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사라진 여가부 여성정책도 사라졌다 [심층기획-여가부 장관 공백 사태 100일]

조희연 2024. 5. 2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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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 없는 부처 ‘있으나 마나’… 표류하는 성평등·여성정책
차관 직무대행 체제 운영… 현상 유지
교제폭력 살인사건 등 현안 대응 못해
후임 임명·논의도 안 해 부처 힘 빠져
전문가 “정책적으로 무력화시켜” 지적
여성폭력방지위 회의만 열고 대책 ‘無’
尹대통령 2024년 여가부 업무보고 안 받아
2년간 여성정책 브리핑 단 1건도 없어
수장 없는 부처 존치에 정책 ‘진공 상태’
유엔 “2년간 韓 성평등·여성정책 후퇴”
전문가 “이제라도 컨트롤타워 복원해야”

여성가족부 장관 공석이 100일째(29일 기준)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현숙 전 여가부 장관이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지겠다며 제출한 사표를 2월20일 수리한 이후 이날까지 후임 장관을 임명하지 않고 있고, 후보자 논의도 하지 않고 있다.

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폭력방지위원회 제2전문위원회를 개최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여가부 장관 부재는 여가부를 ‘시나브로’ 폐지시키는 방법으로 여겨진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가부 폐지’를 공약했지만 야당과 국민 반발로 실행하지 못했다. 대신 장관 자리를 비워둠으로써 부처의 힘을 빼고 정책적으로 무력화시켰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여가부가 수장 없는 상태로 존치하면서 윤석열정부의 여성 정책은 ‘진공상태’다.

◆“교제폭력 정책 보완” 공염불

장관 직무를 대리하는 신영숙 여가부 차관은 9일 “강남역 인근에서 발생한 교제폭력 살인사건을 접하며 비통한 마음”이라면서 “여가부는 정책을 살피고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강남 교제살인’ 사건과 ‘거제 교제폭력 사건’ 등 교제폭력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는데 주무부처인 여가부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부랴부랴 내놓은 입장문이었다. 

이후 여가부는 14일 ‘여성폭력방지위원회 제2전문위원회’를 개최했다. 문제 해결을 한다며 열긴 했는데, 29일 세계일보 취재결과 이 회의는 속빈 강정이었다. 여가부는 현재까지 교제폭력에 대한 어떠한 원인 분석이나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신 차관이 입장문에서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발굴,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정책은 하나도 없다”며 “회의 내용도 공개하지 않아서 지금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여가부는 “회의 내용을 토대로 관계 부처인 법무부·경찰청과 대책을 준비 중”이라며 “6월 발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애초 회의 개최 자체도 시늉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이 회의에 민간위원 9명과 정부위원 3명(법무부 검찰국장, 여가부 권익증진국장, 경찰청 여성안전학교폭력대책관)이 참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가부 권익증진국장은 공석인 탓에 과장급이 대리 참석했고 법무부에서는 평검사가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장관 부재 속에 여성폭력을 담당하는 주무부처가 힘을 잃고 관련 부처도 문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현백 전 여가부 장관(2017∼2018년 역임)은 “여가부 업무는 다른 부처와 협업·조율이 필요한데, 장관이 없으면 정책이 겉돌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여가부가 담당하는 여성폭력 문제의 경우 수사기관과 협업해야 하고, 고용평등과 경력단절 문제는 고용노동부와, 돌봄 문제는 보건복지부, 학교밖청소년이나 성평등 교육 문제는 교육부와 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장관 단위의 논의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정 전 장관은 “100일 동안 장관을 임명하지 않는다는 건 대통령이 부처의 역할을 왜소하게 본다는 증거”라며 “특히 요즘 젠더 문제가 심각해 성평등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는 게 중요한데, 성평등 정책을 주관하는 조직의 대표가 없다는 건 이 정부가 얼마나 성평등 문제에 관심 없는지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기능 강화”라지만 실상은 ‘기능 부재’

윤석열정부는 그동안 “여가부를 폐지해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현실은 지난 2년간 여가부는 존치하되 기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5월달 달력이 곧 뜯겨져 나가지만 윤 대통령은 아직 올해 여가부의 ‘주요업무 추진계획’조차 보고받지 않았다. 지난해 여가부 정책에 대한 평가와 올해 여가부의 핵심 업무가 무엇인지조차 합의되지 않은 셈이다. 특히 여가부의 ‘여성 정책(양성평등 정책)’이 약화하고 있다.

국회에 따르면 올해 여가부는 예산을 전년 대비 1557억원(9.9%) 증액하면서도 여성 정책 예산은 21억원(0.8%) 삭감했다.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 콘텐츠 제작 △성희롱 등 직장내 여성폭력 방지 및 지원 성인권 교육 운영 △가해자 교정치료 프로그램 예산을 없애고, △성폭력 피해자 의료비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운영 △성폭력피해 상담소 보호시설 운영 예산을 줄인 영향이다. 성평등 정책, 특히 여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사업을 축소한 것이다.

