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의 세상만사] 누가 진짜 공인(公人)인가

노동일 2024. 5. 2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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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은 공인 아닌 유명인
국민 세금 받는 사람이 공인
정치인 잘못에 더 엄격해야
노동일 주필
"훨씬 더 무거운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 X들은 구속도 안 하면서 너무하는 거 아니야?" 최근 가수 김호중씨를 다룬 시사프로에 출연한 적이 있다. TV를 본 지인이 항의성 전화를 해왔다. "증거인멸 우려" 등의 설명에 그는 수긍하지 않았다. "구속하더라도 영장심사를 조금 늦게 해도 되는 거 아니냐"면서 험한 말이 이어졌다. "정치하는 X들은 구속도 못하고, 재판에 안 나가도 꼼짝 못하는 판사·검사 X들이 일반 국민들에게는 더 엄격하게 군다니까." 영장심사를 금요일 아닌 월요일에 할 수도 있었음을 생각하면 잘못된 말이라고 탓하기도 어려웠다. 열성팬 한 사람의 과도한 생각만도 아니다. 김씨 관련 기사에는 정치인들과 김씨를 대비하는 댓글이 차고 넘치는 것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월 배우 이선균씨가 사망했을 때 언론에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 기사를 소개하는 글이 실린 바 있다. 기사는 한국에서 교수로 일하는 프랑스인 앙투안 코폴라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프랑스인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국에서) 공인은 오래전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책무를 갖고 있다"며 "공적인 것은 모두 사회 도그마에 부합해야 한다는, 일종의 청교도주의가 존재한다"고 했다. 우리 언론은 이 기사를 "(한국은) 공인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한국에서는 공인(公人)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두 사건을 접하며, 공인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잘못되어 있다는 평소 생각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원래 공인(public official)이란 공직자 혹은 그와 유사한 공적 신분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사전에서는 '공직에 있는 사람'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거나 직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이 들어가는 사람이 본래적 의미의 '공인'인 것이다. 공무원이 대표적이다. 임명직은 물론 선출직 공무원도 당연히 공인이다. 대통령을 필두로 한 행정부 공무원, 국회의원 등 입법부 공무원, 판사 등 사법부 공무원, 지자체장과 의원 등도 모두 공인에 해당한다. 흔히 공인이라고 말하는 공적 인물(public figure)은 진짜 공인보다는 넓은 개념이다. 널리 알려진 인물, 연예인 등 유명인(셀럽·celebrity)을 공인으로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일부 판례에서 연예활동을 공적 영역이라고 하거나 연예인을 공인으로 지칭하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 뿐 사전적 의미의 공인은 아니다. 연예인 등이 물의를 일으킬 경우 '공인'이라고 부르면서 지나치게 가혹한 비난을 하는 태도는 따라서 공인 개념을 혼동하는 것이다.

버닝썬 사태가 발생했을 때 배우 이순재씨가 말했다. "우리는 공인이 아니지만 공인적 성격을 띠고 있는 직업"이라며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공인적 성격과 공인은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정치는 그 자체로 공공의 영역(public service)이다. 자기관리에 실패한 연예인은 개인적 죗값을 치르면 끝난다. 반면 공인인 정치인들의 문제는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국가시스템을 파괴하는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구속영장심사에서 '징역 50년'이라고 언급한 사람이나, 재판에서 유죄가 나온 사람들이 공공연히 정의를 외치는 장면을 매일같이 목격하고 있다. 믿어지지 않는 초현실이다. 이들은 극단적 혼란을 초래할 대통령 탄핵을 쉽게 입에 올린다. 자신들의 범죄 혐의에 대한 최종 방탄막이기 때문이다. 외신의 표현처럼 '도덕성의 제단'에서 산산조각이 나야 할 공인들이다.

높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건 공인의 당연한 책무이다. 세금으로 봉급을 주는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연예인이 공인이 아니라는 건 그들의 잘못을 가볍게 여겨야 한다는 게 아니다. 공적 영역에서 퇴출되어야 할 진짜 공인이 누구인지 분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분별력이 국민의 평균적 도덕성보다 못한 인물들을 공인으로 선출한 것이라면 그 후과도 국민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

dinoh786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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