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이를 ‘호랑이별’에 보내주세요”···박제냐 소각이냐 서울대공원 폐사 호랑이 둘러싼 논쟁

문예빈 기자 2024. 5. 29.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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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단체·시민 40여 명, 호랑이 ‘태백’ 박제 규탄
질병사한 동물은 ‘의료폐기물’···소각 시 절단
지난달 19일 숨진 서울대공원 시베리아 호랑이 태백. 사진=서울대공원 제공
[서울경제]

지난달 폐사한 서울대공원 시베리아 호랑이 ‘태백’에 대한 서울대공원의 박제 결정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현행법상 의료폐기물로 구분되는 동물원 사체 소각 처리 과정에도 논란이 불거져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에 동물 전용 대형 화장장이 없다며 이러한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19일 서울대공원 광장 앞에서 동물 보호 단체·시민 40여 명이 ‘동물 박제 결정 반대 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동물원 내 동물복지 비영리단체 ‘펜자(PENZA·People & Zoo Animals)’ 측은 “서울대공원의 관리 아래 젊은 호랑이(태백)가 후천적 질병으로 요절했다는 사실을 박제할 의도인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관리소홀 정황 포착했는데···” 명확한 사인 규명 아직 안 돼 = 지난달 19일 서울대공원은 5살 호랑이 태백의 폐사 소식을 알렸다. 서울대공원에 따르면 태백은 지난 2월부터 건강 이상 징후를 보였다. 이후 폐사 나흘 전 시행한 정밀검사에서 담도계와 간기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가 확인돼 그에 따른 약물 및 수액 처리를 했으나 결국 눈을 감았다는 것이 서울대공원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29일 펜자 측은 통화에서 “2월 당시 (태백의) 건강 이상 증세가 보여 민원을 넣었으나 증상이 호전돼 3월2일 투약을 중단했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정작 지켜본 태백은 3월에 더 무기력해보였다. 이렇듯 치료 시기가 적절했는지, 대공원 측의 대처가 최선이었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반문하며 관리소홀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부검 및 정밀검진 후 태백의 정확한 사인 규명을 발표겠다는 서울대공원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19일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광장 앞에서 시민 40여 명이 ‘동물 박제 결정 반대 집회’를 개최했다. 사진=펜자(PENZA) 제공

◇"살아서도 전시, 죽어서도 전시” 박제 규탄하는 시민들 = 펜자 측은 박제 이유를 묻는 시민 민원에 대한 서울대공원의 답변도 지적했다. 앞서 서울대공원은 태백의 박제 이유에 대해 “태백이 본연의 모습을 온전히 보존한 표본은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실물로서의 기록”이라며 “멸종위기 동물들의 종 보전을 위해 동물의 생태적 모습과 유전정보(DNA)를 후대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답했다.

이에 펜자 측은 “태백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동물원에 갇혀 있던 호랑이”라고 일갈하면서 “평생을 인간의 손에 의해 삶의 당락이 정해진 태백을 정말로 위한다면 박제를 철회하길 바란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박제에 대한 절대적인 반대가 아닌, 이미 4마리의 박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소홀 의문이 제기되는 어린 호랑이에 대한 박제를 추가적으로 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서울대공원은 2016년 ‘낭림’, 2020년 ‘코아’와 ‘한울’, 2021년 ‘강산’ 등 이미 총 네 마리의 시베리아 호랑이를 박제한 바 있다.

◇소각 위해선 사체 절단해야···최선 아닌 차악의 작별 = 박제를 피한다고 해도 넘어야할 산은 있다.동물 보유 시설 내 동물이 질병사할 경우, 현행법상 해당 동물의 사체는 의료폐기물로 구분된다. 이에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의료폐기물 처분을 위해 설치된 소각시설이나 멸균·분쇄시설에서 사체를 처분해야 한다. 지난해 청주동물원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동물 사체 소각을 위해선 가로·세로·높이 50㎝정도 되는 의료폐기물 상자에 사체를 담아야 한다. 호랑이처럼 몸집이 큰 동물은 사체 절단이 필수인 것이다. 이에 폐사한 동물을 돌봤던 동물원 관계자들에게는 잔혹한 방식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펜자는 “방법이 그것 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국내에 대형 동물 화장장이 없는 현실을 꼬집었다. 이어 “지금 당장 만들어서 소각하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하니 불필요한 박제를 늘리지 않고 소각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면서 “코끼리 같은 대형 동물의 사체는 땅에 묻어 처리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이것 또한 고려해볼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2일 서울대공원이 펜자 측에 전달한 민원 답변에 따르면 태백은 아직 냉동실에 있다.

태백은 2018년 5월 서울대공원에서 엄마 펜자(14)와 아빠 조셉(13) 사이에서 태어났다. 함께 태어난 호랑이 4남매 중 셋째로, 생전 공과 물을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10월12일 서울대공원이 공개한 아기 시베리아 호랑이들. 태백의 어린 시절로 추정된다. 사진=뉴스1
문예빈 기자 muu@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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