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들어섰어도 밀양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왜냐면]

한겨레 2024. 5. 2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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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밀양 행정대집행 10년 ① 남어진 |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집행위원 2005년부터 시작한 경남 밀양 주민들의 초고압 송전탑 반대 투쟁은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고 말한 고 이치우 밀양 주민의 분신과 할머니들의 투쟁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발전소와 송전탑 인근 주민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국가가 더는 일방적으로 부지를 선정할 수 없게 되었고, 전력 수요 감축과 소규모 분산형 전력시스템으로의 전환 등 전기를 생산·수송·소비하는 전반에 걸쳐 '정의로운 전환'의 요구를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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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모내기를 마친 논 한 가운데 있는 송전탑.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제공

6·11 밀양 행정대집행 10년 ①

남어진 |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집행위원

2005년부터 시작한 경남 밀양 주민들의 초고압 송전탑 반대 투쟁은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고 말한 고 이치우 밀양 주민의 분신과 할머니들의 투쟁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밀양 투쟁은 우리가 편하게 사용하는 전기가 수많은 지역주민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며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진실을 알려주었다. 이에 전국에서 모인 밀양의 친구들은 전기에 대한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모두 밀양”이라고 함께 외쳤다. 그러나 2014년 6월11일, 송전탑 부지에 주민들이 짓고 친구들이 함께 지켰던 4개 농성장을 2000여명의 경찰과 공무원이 단도와 절단기로 처참히 짓밟았다. 그 무렵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을 위해 투입된 경찰만 약 38만명이었다.

어느새 높이 100m의 765㎸ 송전탑에 전기가 흐른 지 10년이다. “타타타탁” 전기 튀는 소리가 종일 귓가에 맴돈다. 밤새 송전탑에 설치된 항공장애표시등이 반짝인다. 송전탑 바로 아래 밭에 서면 송전선 그림자가 땅을 수십 갈래로 가른다. 갈라진 땅처럼 마을공동체도 갈라졌다. 평생 농사를 짓던 농부가 자신의 밭을 버렸다.

핵발전소는 수도권에서 가장 먼 곳에 밀집해 있고, 초고압 장거리 송전선로로 전기를 실어나른다. 발전소와 송전탑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삶의 터에서 쫓겨나고, 짓밟히고, 병에 걸렸다. 그런데 도시 사람들은 ‘전기’를 마치 물과 공기같이 당연한 물질로 인식하는 것 같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빠르게 전기화되어 더는 전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게 됐다. 대한민국의 미래 주력 산업이라는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단지를 돌리려면 핵발전소 7기 만큼의 전기가 필요하다. 인공지능(AI) 혁명은 24시간 가동하는 데이터센터 없이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 2050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 시나리오는 2050년 전기 수요를 현재의 2배로 예측했다. 윤석열 정부는 기후위기에 핵 진흥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임기 안에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을 모두 연장하고, 핵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핵발전으로 발생한 고준위 핵폐기물에 대한 대책 없이 임시 저장시설 추가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키려 한다.

이에 누군가는 졌다고 말한다. 송전탑이 들어섰으니 끝이라고 말한다. 국가의 전력 사업을 막을 수 있겠냐고 말한다. 그럼에도 송전탑 아래에서, 송전탑을 뽑기 위해 투쟁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과 함께하는 우리의 마음 또한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밀양 투쟁을 통해 이미 세상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발전소와 송전탑 인근 주민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국가가 더는 일방적으로 부지를 선정할 수 없게 되었고, 전력 수요 감축과 소규모 분산형 전력시스템으로의 전환 등 전기를 생산·수송·소비하는 전반에 걸쳐 ‘정의로운 전환’의 요구를 만들 수 있었다.

2014년 6월11일 101번 행정대집행 현장에서 농성장을 지키는 주민과 시민들. 홍진훤 사진가 제공

밀양 행정대집행 10년을 맞아 6월8일, 전국 15개 지역에서 희망버스가 출발해 밀양에서 열리는 ‘윤석열 핵 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에 참여한다. “졌더라도 후회 없이 싸웠기 때문에, 싸울 수 없는 지금보다 생을 걸고 싸웠던 옛날이 그립다”는 주민들과 지난 투쟁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투쟁을 결의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10년 전 “우리는 모두 밀양”이라고 외쳤던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여전히 우리 모두가 밀양이라면 지금 무엇을 함께해야 하는가? 그리고 전기 없이 살 수 없는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6월8일 존엄하고 안전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신명 나게, 다 같이 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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