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라인 한번 세워볼까"··· 선 넘는 노조 폭주에 삼성 반도체 '흔들'
파업 무기로 회사 뒤흔들어
민노총 위해 집단 강성행동 의혹도
28일 오후 경기 용인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는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과 사측 간의 8차 임금협상 본교섭이 열렸다. 그동안 파업을 무기로 사측을 압박해 온 전삼노와 사측의 사실상 마지막 대화 자리였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논의가 오갈 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무너졌다. 전삼노는 29일 서울 서초사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측이 교섭에 아무런 안건도 준비하지 않고 나왔다"며 파행의 책임을 회사 측으로 돌렸지만 전날 교섭 현장에서는 전삼노 측 지도부 중 일부 인사가 사측 교섭위원들에게 처음부터 고성과 막말, 삿대질 등을 계속해 정상적 대화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블라인드 등 SNS에서는 "전삼노가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 전환을 밀어붙이기 위해 파업 등 강경 투쟁으로 노선을 미리 정해 놓은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전삼노 집행부가 민노총 가입이라는 최종 목적을 미리 짜놓고 여기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다.
2022년 금속노조의 56차 정기대의원대회 보고서에는 "삼성의 1~4 노조를 모두 금속노조에 함께 가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최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전삼노가 연예인들을 불러 진행한 호화 집회 현장에도 금속노조 조합원 약 200여 명이 질서유지 명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 중 진정한 의미에서 생존권을 두고 투쟁에 나서는 노조는 이제 거의 사라진 것이 사실"이라며 "기업 안에서 노조라는 특별 직군이 생겨나고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강경 투쟁을 거듭하면서 결과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악순환이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삼노가 창사 55년만에 처음으로 파업을 선언하면서 삼성의 노조 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다. 물론 노조가 임금 교섭 과정에서 쟁의행위에 나서는 것은 우리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하지만 △법적 대표성이 낮은 노조가 △실제 노조원 의사와 무관하게 민노총 가입을 추진하면서 △파업을 빌미로 경영 위기에 직면한 기업을 위협하는 것은 사회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장 전삼노의 대표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전삼노는 노사협의회가 임금인상률(5.1%)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배제돼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은 과반 노조가 없을 경우 노사협의회 등을 통해 임금 협상을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삼노가 삼성전자 전체를 하나의 목소리로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삼성의 제2 노조인 디지털경험(DX) 노조는 4월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투표 때 전체 노조의 33%만 찬성표를 던져 쟁의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반도체(DS) 부문 노조원들로 구성된 전삼노가 일방적으로 파업까지 밀어붙여 노조가 한쪽의 목소리만 듣고 움직이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전삼노는 조합원 수가 2만8000여명에 이른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전체 삼성전자 직원(12만5000여명)과 비교하면 22%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들이 삼성이라는 기업 전체를 흔드는 것이 적절한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이 TSMC, SK하이닉스 등 경쟁자에 밀려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노조원들이 파업까지 실행할 경우 삼성 전체가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 블라인드 등 SNS에는 "반도체 라인 한 번 세우면 될 일 아닌가"와 같은 글이 올라오는 등 삼성은 물론 국가 경제 전체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선을 넘는 강성 발언들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삼성 DS부문이 15조 원에 이르는 적자를 내고 올해도 고대역폭메모리(HBM),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스템LSI 등에서 모두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노조 역시 최소한의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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