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에서 어떻게 이런 소리가? '조약돌 75' 한 달 사용기
최근 중국산 키보드 공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훌륭한 타건감, 높은 완성도,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죠. 그 선두에 레이니 75라는 키보드가 있습니다. 레이니 75는 중국 Wob 랩(Wob Lab)이라는 업체에서 만든 풀 알루미늄 키보드인데요. 기성 키보드를 뛰어넘는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출시 직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레이니 75는 출시 초기 중국 현지에서 모든 물량이 동나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죠. 국내에서도 레이니 75는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요. 정식 출시된 제품이 아님에도 이를 구하려는 키보드 마니아들이 줄을 이었어요. 그러던 중 지난달 레이니 75와 대적할 키보드가 국내에서 정식으로 출시됐는데요. 바로 SPM이라는 업체에서 선보인 ‘조약돌 75’입니다.
조약돌 75가 출시되자마자 구매해서, 약 한 달간 사용해 봤는데요. 조약돌 75가 가진 특징과 장점은 무엇이고,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정리해 봤습니다.
풀 알루미늄 재질 하우징
키보드 내부 부품을 보호하는 외부 껍데기를 하우징이라고 합니다. 기성 키보드는 대부분 하우징 재질이 값싼 플라스틱이에요. 조약돌 75는 하우징 전체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알루미늄은 여러 면에서 플라스틱보다 뛰어납니다. 외부 충격에 강하죠. 무게감이 있어 안정적인 타건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에요. 금속 재질이 주는 고급스러운 느낌은 덤이죠.
단 알루미늄 하우징에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생각보다 많이 무거워요. 조약돌 75의 경우 75% 배열인데도 무게가 약 1.8kg에 달합니다. 현재 사용 중인 풀배열 기계식 키보드가 약 1.2kg인 점을 감안하면, 크기 대비 무게가 상당한 겁니다. 휴대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참고로 풀배열에서 숫자패드를 뗀 배열을 텐키리스라고 하는데요. 여기서 크기를 조금 더 줄인 배열이 75% 배열이에요.
75% 배열, 장점은 아닌 듯
75% 배열은 키보드 부품을 사서 조립하는 커스텀 키보드 분야에서 많이 보이는 배열이에요. 기성 키보드를 사용하는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습니다. 텐키리스의 경우 숫자패드만 빠졌지만, 75% 배열은 프린트 스크린, 스크린 락, 인서트 버튼이 없습니다. 오른쪽 쉬프트 버튼이 작아 사람에 따라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책상 공간을 넓게 쓰고 싶은 사용자, 특히 작은 키보드를 선호하는 게이머라면 75% 배열이 나쁘지 않을 겁니다. 75% 배열이 풀배열 키보드에 비하면 많은 키가 빠졌지만, 게임을 하는 데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거든요. 텐키리스보다 공간을 적게 잡아먹어, 깔끔한 데스크 환경을 조성하는 데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죠.
산뜻한 색상...분체 도장은 조금 아쉽다
조약돌 75는 크림 옐로우, 치즈 화이트, 딥블루 등 총 세 가지 색상이 공개됐는데요. 정식 출시된 제품은 크림 옐로우 하나입니다. 제가 사용하고 있는 조약돌 75도 크림 옐로우죠. 평소 노란색을 좋아하지 않지만, 색 조합이 나쁘지 않습니다. 노란 파스텔톤 하우징과 하얀 키 조합이 산뜻합니다. 중간에 회색 키와 노란 키가 섞여 있어 보는 재미도 있죠.
외관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하우징 도장 방식인데요. 조약돌 75는 분체 도장으로 하우징에 색을 입혔어요. 분체 도장이란 가루 형태 도료를 이용해 제품 표면에 색을 입히는 방식입니다. 분체 도장을 하면 표면에 얇은 막이 생긴다는 단점이 있어요. 또 작업 특성상 표면이 매끄럽지 않죠. 실제 조약돌 75 하우징 겉면을 만져보면 우둘투둘한 느낌이 들어요.
진짜 조약돌 소리 같은 타건음
조약돌 75의 가장 큰 장점은 타건음입니다. 키를 누르면 조약돌 두 개를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납니다. ‘도각도각’이나 ‘따닥따닥’ 같은 의성어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키를 누를 때 필요한 힘은 크지 않은 편인데요. 조금만 눌러도 키가 바닥에 닿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맑고 단단한 ‘딱’ 소리가 납니다. 청축, 갈축 같은 대중적인 기계식 스위치와 전혀 다른 소리에요.
