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연금개혁의 신화와 논리

파이낸셜뉴스 2024. 5. 2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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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우리나라 연금개혁 논의를 주도하던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의가 결국 빈손으로 22대 국회로 넘기게 되었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직무유기, 보건복지부의 지지부진에 더해 국회의 무능으로 연금개혁은 다시 표류하게 되었다. 특위 개혁방안 공론화를 위해 시민 1만명 중에서 성, 연령, 지역, 연금개혁에 대한 의견분포를 고려해 시민대표단 500명을 선발해 학습과정을 거치고 대안에 대해 투표도 했다. 당연히 더 내고 더 받겠다는 응답이 더 내고 그대로 받겠다보다 높았다. 지난 17년간 개혁의 필요성만 이야기하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던 것에 비하면 여기까지 온 것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여전히 소득보장론과 재정안정론으로 나뉘어 팽팽한 대립각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복잡한 내용이지만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월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는 현행 국민연금제도는 은퇴 뒤 일할 때 벌던 소득의 40%를 보장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문제는 1990년생이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2055년에 국민연금 적립금이 고갈되어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데 있다. 기금이 고갈된 이후 시점의 일하는 세대는 2078년경 월 소득의 35%를 보험료로 내야 동일한 소득보장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연금을 받기 위해 베이비부머인 기성세대는 9%만 내던 보험료를 갑자기 4배 가까이 내야 하기에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연금개혁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국회 연금특위가 활동한 지도 21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소득대체율을 인상해야 하는지,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보험료율을 어느 수준으로 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사실판단도 증거기반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스웨덴의 확정기여(defined contribution) 방식 또는 핀란드의 확정급여(defined benefit) 방식을 이야기한다. 확정기여 방식은 보험료 수준을 미리 정하고 급여는 보험료와 그 운용수익에 따라 정하는 방식이며, 확정급여 방식은 급여수준을 미리 정하고 그렇게 정해진 급여를 지급하는 것으로 급여 변동의 위험은 국가부담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나라 모두 보험료율이 18.5~24%로 매우 높다는 점이다. 북유럽까지 갈 것도 없다. 가까운 일본도 저출산·고령화·저성장으로 인한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2004년 획기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출산율과 기대수명 변화에 맞춰 연금액이 삭감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했다. 후생연금 보험료를 13.93%에서 13년간 매년 0.354%p를 올려 2017년 18.3%로 올렸다. 기초연금의 국고지원 비율을 확대하기 위해 소비세율도 올렸다. 그리고 2012년 우리의 국민연금인 후생연금과 공무원연금의 통합을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은 100년 후에도 1년치 지급액 보유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베이비부머가 은퇴하기 시작하고 있는 현재 사회구조에서 고령자에게 계속해서 많은 연금을 지급할 것인지, 저출생으로 부담계층이 대폭 줄어드는 다음 세대에도 지속가능한 공적연금을 물려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개혁을 통해 지속가능성이 높아지고 국민이 안심하며 정부를 신뢰하게 하려면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노인빈곤 문제와 소득재분배 관련 이슈를 국민연금 개혁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신화(神話)라는 점을 잊지 말자.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기금고갈의 위험 없이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하여 미래세대가 납부하는 보험료와 운용수익은 미래세대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 이전에 납입된 보험료에 대해서는 기존 확정급여형으로 약속된 연금을 지급하되,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재정부족분은 일반재정에서 충당하는 과감한 해결방안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나라의 개혁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이러한 개혁은 조기에 단행할수록 재정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을 잊지 말자. 이제는 대통령과 국회가 함께 나서야 할 때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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