]

그러면, 고 씨의 친언니가 자신의 아버지와 사돈지간이라는 말인가요?

말이 안 되는 내용인데, 어떻게 이 판결이 내려진 거죠?

[기자]

말 그대로 황당하죠.

언니 고 씨가 자신의 아버지를 사돈이라고 하고 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낸 건데요.

더 황당한 건, 고 씨의 언니 또한 지적장애인이라는 겁니다.

언니는 소송사기 혐의를 받는 60대 이 모 씨와 결혼한 사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확정판결, 알고 보니 무변론 판결이었습니다.

무변론 판결이란 신속한 재판 절차로 상대가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내지 않거나 자백할 때 내려지는 판결입니다.

하지만 중증 지적장애를 가진 피해자 고 씨로선 이 절차를 이해하기도 스스로 감당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앵커]

지적장애인에게 무변론 판결이 내려지면 소송사기를 당할 수 있는 위험이 크겠네요.

그러면, 고 씨는 이 판결을 받아보긴 한 걸까요?

[기자]

법원은 당시 고 씨에게 소장이 도달했다고 봤는데요.

하지만 고씨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살고 있어 소장과 판결문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소장 등을 송달받을 장소로 기재된 곳은, 고씨가 거주하는 곳이 아닌, 소송사기 혐의를 받는 이 씨의 동생이 거주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피해자 고 씨는 자신에게 소송이 제기된 것도, 알 수조차 없었습니다.

전문가 또한 현 송달제도가 지적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위험하다고 설명했는데요.

함께 들어보시죠.

[최정규/변호사 : "피고 주소지를 원고가 직접 기재하고 법원은 그 송달 장소로 서류를 송달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법원을 속여서 어떤 유리한 판결을 받는 것이 구조적으로 가능한 상황입니다. 장애인의 경우에는 더더욱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대응을 하기가 어렵고 또 사후에도 발견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앵커]

심각한 문제인데요.

이렇게 되면 지적장애인의 경우 대응하기 어려워서 법원의 대책 마련도 시급해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질의도 하셨죠?

[기자]

네, KBS 보도 이후 법원행정처는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했다며, 대책 마련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법원행정처는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사법정책연구원 등 내외부 전문기관에 연구 의뢰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무변론 판결 선고 사건의 경우 다른 사건보다 송달에 신중히 검토하고 있지만, 조금 더 세심히 신경을 써 이와 같은 사례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각급 법원에 안내하기로 했는데요.

앞서, 제주지방법원이 민사소송에선 원고가 지정한 주소로 피고에게 송달을 하기 때문에, 송달 장소에 대한 조사는 별도로 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법원행정처에서 당사자가 이번 사례처럼 소송무능력자에 해당할 경우 담당 재판부에서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면서요?

[기자]

맞습니다.

사실상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런 일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셈인데요.

전문가들은 장애인을 염두에 둔 적극적인 제도 개선에 법원이 나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장애인법연구회 소속 이주언 변호사는 원고와 피고 등 소송 당사자들의 장애 유무를 소장 제출 단계에서부터 필수적으로 표기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소송사기 피해 지적장애인을 돕고 있는 김성훈 소송구조 변호사는 우편 송달 원칙에 더해 연락 가능한 수단들을 최대한 활용해 현 송달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고 기자 보도를 통해 4년 전 법원행정처가 장애인 사법지원을 위한 가이드라인 새롭게 개정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는데, 가이드라인에는 이번 사례를 막기 위한 예방책이 담겨있지는 않나요?

[기자]

해당 가이드라인에는 민사 재판이 진행될 때, 재판부의 법원 사무관 등은 소장 등 기록을 통해 당사자의 장애 유무를 확인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송을 당한 피고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재판부가 알게 될 경우, 바로 무변론 판결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도 나와 있는데요.

그러나 이번 사례처럼 재판부가 피고의 장애 유무를 소장 등을 통해 알 수 없으면, 이 가이드라인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소송 과정에서 법원이 사전에 장애 유무를 알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제주지부는 어제 제주도청 앞에서 오체투지를 진행하면서, 발달장애인 맞춤 사 법지원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는데요.

관련 제도 개선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전문가의 목소리 들어보시죠.

[김지영/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장애인 사법지원) 가이드라인에 규범력이 부재하기 때문에 조금 더 규범력을 갖추도록 해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을 통해서 등록된 장애인의 경우에는 주소지가 있으니까 (송달 전) 그 주소지를 확인하는 내용을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조항이라든지 특례에 규정하는 개정안을 검토해 볼 수도 있습니다."]

[앵커]

앞으로 실제 제도 개선이 어떻게 이뤄지는지가 중요하겠네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사실 지적장애인 스스로 피해자가 된 줄도 모르고,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도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사법절차에서 장애인이 겪는 문제점들이 오랜 시간 수면 위에 떠오르지 못하고 묻혀있기도 했는데요.

이번 취재를 하면서 장애인에게는 사법 절차가 더 어렵고, 더 불친절하다는 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한 전문가는 취재진에게 장애인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낮은 쪽에 자리하고 있음을 강조했는데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주고,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앵커]

그렇네요.

자신이 소송 당사자가 된 줄도 모르는 장애인들이 더는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사법제도 보완이 이뤄지길 바라봅니다.

고민주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촬영기자:부수홍/영상편집:박진형/그래픽:조하연

고민주 기자 (think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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