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의 이면]신경림의 당부
격변기 세계사의 위대한 정치인 중엔 시인들이 많다. 유럽의 대혁명기, 중남미의 반독재 저항사엔 파블로 네루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체 게바라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불의·부조리에 누구보다 예리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가 시인이다. 시와 정치가 가까웠던 것엔 언어로 시대정신을 만들었던 유사성도 있다. 그래서 시인은 최초의 예언자, 공적 발화자로 불렸다. 차이가 있다면 시는 인간의 내면을, 정치는 공동체의 내면을 향한다는 점이다. 광주정신이 지배하던 우리의 1980년대도 시의 시대였다. 김남주, 김지하, 박노해, 백무산 등이 기수였다. 이들은 군사독재의 질곡 최전선에서 자유, 민주주의, 노동해방의 깃발을 들고 영혼이 아픈 이들을 어루만졌다. 당시 국문학과 출신의 학생운동 리더들이 많았던 것도 “당대의 사회적 요구에 응답해야 할 책임을 지닌”(마야콥스키) 시의 과업을 돌아보게 한다. 그러니 시인을 어찌 정치인, 전사가 아니라 할 수 있으랴.
시인 신경림도 전사였다. 그러나 그는 전투적이어야만 시의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1990년대 말 신경림 선생이 쓴 <시인을 찾아서>를 도왔던 귀한 경험이 있다. <시인을 찾아서>는 45명의 한국 대표 시인들의 흔적을 기록한, 시의 경관(景觀)에 가까운 책이다. 작고 시인 22명을 소개한 1권 마무리 작업에 바빴던 어느 날, 그는 들뜬 목소리로 백석 이야기를 꺼냈다. 서도 사투리로 장날 풍경을 그린 ‘주막’을 가리키며 “백석은 내 시의 스승”이라고 했다. 토속적 언어로 삶에 뿌리를 내린 시, 민중이라는 레토릭을 직접 그들의 육성으로 들려주는 시. 그의 시 정신은 이런 것이란 고백이었다. ‘농무’ ‘장터’ ‘길음시장’ ‘목계장터’ 시 곳곳에 이런 정신이 배어 있다. 그가 호명한 민중은 사납지도 않았고 이데올로기라는 갑옷도 필요 없었다. 착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으면서 시대의 그늘을 묵묵히 견뎌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파장’)는 이 한 구절로 민중과 민중시의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았는가. 사람에 대한 애정이 시의 정신이고 그 정신이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걸음이 되어야 한단 것. 이것이 혁명(전사)에 대한 그의 동료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시인 신경림의 소명은 민중을 호명하고 들여다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군사독재는 민중이 행복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민중의 삶을 더 낫게 하는 것”이 민중시라 했던 그에게 시란 독재와 싸우는 무기였다. 무기가 필요한 역사의 현장을 그는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2009년 시인 김근은 그와 제주 강정마을을 찾았다. 구럼비 해안가에 핀 돌찔레를 안쓰럽게 보던 그의 모습을 후배 시인은 아직도 기억한다. 제주의 평화는 다른 곳에서 그것이 지닌 무게와 같지 않음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그가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하는 부모를 낯설게 보던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할아버지가 위로하듯 “너희들의 부모가 이곳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대를 고민하는 게 시의 정신이고, 그 정신이 더 좋은 공동체의 배후여야 한다는 것. 정치(인)에 대한 그의 동반자 의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인 신경림이 지난 22일 세상을 떠났다. 허망한 마음을 가눌 새도 없이 그의 죽음을 통해 시가 죽은 시대를 목도해야 하는 현실이 버겁기만 하다. 정치가 역사의 한 부분이고 그래서 정치인에겐 역사인식이 중요하다는 걸 안다면 앞선 이들의 헌신과 희생은 마땅히 기억해야 한다. 그저 눈앞의 권력투쟁이 정치의 전부라면 누군가 헌신하고 희생했던 역사는 정치와 무관한 것이 되어버린다. 시와 정치가 세상의 변화를 위해 함께 싸울 때 시인 신경림이 정치에 건넨 용기는 얼마나 고귀한 것이었나.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그의 죽음에 애도 논평 한 줄 내지 않았다. 여권의 이런 태도는 그와 그의 시가 위로했던 지난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가난한 사랑노래’는 지독한 가난에 사랑마저 등져야 했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한 시다. 불우한 시대에 제자리를 찾지 못한 건 사랑만이 아니었다. 두려움, 외로움, 그리움도 있었다. 인간의 심연이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인간의 심연을 이해하는 정치인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채 상병 특검법은 인간의 심연을 헤아려야 하는 정치의 기본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28일 대통령의 거부권에 국민의힘이 힘자랑으로 동조하면서 끝내 부결됐다. 사람을 놓아버린 정치는 그 자체로 자격 상실이다.
그래도 그는 시와 정치가 한길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릴지 모르겠다. 가끔 “이쯤에서 길을 잃어야겠다”면서도 “저 세상에 가서도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떠도는 자의 노래’) 했던 것처럼 지금도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만 같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운’ 세상에서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
구혜영 정치부문장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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