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정치’는 시대사적 명제 [왜냐면]
송백석 | 칼빈대 교수
돈은 국회의원의 정치 생명을 앗아가는 주된 요인이다. 21대 국회에서도 예외 없이 돈 문제로 국회의원이 구속되거나 법정에 섰다. 22대 국회가 30일 개원한다. 임기 4년의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는 300명의 선량들은 자신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시대의 정치인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00여년 전 자본주의를 연구했던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변화가 만들어 낸 ‘직업 정치인’의 등장을 소개했다. 세비를 받으며 근근이 사는 궁색한정치인을 뜻하는 좁은 의미가 아니다. 근대 자본주의 생성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고용관계 속에서 정치와 공무를 담당하는 의회 정치인, 행정 관료, 정당인 등을 모두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근대 이전에는 왕, 제후, 영주 개인의 정치권력이 생산수단과 행정수단을 소유했다. 농노는 정치적 강제력 속에서 이들의 생산수단을 빌어 노동하고 수확한 생산물을 상납했다. 정치가 경제가치의 창출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정경융합’의 사회체제였다. 또한 개인의 정치권력은 성, 도로, 병참 등의 행정수단도 소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생산수단과 행정수단을 소유한 정치권력에게 경제적 수입이 동반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시작해 자본가 계급이 부상하면서 정치권력은 생산수단을 잃게 됐다. 그리고 서서히 태동하던 근대국가에 행정수단도 박탈당한다. 영토 내 유일하게 ‘폭력의 정당한 독점권’을 가진 근대국가의 형성은 정치권력이 사유하던 행정수단을 국가의 것으로 확립하는 과정이었다. 정치권력은 생산수단을 자본가에, 행정수단을 근대국가에 넘겨주는 새로운 사회변화,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권력에게도 생존의 전제 조건이라 할 경제가치의 확보는 어떻게 가능했나. 다시 말해 정치인은 어디서 돈을 벌게 됐나. 이에 대한 답으로 베버는 직업 정치인을 말한 것이다. 국가와의 고용관계에서 급료를 받아먹고 사는 정치인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시대 정치인의 모습이다.
22대 국회의원 300명도 ‘대한민국헌법 제3장 국회’에 근거한 고용관계 속에 있다. 물론 명문화된 고용계약서는 없다는 점에서 일종의 관습적 고용관계라 할 것이다. 국회의원은 임기 4년 동안 받는 세비를 주된 수입으로 하는 직업 정치인이다. 이들은 선거라는 국가 발주의 용역 시장에서 유권자 투표라는 인증을 통해 정치 노동력을 판매하고 직업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들은 어찌 보면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고용관계를 맺지 못하면 경제적 수입을 걱정해야 하지만, 배지를 단 원내 정치인이 되어 정치활동의 기반인 세비와 정치후원회 운영 권한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져온 리스크에 유의해야 한다. 근대 이전과 달리 자본주의는 정치영역의 국가와 경제영역의 시장이 구분되는 ‘정경분리’의 사회체제다. 정치의 기능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시대의 정치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기업의 생산과정에 정치가 직접적으로 작용하지 않지만 정책 집행의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정경분리 구조는 ‘정경유착은 안 된다’는 사회적 규범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논쟁의 저변에도 이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서구는 아시아적 가치를 ‘정실 자본주의’의 요인으로 비판했다. 아시아 자본주의는 정경분리의 시장원칙 없이, 정경유착으로 아는 사람끼리 정실로 해먹는 자본주의라는 비판이었다.
‘정치인은 깨끗해야 한다’는 것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강화된 의식이다. 정경분리에 기초한 사회적 규범은 돈의 흐름에 관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 냈다. 시장에서 넘어오는 돈을 규제하는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정치후원회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제도이다. 영국에서 1854년 부정행위방지법이 제정된 이래 정치인의 돈에 대한 공식적인 사회통제와 벌칙의 체계는 강화돼 왔다.
근대 이전에는 권력자가 재력가이고 재력가가 권력자인 세상이었다. 때문에 권력과 돈은 분리돼야 한다는 규범적 의식도 미약했다. 돈을 탐하는 정치를 부정부패로 심각하게 인식하지도 않았다. 사회구조적 변화에 따라 의식도 변했다. ‘정치가 깨끗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의 명제가 되었다. 국가도, 시장도, 시민단체도, 국제기구도 이것을 강조한다. 정치인이 끊임없이 돈 문제와 관련해 사방에서 주시를 받는 것은 이 시대의 정치인이 감당해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국회의원이 고용관계 밖에서 나오는 돈을 만지는 것은 ‘사법리스크’와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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