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아칼럼] 국민연금 개혁, 정부안부터 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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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국민연금 개혁이 단행된 것은 17년 전이었다.
이후 5년 주기로 나오는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네 차례 더 나왔고, 2007년 연금개혁 당시 2060년으로 예상됐던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기는 2055년으로 앞당겨졌다.
영국의 연금개혁 과정을 분석한 책 '코끼리 쉽게 옮기기'에 따르면 영국 연금위원회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최소한 '상태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연금과 관련된 객관적 사실을 솔직하고 상세하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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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정부 17년간 결정 미뤄
시나리오 나열만으로는
어떤 개혁도 이룰 수 없어
개혁방향·숫자 결정하고
국민 설득하는 게 정부 역할
마지막 국민연금 개혁이 단행된 것은 17년 전이었다. 이후 5년 주기로 나오는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네 차례 더 나왔고, 2007년 연금개혁 당시 2060년으로 예상됐던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기는 2055년으로 앞당겨졌다. 정부와 정치권은 연금개혁 필요성을 외쳤지만 누구도 행동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은 직전 정부에서 연금개혁이 있었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권은 공무원연금 개혁에 나섰다며 국민연금에 손을 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현행 유지'를 포함한 네 가지 개혁안을 제시하며 국회에 결정을 떠넘겼다. 결과는 연금개혁 무산이었다.
윤석열 정부도 다를 것이 없다.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제5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에는 보험료율을 얼마나 올릴지가 포함되지 않았다.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을 조합한 24개 시나리오가 제시됐을 뿐이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사회적 합의 없이 숫자만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했는데, 숫자 없는 개혁은 불가능하다. 국회 연금특위는 연금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3~44%로 높이는 안을 도출했다. 여야 이견은 좁혀지는 듯했지만, 대통령실과 여당이 구조개혁을 함께 추진하기 위해 공을 22대 국회로 넘기자며 개혁안 처리를 거부했다. 그렇게 21대 국회는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있다면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22대 국회는 이를 동력으로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정부도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된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국회가 고르기만 하면 될 정도의 선택지를 제출하겠다고 공약했다"며 6000쪽에 가까운 방대한 자료를 국회에 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도 "정부안을 내고 따라오길 바라기보다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안을 선택하는 방법이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연금 청사진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그동안 정부가 이 역할을 하지 않고 결정을 미뤄온 대가가 연금 고갈 시기 단축과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다.
영국의 연금개혁 과정을 분석한 책 '코끼리 쉽게 옮기기'에 따르면 영국 연금위원회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최소한 '상태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연금과 관련된 객관적 사실을 솔직하고 상세하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진영 논리가 아닌 사실을 통해 자신과 미래세대를 위한 비용과 책임을 국민이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반면 우리는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미래세대의 부담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국가가 연금을 지원할 재정 여력이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전문가들이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 제대로 알리기에서부터 개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민이 개혁에 동의한다면, 숫자와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재정안정론자와 소득보장론자 사이의 간극이 크기는 하지만 다양한 연금개혁 방안은 이미 충분히 나와 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 공무원·군인·사학연금 개혁, 신구세대 연금 분리, 핀란드식 기대여명계수를 활용한 재정 안정 조치 도입 등 대안도 쏟아지고 있다. 지속가능성, 세대 간·직역 간 형평성 확보를 위해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하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연금개혁안은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정치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데 연금개혁이 될 리 없다. 개혁의 방향을 결정하는 결단력과 의지, 사회적 타협을 이끌어낼 리더십을 대통령과 정부가 먼저 보여줘야 한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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