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무의 “모두의1층이니셔티브로 장애 인식·접근성 개선”
[IT동아 차주경 기자]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 교통, 혹은 공공 시설이나 건물에 설치된 계단을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이용한다. 하지만, 이들 계단은 누군가에게는 높디 높은 장벽이다.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 유모차를 탄 아기들은 겨우 수 cm 높이의 계단을 넘기 어려워 원하는 곳에 가지 못한다. 발걸음을 돌린다.
이동권, 접근성은 누구나 보장받을 권리다. 그래서 세계 선진국 정부는 사람의 접근성을 보장할 다양한 조치를 마련한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그럼에도 한계는 역력하다. 접근성을 보장할 조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과 기업 등 사회 구성원 전반의 인식을 바꿔야 비로소 누구에게나 공평한, 응당 누려야 할 접근성이 만들어진다.
이미 해외에서는 단체와 시민, 기업과 정부가 힘을 모아 사회 약자의 권리를 확보하고 신장할 단체 ‘이니셔티브’가 만들어져 여러 곳이 활약 중이다. 곧 우리나라에서도 이니셔티브의 좋은 사례가 나올 전망이다. 사단법인 두루(이하 두루)와 사단법인 무의(이하 무의), 브라이트건축사사무소가 모여 결성한 ‘(가칭)모두의1층이니셔티브’다.
이들은 이미 성과도 냈다. 2023년 힘을 모은 결과,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장애인 접근성 확대를 이끌 조례를 제정했다. 모두의1층이니셔티브의 구성원인 김남연 두루 변호사, 홍윤희 무의 이사장을 만나 활동 계획을 물었다.
공익법단체·장애인컨텐츠 제작NGO·건축사무소·지원기관 힘 모아 장애인 접근성 개선 팀 조합
공익전업 변호사들이 모여 만든 두루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공익법단체다. 10년 전 법무법인 지평의 공익 법인으로 탄생한 후 여러 공익법률 활동을 벌였다. 장애인과 아동청소년의 인권 보장, 국제 인권 활동과 사회적 경제 확산, 공익법 일반에 이르기까지. 두루는 사회 곳곳의 소수자 인권옹호 활동에 손을 내민다.
두루는 2016년 소규모 점포의 접근성 실태를 조사하면서, 물리적인 접근성 제약이 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저해하는데다 기본 이동권과 서비스 접근권마저 침해하는 점을 파악한다. 이에 2018년 두루는 휠체어 사용자뿐만 아니라 지팡이를 쓰는 고령자, 유모차를 이용하는 영유아 동반자 시민들을 대리해 차별구제소송을 냈다. 대상은 편의시설 설치가 미비한 카페와 편의점, 호텔 등 공중 이용 시설이다. 그 결과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인정한 판결을 이끌었다. 대다수의 소규모 점포에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면제한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의 위헌 결정도 그렇다.
이 판결 덕분에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바닥 면적 300m² 이상의 점포'에 대한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바닥 면적 50m² 이상의 점포'로까지 확대된 것. 그러나, 개정 시행령은 신축·증축·개축된 시설물에만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부과한다. 시행령 개정 전에 마련된 대다수 시설물과 매장에는 경사로 등의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법이 바뀌었음에도 장애 당사자들이 변화를 체감할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 고민하던 두루 변호사들은 무의를 찾는다.
2016년 협동조합 형태로 문을 연 무의는 ‘장애를 무의미하게’라는 표어와 함께 활동하다가 2024년 4월 사단법인이 됐다. 장애인이 짊어진 물리·심리·인식의 턱을 없애고, 이동권과 접근권을 확보할 지하철교통약자환승지도 제작 등의 캠페인을 진행하며 사회 인식 변화를 꾀했다.
홍윤희 이사장과 김남연 변호사는 의기투합, 2023년 2월 모두의1층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접근성을 높일 첫 장소로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 일대를 선택한다. 해비타트에 힘을 보탠 브라이트건축사사무소의 이충현 소장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프로젝트를 잘 실행할 방안을 찾던 이들은 2023년 5월 아산나눔재단의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 사업을 만난다. 김남연 변호사는 “지원 사업 덕분에 사업 전략 수립, 브랜딩과 인식개선조사, 인터뷰와 분석 멘토링을 받아 사업 방향을 올곧게 잡아나갔다.”고 밝혔다.
첫 활동은 서울특별시 성동구 매장 경사로 확대 캠페인, 조례 제정 성과 거둬
사업 방향을 설정한 모두의1층 팀은, 우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의 경사로 설치 환경을 조사한다. 성수동의 인기 장소, 아뜰리에길에 자리 잡은 매장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장소의 비중은 13%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낮았다. 반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시민의식은 높았다. 시민 500명의 설문조사 결과 경사로를 설치한 매장을 더 많이 이용하겠다는 답변 비중은 80%를 넘었다.
홍윤희 이사장은 지역 내 매장 30곳을 찾아 경사로 설치를 제안, 설득했다. 경사로 설치에 동의한 점포는 단 4곳이었지만, 모두의1층 팀은 점주를 인터뷰해서 경사로 설치 시 점주가 지는 부담 요소와 이를 해소할 방법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이 조사 내용을 기반으로 2023년 10월 토크 콘서트를 열고, 접근성 향상을 위한 경사로 설치 확대 방안을 논의하고 제도 전파와 시민 인식 변화의 중요성을 알렸다.