조약돌 75에서 좋은 소리가 나는 이유는 기성 키보드와 다른 설계 때문입니다. 먼저 사용한 스위치부터 다릅니다. 조약돌 75는 페블(Pebble, 조약돌)이라는 자체 개발한 스위치를 사용합니다. SPM에 따르면 페블 스위치는 조약돌 소리와 비슷한 타건음, 키가 바닥을 치는 듯한 느낌이 살린 스위치라고 해요.
키보드 마니아들은 잡음이나 통울림을 최소화하기 내부에 흡음재를 넣곤 하는데요. 안을 흡음재로 가득 채운 구조를 이른바 ‘폼떡’이라고 부릅니다. 조약돌 75는 전형적인 폼떡 키보드에요. 포론, PET, IPXE, EPDM 등 다양한 재질의 흡음재로 가득 차 있습니다.
키보드 하우징은 상판과 하판으로 나뉘고 그 안에 보강판, 기판 등 중요한 부품이 들어있어요. 일반적인 기계식 키보드는 상하판을 나사로 고정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나사가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곳의 타건음이 달라진다는 단점이 있어요. 조약돌 75는 가스켓 방식을 썼는데요. 상판과 하판 사이에 고무처럼 탄성 있는 가스켓이라는 부품을 넣어서 결합합니다.
가스켓 방식을 사용하면 내부 부품이 하판에 부착되지 않고 떠 있는 형태가 됩니다. 그래서 누르면 부드럽고 탄력이 느껴지죠. 가스켓이 부품에 전달되는 충격과 잡음을 흡수하기에 좋은 타건음을 만들어 줍니다. 나사 방식처럼 불규칙한 소리를 내지도 않죠.
스테빌라이저는 엔터, 스페이스바처럼 긴 키 균형을 잡아주는 철심 형태 부품인데요. 철심이 구부러졌거나, 마감이 좋지 않으면 키를 눌렀을 때 ‘찰찰’하는 잡음과 통울림이 생겨요. 누르는 부위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기도 하죠. 그래서 스테빌라이저를 따로 조정하는 사용자들이 있는데요. 조약돌 75는 스테빌라이저에 손을 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잡혀있어요.
단점이라면 소리가 좀 커요. 그것도 많이요. 사무실, 독서실처럼 다른 사람과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사용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소리가 맑아 더 잘 들리니, 웬만하면 집이나 개인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게 좋을 겁니다.
유용한 편의 기능
조약돌 75는 다양한 연결 방식을 지원합니다. 유선, 무선 방식을 지원하죠. 무선은 2.4Ghz 동글, 블루투스 방식 중에 선택할 수 있어요. 배터리 용량이 4000mAh로 넉넉한 편이라, 무선 사용에 큰 불편이 없습니다. 지연 시간도 짧은 편인데요. 유선 연결 시 2ms, 2.4GHz 무선 연결 시 3ms입니다. 블루투스는 조금 느립니다. 지연시간이 8ms에 달합니다.
웹 키설정 프로그램 비아(VIA)를 지원한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75% 배열 키보드는 키 수가 적기에 FN키와 다른 키를 조합해서, 특정 기능을 불러와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비아를 활용하면 다양한 키 조합을 만들 수 있어요. 또 각 키에 원하는 기능을 자유롭게 할당할 수도 있죠. 비아는 웹사이트 형태라, 복잡하게 여러 파일을 내려받을 필요가 없어 편리해요.
기성 기계식 키보드 중에는 스위치를 기판에 납땜해 놓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와 달리 스위치를 쉽게 뺐다 꽃을 수 있도록 한 설계를 핫스왑이라고 해요. 조약돌 75는 핫스왑을 지원해서 스위치를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어요. 핫스왑은 고장 난 스위치를 새것으로 갈아 끼우거나, 다른 스위치를 사용하고 싶을 때 정말 편리합니다.
초기 불량 이슈만 아니었다면...
아쉽지만 조약돌 75는 초기 품질 불량 문제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좌측 Ctrl 키와 우측 방향키가 다른 키보다 위로 튀어나오는 현상이 발생했어요. 내부 기판을 하우징에 결합하면, 휘면서 맨 끝 두 키가 솟아오르는 것이라고 알려졌어요. 설계가 잘못된 거죠. SPM 측은 원하는 사용자를 대상으로 환불을 진행했지만, 한번 떨어진 제품 이미지를 다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다음 생산 물량은 아무 문제 없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테크플러스 윤정환 기자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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