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말 걸고 … 무대·객석 경계 허물다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4. 5. 2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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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10분 전, 1812년 모스크바의 오페라극장을 구현한 붉은 인테리어의 공연장에서 배우들이 바이올린, 기타 등을 연주하고 춤을 추며 객석을 누비기 시작한다.

공연장에 들어온 관객에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대와 객석의 배치다.

160분의 공연 시간 동안 19세기 러시아 복식을 한 수십 명의 배우가 무대와 1·2층 객석을 모두 누비며 춤과 연주, 노래를 한다.

관객들은 배우와 함께 악기를 연주하고 배우에게 편지를 쓰거나, 반지를 받는 등 작품 진행에 깊숙이 참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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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형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관객 코앞서 노래하고 선물
관객이 극 진행에 참여도
파격적 구성과 팬서비스
서울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이머시브(몰입형)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에서 배우가 객석 가까이서 공연하고 있다. 쇼노트

공연 시작 10분 전, 1812년 모스크바의 오페라극장을 구현한 붉은 인테리어의 공연장에서 배우들이 바이올린, 기타 등을 연주하고 춤을 추며 객석을 누비기 시작한다. 주연·앙상블 배우 할 거 없이 흥겹게 인사하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관객의 옆 빈 자리에 앉아 말을 건넨다. 본 공연 전에 관객의 마음을 여는 프리쇼다.

공연의 포문을 여는 곡 '프롤로그'의 가사 역시 관객을 향한다. 배우들은 마치 함께 공연을 즐기러 온 친구처럼 관객에게 외친다.

"자, 보셨죠? 프로그램북. 이건 오페라야. 등장인물 이름 정도는 외워둬. 이따 졸지 않으려면…나타샤는 어려…소냐는 착해…마리야는 엄해…함께 예습해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문 이머시브(Immersive·몰입형)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연출 김동연)이 공연되고 있다. '그레이트 코멧'의 특징은 '경계 없음'이다.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의 경계를 극단적으로 무너뜨렸다. 공연장에 들어온 관객에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대와 객석의 배치다. 무대는 7개의 원이 올림픽 오륜 문양처럼 겹쳐진 형태이고 도넛처럼 뚫린 가운데 공간에도 객석이 있다. 160분의 공연 시간 동안 19세기 러시아 복식을 한 수십 명의 배우가 무대와 1·2층 객석을 모두 누비며 춤과 연주, 노래를 한다. 어떤 구역의 객석에 있느냐에 따라 무대를 보는 각도와 가까이 있는 배우, 쇼의 느낌이 달라진다.

음악 장르에도 경계가 없다. 27곡의 넘버는 팝, 일렉트로닉, 클래식, 록, 힙합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됐다. 음악감독은 무대 가운데에 위치해 피아노 연주와 지휘를 하고, 배우와 연기자를 겸하는 액터 뮤지션들이 아코디언, 바이올린, 비올라, 클라리넷, 기타를 연주한다.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인 이 작품에서 배우들은 대사 없이 모든 것을 노래로 처리한다.

음악이 바뀔 때 공연장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하기도 한다. 조명이 꺼지고 형광 소품을 든 배우들이 일렉트로닉 음악에 맞춰 군무를 출 때 공연장은 현대의 댄스 클럽으로 변모한다. 안무와 연기 톤 역시 변화무쌍한 음악에 따라 바뀐다. 관객들은 배우와 함께 악기를 연주하고 배우에게 편지를 쓰거나, 반지를 받는 등 작품 진행에 깊숙이 참여하기도 한다. 공연 내내 시체처럼 객석에 앉아 무대를 보는 다른 작품들보다 즐길거리가 파격적으로 풍성하다.

'그레이트 코멧'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장편 소설 '전쟁과 평화'의 내용을 각색한 작품이다. 소설의 긴 내용 중 로스토프 가문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 나타샤가 전쟁터에 나간 약혼자 안드레이를 기다리다가 매력적인 난봉꾼 아나톨의 유혹에 빠져 함께 달아나는 부분을 차용했다.

나타샤 역은 유연정·박수빈(우주소녀 멤버)과 이지수, 절망에 빠진 나타샤를 돕는 피에르 역은 하도권·케이윌·김주택이, 아나톨 역은 고은성·정택운(VIXX 멤버)·셔누(몬스타엑스 멤버)가 맡았다. 안드레이와 그의 아버지 볼콘스키는 오석원이, 나타샤의 사촌 소냐는 효은·김수연이 연기한다.

문학사에 남은 장대한 소설을 원작으로 했지만 '그레이트 코멧'은 서사가 중요한 작품은 아니다. 관객과의 소통과 즐길 거리에 집중하면서 인물들의 이야기는 압축되고 갈등은 단순화됐다. 서사의 비중은 작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장면은 많다. 특히 혜성의 환한 빛을 향해 피에르가 작품의 마지막 넘버 '1812년의 위대한 혜성'을 부르는 장면은 무대의 붉은 조명에 힘입어 관객에게 인물이 느끼는 희망을 전달한다.

"저 눈부신 별…저 별과 나, 마치 하나 된 듯. 내 영혼 벅차오르고 밝아오는 내 가슴 다시 뛰네. 새로운 삶 향해." 공연은 6월 16일까지.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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