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격노 후 국방장관 통화한 윤 대통령, ‘박정훈 해임’ 지시했나
이종섭 전 국방장관은 그동안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 사건을 경찰에 이첩한 지난해 8월2일, 윤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인 이 전 장관에게 전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것도 윤 대통령 개인 휴대폰으로 낮 12시~오후 1시 사이에 3차례 직접 전화를 걸어 4분5초, 13분43초, 52초씩 통화했다. 두 사람 간 첫 번째 통화 직후 이 사건을 수사단을 이끈 박정훈 대령은 보직 해임을 통보받았다. 국방부가 경찰에 이첩된 수사기록을 회수한 것도 그날이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석연찮다. 이 통화기록은 박 대령의 항명죄 재판 과정에서 군사법원의 사실조회 등으로 확인됐다.
앞서 이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지난해 7월31일에도 ‘02-800’으로 시작되는 용산 대통령실 유선 전화를 받고 2분48초 통화했다. 이후 이 전 장관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언론 브리핑을 취소토록 지시하고, 경찰에 사건 이첩도 보류시켰다. 윤 대통령은 8월8일 아침에도 이 전 장관에게 전화해 33초간 통화했다. 다음날 이 전 장관은 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에 넘겼다. 우연이 계속되면 그것은 필연이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격노에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궤변이다. 윤 대통령은 격노에 그치지 않고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 통화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군 통수권자가 점심시간에, 해외 출장 중인 국방 수장에게, 개인 휴대폰으로 1시간 새 3차례 잇달아 전화한 것은 누가 봐도 극히 부자연스럽다.
지난해 7말8초 대통령실과 국방부, 해병대, 경찰에서는 채 상병 사건 처리를 놓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났다. 사건 규명에 최선을 다한 해병대 수사단장이 오히려 항명 혐의로 수사를 받고 기소됐다. 올 초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피의자로 입건돼 출국금지된 이 전 장관이 호주대사에 임명됐다. 지난 28일엔 여당의 조직적인 반발로 국민 다수가 원한 ‘채 상병 특검법’이 무산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퍼즐 조각이 맞춰지고 있다. 모든 해괴와 혼란의 정점에 윤 대통령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채 상병 사건은 이제 질적으로 달라졌다. 단순한 수사 외압 수준을 넘어 채 상병의 죽음을 축소·은폐하고 해병대 수뇌부를 봐주려고 권력이 개입한 초대형 게이트로 비화했다. 사안이 엄중하다. 증거 인멸 등 추가 범죄 우려도 크다. 공수처는 즉각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대한 강제 수사에 착수하고, 22대 국회는 개원 즉시 채 상병 특검법을 재발의해야 한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또 아파트 지하주차장 ‘벤츠 전기차 화재’에…주민 수십명 대피
- 한동훈 “이재명 당선무효형으로 434억원 내도 민주당 공중분해 안돼”
- “그는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다” 1인 시국선언한 장학사…교육청은 “법률 위반 검토”
- 서울시 미팅행사 ‘설렘, in 한강’ 흥행 조짐…경쟁률 ‘33대 1’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