여가부가 추진한 정책을 봐도 문제는 여실히 드러난다. 각 부처는 장차관이 발표하는 주요 정책의 경우, 이를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 브리핑을 한다. 2022년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현재까지 2년간 여가부도 총 15건의 브리핑을 했다. 이 중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발표하는 기본계획 4건과 부처 차원에서 진행하는 업무보고 2건을 제외한 9건 중 청소년 정책이 8건, 가족 정책이 1건이다. 여성 정책은 단 1건도 없다.

전 정부와 비교하면 방향성은 더욱 뚜렷이 대비된다. 2017년 5월10일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첫 2년간 여가부 주최 브리핑은 12건이다. 법적으로 의무화된 1건과 부처 차원의 1건을 제외한 10건 중 9건이 성폭력·가정폭력·데이트폭력 등 여성 정책 관련이었다.

2017년 미투운동 등 여성폭력 문제가 대두되자 문 대통령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적절한 대응이 이뤄질 수 있는 조직 내부 시스템과 문화 정착이 시급하다”며 나서고, 정현백 전 여가부 장관이 대책을 마련하며 호응한 영향이다.

지난 2년 동안에는 신당역 살인사건(2022년 9월14일), 인하대 성폭행 사망(2022년 7월15일), 신림 공원 성폭행살인(2023년 8월17일), 강남 교제살인(2024년 5월6일) 등 여성살해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했지만, 윤 대통령과 김현숙 전 장관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2022년에 정체돼 있는 여성 정책

한국의 여성 정책 후퇴는 국제사회 비판에 직면했다.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제9차 국가보고서 심의에서 CEDAW 위원들은 한국 정부가 지난 2년간 성평등 정책과 예산을 축소하고 여성차별 해소 정책도 내세우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CEDAW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권익보호를 위해 197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협약으로, 정부는 4년마다 정책 성과를 국가보고서 형태로 제출해 심의받는다.

서울 종로구 서울정부청사 여성가족부의 모습. 최상수 기자
이번에 제출된 한국 보고서에는 2018년부터 2022년 3월까지 추진한 정책 내용이 담겼는데, 여가부가 보고서에서 정책 성과로 내세운 건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스토킹방지법 △인신매매방지법 △디지털성범죄 대책 등으로 대다수가 전 정부에서 제정됐거나 기초가 다져진 내용이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법을 만든 뒤에는 그 법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인데, 윤 정부는 여가부가 그 역할을 다하도록 힘을 주기보다 부처를 폐지한다고 하고 장관을 선임하지 않으며 실질적 무력화를 추진해왔다”며 “윤 정부의 여가부가 전 정부의 성과를 거론하는 건 낯 부끄러울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CEDAW는 정부가 성평등 정책으로 구조적 차별을 해결해나가겠다는 약속인데, 윤 정부는 사실상 협약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차관이 심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협약 가입 당사국으로서의 책임 방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동안 여가부 장관이 정부 대표단을 꾸려 심의에 참석했는데, 이번에는 장관 직무를 대리하는 차관도 아닌 기조실장이 참석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차관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양육비이행법을 통과시킬 경우 소위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 남았다”고 해명했다.

여가부는 현재의 여성 정책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여성 정책이 부진하다는 비판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면서도 “법상으로 하게 돼있는 일은 충실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가부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 상황에서, 정부가 이제라도 장관을 임명해 적극적인 정책 구현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아동청소년특별위원장)는 “장관이 의지를 갖고 나서면 여성폭력 어젠다를 발굴하고 대책을 내놓으면서 변화가 생기는데, 지금 여가부는 기존 시스템을 점검하거나 사안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데 그치는 등 주무부처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며 “여성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누적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컨트롤타워를 복원해 부처의 원동력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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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보도] <장관 사라진 여가부 여성정책도 사라졌다> 관련

본지는 지난 5월 30일자 1면과 5면에 “장관 사라진 여가부 여성정책도 사라졌다” 제목 등의 기사에서 여성폭력방지위는 회의만 열고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으며, 여성폭력방지위 회의는 속빈강정이며, 애초 회의도 시늉에 가까웠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는 “여성폭력방지위원회를 열고 대책을 마련 중이었으며, 지난 6월 25일 대책을 수립, 발표했다”고 알려왔으며, “당시 여성폭력방지위원회 회의는 내실있게 진행되었고, 회의 결과를 토대로 교제폭력 피해자 지원방안이 수립되었다”고 알려왔습니다.

또한, 여성가족부는 “장관 공석에도 차관이 권한대행자(‘24.2.22.~)로서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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