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없는 병원’ 100일째…의·정갈등에 고통받는 환자들

최서은 기자 2024. 5. 2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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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들의 병원 이탈 100일째인 29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4.05.29. 정효진 기자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지 29일로 100일째를 맞았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사이 환자들은 의료공백의 고통을 감내했다. 병원들의 경영난이 악화하면서 간호사를 비롯한 병원 노동자들은 생계를 걱정한다. 내년도 의대증원이 사실상 확정된 뒤에도 의·정갈등은 평행선을 달린다. 이 사태는 쉽사리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전공의 이탈 100일…환자, 간호사, 병원 ‘어려움’ 가중

정부는 현재 의료 현장에서 큰 문제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보지만, 환자들이 느끼는 분위기는 다르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이날 기자와 통화하며 “외래 진료와 응급실을 갔다가 취소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서 “환자들이 응급실 가는 것 자체가 겁이 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가슴이 더 답답해진다. 상황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는데, 현실적 대안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며 “정부는 전공의들을 향해 돌아오라는 말만 반복하지 말고 지침을 마련하라”고 했다.

사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 회장은 “환자들이 지금 치료를 못 받거나 지연돼서 생긴 여러 문제가 차후 몇 달 뒤 또는 1~2년 뒤 여러 가지 현상들로 나타날 것”이라며 “그때는 정부든 의료계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단체들은 의·정 갈등을 신속히 중단하라고 주장하면서 전공의들에게 하루 빨리 의료 현장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은 이날 성명을 통해 “전공의 집단행동이 100일째 이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환자의 어려움과 불편을 해소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정부와 의료계 양측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소모적 강 대 강 대치를 지금 당장 중단하라”고 밝혔다.

전공의들이 떠난 뒤 병원의 공백을 지키며 이들의 업무를 대신 떠맡게 된 간호사들의 업무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대형병원 간호사는 “전공의 이탈로 병원들은 간호사들에게 무급휴가를 보내고 인력까지 줄였으나, 환자들이 여전히 많이 몰리고 있다”면서 “간호사 인력을 쥐어짜면서 간호사들이 부품처럼 사용되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일부 병원들의 경우 병동간호사를 급작스럽게 진료지원(PA) 간호사로 파견보내 전공의 업무를 대신 맡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는 “국가에서는 PA간호사를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을 제정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에는 전담간호사라는 명목하에 간호사들이 의사의 업무를 떠맡고 있다”고 했다.

의료공백이 장기화하면서 병원들의 경영난도 심화하고 있다. 병원들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고, 무급휴가와 희망퇴직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일부 주요 수련병원들은 3개월 넘게 이어진 집단 이탈로 진료와 수술이 급감하면서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누적 적자가 심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빅5’ 등 상급종합병원 중에서도 규모가 큰 곳에서는 하루에 많게는 10억원 이상 적자를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전공의 이탈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수련병원에 건강보험 급여비를 미리 지급하고 추가 지원이 필요한지 계속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정부 “의료개혁 완수할 것…전공의 돌아와라” vs 의료계 “의대 증원 합리성 결여”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모두를 위한 의료개혁: 우리가 처한 현실과 미래’ 주제 토론회를 지난 29일 오전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융합관 양윤선홀에서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모두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부와 의료계는 여전히 입장 차를 줄이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이날 개최한‘모두를 위한 의료개혁: 우리가 처한 현실과 미래’ 심포지엄에는 의료계 인사들뿐 아니라 정부 관계자와 환자단체 대표도 참석했다. 모처럼 정부와 의료계가 한자리에 모여 의료개혁 방안을 함께 논의하는 자리로 기대를 모았으나, 양측은 여기에서도 공방을 벌였다.

강준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총괄과장은 “주요 선진국들은 의대 정원을 늘리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장기간 동결했다”며 “2012년부터 의사가 1만명 이상 부족하다는 추계가 있었으나, 의료계와 합의하지 못해 20년 넘게 증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안덕선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는 “정상적인 정책 수립은 문제 파악, 과학적 근거를 위한 연구와 증거 확보, 연구의 진실성과 타당성 검증 등을 거치지만, 정부의 의대 증원은 이런 과정을 따른 게 아니다”며 “증원은 국민 감성에 호소한 것으로 합리성이 결여됐다”고 했다.

복지부는 이날 중대본 브리핑에서도 의대 증원의 성과를 강조하면서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전공의들에게 복귀를 호소하면서 돌아온 전공의들과 미복귀 전공의들에게 확실하게 차이를 두고 조치할 계획이라고도 말했다.

박 차관은 “집단행동으로 인해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정부는 복귀하는 전공의들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면서 “복귀한 전공의와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과는 확실하게 차이를 두고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불이익이 큰 집단행동을 멈추고, 의료개혁 논의에 참여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나갈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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