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우파 포퓰리즘과 지방정치
지방정치에서도 정치적 올바름 조롱 만연
무능력 감추는 우파 포퓰리즘 민낯 드러나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지난달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통과시키면서 충남도에 이어 서울시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처지다. 서울시교육감이 재의를 요구해 다음 달 시의회에서 재의안이 투표에 부쳐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조례 폐지를 주도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75명) 숫자가 압도적이라 반전 가능성은 낮다. 대법원 제소라는 최후의 카드가 남아있지만 시민 9만7,702명 발의로 제정돼 12년간 유지됐던 조례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학생 인권과 교권이 충돌하는지, 아니면 상보적 관계인지는 교육현장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조례 폐지를 밀어붙이는 쪽은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에서 자신의 인격이 더 존중받는다고 느낄수록 학생이 교권을 중시한다는 자료(김종우∙김위정∙이가람 ‘학생인권과 교권 관계에 관한 학생의 인식’∙2022) 등 반박 증거도 상당하다. 교사에게 떠안겨진 과도한 직무, 미흡한 교사 지원 제도 등에 대한 고민 없이 학생과 교사 사이 갈등 증폭을 학생 인권의 증진 탓이라고 섣불리 지목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자기 책임 강조’라는 보수 철학의 구현으로 보기도 어렵다. 그보다는 ‘성적(性的) 지향성과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조례 한 구절을 문제 삼아 집요하게 조례 폐지를 주장했던 일부 기독교 단체의 숙원을 이 기회에 해결해 주겠다는 한탕주의적 행태에 가깝다.
학생인권조례 폐지처럼 최근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이거나 다수당인 지자체, 지방의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안을 특정 집단을 주변화, 혹은 악마화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근원적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차별을 공고화하고 대체로 경제사회적 약자인 소수집단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현상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퇴행적이기도 하다.
실제로 돌봄 공공성 강화를 위해 설립된 사회서비스원을 폐지하기 위해 서울시 측은 이 기관을 ‘노조 일자리만 만드는 기관’이라는 식으로 낙인찍었다. 서울시의회는 대형 마트가 월 2회 공휴일에 휴업하는 규정을 삭제한 조례안도 통과시켰는데 주민 편의 증진이라는 명분이 일부 박수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대형 마트 종사자들의 주말 휴식권은 아예 고려 대상도 안 됐다. 9월부터 저출산 대책으로 서울에서 시행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서울시가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을 낮게 줘야 한다는 미련을 떨친 것 같지는 않아서다. 2년 전 월 38만~76만 원에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쓰는 싱가포르 사례를 거론하며 도입을 주장하던 오세훈 시장은 최근까지도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적절한 보수 절충선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찰도 허용한 퀴어축제를 막겠다며 행정대집행으로 경찰과 몸싸움을 하며 공개적으로 성소수자 차별을 보여준 대구시의 행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취약노동자(노조),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된 위선이라고 조롱하며 이를 공격하는 우파 포퓰리즘은 세계적 조류이기는 하다. 소수자를 옹호하는 이들을 ‘약탈 세력’이라 부르며 20·30대 남성, 양극화로 경제적 위기에 빠진 취약계층을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는 건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의 전략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가짜갈등을 부추겨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무능력을 감추는 우파 포퓰리즘의 전략이기도 하다. 그 민낯을 우리는 지방정치에서도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이왕구 지역사회부장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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