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경쟁’ 어쩌다 게임이 됐나 [크리틱]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70년 주변 건물보다도 3배나 높았던 31빌딩이 완공됐을 때 국가 차원의 축제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고향 유럽에 대한 미국인의 열등감이 높이로 만회하려는 내적 동기로 작동한 것처럼, 세계 최부국의 상징인 맨해튼보다 더 높은 마천루 도시를 짓는 것이 발전의 유일한 규칙이라 믿은 아시아인들과 아랍인들은 푸동과 두바이에 고층건물을 경쟁하듯 올리는 중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
1970년 주변 건물보다도 3배나 높았던 31빌딩이 완공됐을 때 국가 차원의 축제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1985년 63빌딩이 여의도에 세워지자 한강에 터졌던 불꽃놀이는 많은 이가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2016년 잠실에 123층 롯데월드타워가 준공됐을 때, 레이저 불꽃쇼를 보면서 많은 한국인은 이렇게 생각했다. “아.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 됐구나.” 이렇게 고층빌딩은 알게 모르게 번영, 성취 같은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뉴욕 맨해튼의 야경은 지금도 많은 이에게 환상을 준다. 그런데 이런 질문 자체가 낯설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걸까?
17~18세기 유럽에서 건너온 아메리카 이주자들은 본국에 대한 문화적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유럽은 왕과 교회만이 높은 건물을 지어왔고 그것은 곧 권력의 동의어였다. 그런데 19세기가 되자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수천년 돌과 벽돌로 쌓아올리던 서구의 건설 방식이 콘크리트와 철골로 건물을 조립하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풍요로운 유산을 지닌 유럽이 이 신기술을 간과하는 사이, 과거 역사의 무게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왔던 신대륙 이민자들은 건물을 쉽게, 높이 지을 수 있는 새로운 방식에 열광한다. 그동안의 자격지심을 일거에 반전시킬 기회라 여긴 것이다. 이 욕망과 기술이 만나면서, 인류 최초의 고층현대도시 맨해튼이 탄생한다.
1890년 10층 정도였던 건물 높이가 경쟁이 본격화되자 1910년 50층으로 급격히 늘어나더니 1931년 드디어 100층 고지에 다다른다. 세계 최고층이라는 기술적 패권자의 명예와,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아르데코 양식을 외관에 입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이때 세워진다.
대부분의 문서들은 이 짧은 기간에 올린 건물 높이를 인류가 중력과 기술의 한계를 극복한 승리의 역사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경쟁이 편법과 선동으로 가득한 비열한 역사이기도 했다는 점을 처음 밝힌 것은 1978년에 와서였다.(‘정신착란증의 뉴욕’, 램쿨하스) 경쟁 건물보다 얼마라도 높이기 위해 사람 못 사는 첨탑이나 송신탑을 올려 높이에 더하기도 했고, 건설 중인 다른 타워가 완성되기를 기다렸다가 마지막에 설계 변경을 해 조금 더 높게 완공하는 눈치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뉴욕의 건축가와 개발업자는 도시의 적정한 밀도나 지속 가능한 규모 같은 문제는 침묵한 채, 시민의 집합적 욕망을 부채질하는 이론과 전략을 제공해 일거리를 보장받았고, 마천루들끼리 강박적인 경쟁에 매몰되도록 갖가지 유인 요소들을 개발하여, 투자자와 대중을 높이 경쟁에 몰두한, 이른바 미인대회의 심사위원과 관중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고층건물비교표의 실체는, 바로 건물끼리 높이 경쟁을 부추기고, 시민을 게임에 몰두하는 관객으로 유인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고안해 낸 업계의 상업전략이었다.
맨해튼식 게임의 틀은 이런 식으로 설정되었고, 몇십년 후 아시아인과 아랍인을 게임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고향 유럽에 대한 미국인의 열등감이 높이로 만회하려는 내적 동기로 작동한 것처럼, 세계 최부국의 상징인 맨해튼보다 더 높은 마천루 도시를 짓는 것이 발전의 유일한 규칙이라 믿은 아시아인들과 아랍인들은 푸동과 두바이에 고층건물을 경쟁하듯 올리는 중이다. 지금도 대만에서, 사우디에서, 싱가포르에서 몇층짜리 빌딩이 준공되었다는 소식이 매일매일 들려온다. 대한민국의 청라와 용산이 그렇게 끼고자 하는 게임의 규칙은 그렇게 설정되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오늘 ‘채상병 특검법’ 새로 발의…부결 전보다 수사범위 커졌다
- ‘이재명’ 수사지휘 ‘친윤 검사’, 도이치 사건 지휘 맡는다
- 윤, 전세사기법·민주유공자법 등 거부권 행사…취임 뒤 14건째
- 이재명 “민생지원금 차등 지원도 수용”…즉각 거부한 추경호
- 주택·도로·논밭 덮친 북 ‘오물풍선’ 260개…GPS 교란 공격도
- ‘채 상병’ 대대장 정신병원 입원…“책임 회피 않겠다, 유족께 죄송”
- 이준석 “‘대통령 멍청하다’, 그렇게 못 할 평가냐”
- 지금도 금사과·금배인데…과수화상병 확산, 과일값 더 치솟나
- 1분기 일터에서 숨진 노동자 138명…사업주 잘못으로
- 6개월간 입에 낚싯바늘 꽂힌 새끼 돌고래…“사람 보면 달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