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사회 기본시스템 무시…초법적"

채신화 2024. 5. 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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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장관, 특별법 개정안 재의요구 이유 밝혀
"오히려 갈등·혼란 증폭…신속 구제 어려워"
"시스템상 채권 경합시 경공매 거쳐야 가치 확정"

"개정안이 주장하는 '신속한 구제'라는 목표를, 개정안의 내용으로는 도저히 실현할 수 없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날(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 요구 제안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정부가 이날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결정하면서 21대 국회의 이 개정안은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29일 서울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재의 요구 제안 이유를 밝히고 있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e브리핑

정부는 29일 제24회 국무회의에서 '전세사기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 대해 재의 요구하기로 의결했다.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제1항의 기간(15일) 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국회의 폐회 중에도 또한 같다'는 헌법 제53조 제2항에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박상우 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주무장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재의 요구 사유는 개정 법률안의 집행이 곤란해 피해자들이 희망하는 신속한 피해 구제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혼란과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공공에서 피해자들이 보유한 '전세보증금 반환 채권'의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해 최우선변제금 이상의 가격으로 매입하고, 그 대금을 주택도시기금에서 지급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관련기사: 전세사기특별법 운명의 날…'개정안vs정부안' 뭐가 달랐나?(5월28일)

정부와 여당은 공정성 및 형평성 문제, 사회적 합의 부족 등의 이유로 개정안 통과를 반대해 왔다. 그러나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등 여권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찬성 170표, 반대 0표)시켰다. ▷관련기사: '전세사기 피해자 속탄다' 특별법 국회 통과…정부는 '거부'(5월28일)

박 장관은 재의 요구 이유 중 가장 먼저 전세보증금 반환채권 '가치 평가' 문제를 들었다. 그는 "피해자들이 갖고 있는 채권의 가치를 평가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라며 "예컨대 조세채권, 여타 질권 등 등기부등본에 표시되지 않아 확인하기 어려운 권리사항들은 사전에 확정적으로 명확하게 분석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설혹 가치를 산정한다고 해도 공공이 채권의 가치를 낮게 산정했다면 피해자들이 이를 납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공공과 피해자 사이에 채권의 가격을 두고 불필요한 분쟁만 발생할 것이 자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택지지구 개발의 사례를 보면 편입되는 부동산의 가격을 산정하고 협의를 거쳐 취득하는데 사업자와 소유자 간 이견으로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며 "예를 들어 공공주택지구 개발사업은 평균적으로 평가에서 보상 완료까지 수년의 기간이 소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피해 보전 재원의 부적절성도 지적했다. 박 장관은 "주택도시기금에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에 대한 예산이 반영돼 있지 않다"며 "주택도시기금은 무주택 서민의 청약저축에서 빌려온 재원인 만큼 이를 활용하는 데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개정안이 오히려 혼란을 일으킬 거라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나라 경제, 법률 시스템은 전세사기와 같이 다수의 채권이 경합하는 경우엔 경매, 공매라는 절차를 거쳐서 그 가치가 확정되도록 하고 있다"며 "사회의 기본 시스템을 무시하는 초법적인 내용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혼란과 갈등만 증폭시키게 된다"고 봤다. 

정부 역시 본회의 전날(27일) 자체 대책을 내놓은 점을 들어 피해자 지원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 장관은 "논의의 초점은 피해를 구제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가급적 많은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느냐 하는 방법론에 놓여있다"고 했다. 

그는 "일각에선 개정안이 통과되면 전세사기 피해자를 신속하게 구제할 수 있고, 정부는 마치 구제에 반대하는 것처럼  주장한다"며 "하지만 정부의 지원 의지는 확고하다. 정부는 정부안이 신속히 제도화될 수 있도록 여·야와 긴밀히 협의하고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함께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21대 국회의 임기가 이날(29일)까지라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결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다음 22대 국회에서 다시 특별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과반 의석을 차지한 야당도 재발의를 예고해 진통이 예상된다. 

채신화 (csh@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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