첫 토크 콘서트 종료 후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시민 6000여 명이 지지 서명을 한 것, 그리고 이 행사를 본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직접 나서 ‘경사로 설치 지원 조례’를 만든 것이다. 접근성 보장을 구 차원에서 지원하는 보기 드문 사례다. 성동구는 올해 구 자체 비용으로 경사로 지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성과 딛고 기업 참여 유도, 사회 전반의 인식 바꾸는 이니셔티브 활동에 충실
성과를 낸 모두의1층 팀은 2024년 활동 범위를 더욱 넓혔다. 4월 말 서울특별시, KB증권과 함께 ‘모두의1층 X 서울’ 프로젝트를 출범하고 상점 앞 경사로 설치를 확대했다. KB증권은 이 프로젝트에 7000만 원을 쾌척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모두의1층 팀은 ▲이동 약자 생활편의시설 접근성 개선 제약 문제의 공동 해결 ▲경사로 설치 지원대상 발굴 및 경사로 설치 지원 ▲경사로 설치 공감대 확산을 위한 시민참여 유도 ▲대시민 홍보 및 제도 개선 등을 공동 추진한다.
이어 이들은 경사로 설치는 물론 생활편의시설을 운영 중인 소상공인 점주, 프랜차이즈 기업 등에 경사로 설치 참여를 유도하는 한편, 경사로 설치-장애고객 서비스 가이드를 배포하는 등 대시민 캠페인을 벌인다. 접근성 서비스 매뉴얼에는 매장 경사로 설치에 대한 실제 가이드 뿐 아니라, 매장에 방문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비롯한 이동 약자의 응대 및 서비스 방법도 담는다.
홍윤희 이사장은 “모두의1층X서울 사업은 모두의1층이니셔티브를 구축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경사로 지원 사업은 대부분 동네 상점들이 경사로를 놓도록 돕는 단기 사업이었다. 경사로 설치는 장애인이 누릴 당연한 권리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권리보다는 시혜로 보는 시선이 더 많았다.
그래서 모두의 1층 X 서울 프로젝트는 경사로 등 편의 시설이 장애인 뿐 아니라 모두에게 이롭다는 대중 캠페인을 펼치려 한다. 그리고 공공기관과 기업 등 참여 기관 모두가 경사로를 설치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내부 규정이나 정책에 접근성 향상을 고민하고 반영하도록 유도해 근본 변화를 만드는 게 목표다.
홍윤희 이사장은 “이 프로젝트 덕분에 장애인의 접근성 향상 대책을 궁리하던 기업들의 문의가 이어지는 것도 성과다.”라고 밝혔다.
두루와 무의는 서울특별시, 성동구에서 거둔 성과를 발판 삼아 올해 ‘모두의 1층 이니셔티브’의 정식 출범을 준비 중이다. 이니셔티브 형태로 만들자고 제안한 이는 임성택 두루 이사장이다. 두루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장애인 포용 세계 비즈니스 파트너십인 ‘밸류어블(Valuable) 500’을 벤치마킹해 사업 방향을 다듬는다. 밸류어블500은 접근성 증대, 장애인 고용 등 사회 약자를 위한 정책 전반을 다룬다. 이들의 전략은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참가하도록 유도, 함께 논의하면서 접근성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 그리고 이 해결책을 기업이 포용해 상품, 서비스 전반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는 것이다.
올해도 아산나눔재단 비영리스타트업 사업 지원을 받는 두루와 무의는 기업의 접근성 확대 활동이 기업의 ESG 활동이나 소셜임팩트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수치화할 기준을 만든다. 접근성 향상에 진심인 기업들의 임팩트 활동을 소개하는 행사도 올 가을에 진행 예정이다.
두루·무의 “관계자와 함께 미래 인재 육성, 접근성 향상에 매진”
그 밖에도 두루와 무의는 사회 약자들의 권리 범위를 넓힐 여러 사업을 벌인다. 두루는 장애인 인권 신장, 이주 난민 보호소와 아동청소년의 권리 활동 등 임팩트 활동을 강화한다. 김남연 변호사는 모두의1층이니셔티브 활동을 하면서 기관과 기업의 협업이 얼마나 큰 위력을 갖췄는지 배웠다고 말한다. 이 경험을 토대로 구성원들과 머리를 맞대, 임팩트 활동의 파급력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활동으로의 발전을 이끌 방안을 모색한다.
무의는 청년 인재 육성에 집중한다. 접근성과 장애인의 인권 증대 활동을 경험한 청년 인재가 사회를 바꿀 것이라고 전망해서다. 서울특별시 성동구의 소셜 디자이너 육성 프로그램, 사회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하는 마이너리티 디자이너 프로그램이 이를 위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먼저 청년들이 접근성 향상 전문가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이어 장애인들이 직접 참여해 삶의 범위를 넓히도록, 비장애인들은 장애와 접근성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돕는 내용도 담았다.
홍윤희 이사장은 더 많은 이들이 접근성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개선하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한다. 접근성은 그저 이동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람이 생각하고 활동하고 인간관계를 맺는 범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접근성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한다. 만날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보고 듣고 느낄 것을 누리지 못한다.
반대로 누구나 접근성을 평등하게 누린다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활동하고 또 인간관계도 맺는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세상을 넓게 보고, 지식을 쌓고 능력을 발휘하면서 사회에 긍정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장애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 될 날도, 사회에 임팩트 효과를 일으킬 날도 올 것이다. 홍윤희 이사장은 장애인들의 효능감을 높이는 것, 우리나라 전역에 긍정 임팩트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무의와 모두의1층이니셔티브의 목표라고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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