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에 닥친 '탄소 불똥'…日 20조엔 띄웠는데, 한국은

2024. 5. 29. 15: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Big Picture ◆

게티이미지뱅크

세계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기본적으로 2015년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에서 채택된 파리협약(Paris Agreement)에 기초를 두고 있다. 파리협약은 지구온난화가 미치는 경제적·사회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억제하고 이를 위해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도록 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각국은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제시하도록 했다. 미국은 당초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26~28% 감축을 약속했고, 유럽연합(EU)은 1990년 대비 40%, 일본은 2013년 대비 26%의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2017년 대비 24.4% 감축 목표를 제출했다. 또 파리협약은 각국이 최초 제출한 감축 목표보다 더 강화된 목표를 5년마다 제출하도록 했다. 매년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감축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런 파리협약의 목표는 전 세계 환경정책을 비롯해 기업 등 경제구조에 많은 파고와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닥터둠'으로 불리는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는 충분히 예상되는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일컬어 '화이트 스완'이라고 정의했다. 이제 기후변화 대응에 따른 각종 정책 변수와 무역환경 장벽은 예고된 위험으로 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 세계적 노력이 기업 활동에 가져오는 위험은 무엇일까?

이른바 이행위험(Transition Risk)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행위험은 국가와 정책당국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기업 활동에 영향을 주는 위험을 말한다. 예를 들면 탄소세, 배출권 거래제 등 탄소배출에 대한 가격정책의 시행,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생산시설의 퇴출 또는 규제 강화, 고탄소 배출 산업과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정부 보조금이나 세제 지원 폐지, 금융 및 투자 억제 등의 정책을 쓸 수 있다.

이행위험은 이러한 정책 시행이 탄소 집약적 기업과 산업 부문에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이다. 이와 같은 탈탄소 정책이나 규제 강화로 고탄소 배출 산업과 기업의 생산비용이 늘어나 수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로 인해 기업의 경영이 악화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퇴출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에너지 효율화 기술 등 저탄소 기술혁신도 비용과 경쟁 증가에 따른 중요한 이행위험 요인이다. 혁신적 기술이 기존 기술을 대체할 경우 기업 활동에 있어서 신기술로 인한 승자와 패자로 갈림길에 선다.

법적 위험(Litigation Risk)도 이행위험의 하나다. 홍수, 가뭄 등 대규모 자연재난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경우 탄소집약적 기업은 재난의 직접적 원인 제공자로서 법률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 통계에 따르면 환경 관련 법적 소송이 전 세계적으로 2017년 884건에서 2022년 2180건으로 급속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 기업이 자사 제품과 서비스가 환경 친화적이라는 라벨을 붙이거나 광고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러한 표시와 광고가 허위이거나 과장됐을 경우 시민단체 또는 소비자의 고발로 이어질 수 있다.

이행위험 가운데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국가나 지역이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CBAM) 또는 수입품에 대한 탄소배출량 규제 등을 시행함에 따라 기업의 수출에 미치는 위험이다. 이는 수출기업에는 과거의 국가별 수입관세 부과를 대체하는 새 리스크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가 글로벌 무역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연구에서는 이러한 탄소국경조정제도가 향후 국가별 무역패턴을 바꿀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EU는 작년 5월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도입해 현재 시범 적용하고 있다. 제도의 본격 적용이 시작되는 시기는 2026년이다. 올 1월부터는 EU 역내로의 수입품에 대한 수입 승인과 별도로 해당 수입품의 생산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발생한 탄소배출량을 신고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허용 수준 이상을 초과하는 탄소를 배출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일종의 탄소관세를 부과해 수입품의 가격을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2026년 본격 시행 이전의 시범 시행 단계에서는 탄소관세 부과는 없으나, CBAM 대상 품목에 대해서는 생산 과정에 내재된 직간접적 온실가스 배출량을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최초 시행은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략, 수소 등 탄소 누출에 매우 취약하고, 생산 과정에서 배출량 추적이 가능한 6개 품목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대상 품목을 점차 확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수입품에 대한 배출량 허용 기준도 점차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EU는 최초의 기후중립 경제블록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이 EU가 CBAM을 도입한 배경을 볼 때 이러한 규제는 향후 EU뿐 아니라 다른 지역 또는 국가로 확대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면 기후변화 이행위험에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가장 먼저 기업이 안고 있는 현실적·잠재적 기후변화 위험 요소들을 정확히 평가하고, 기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해 이를 공시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기후위험에 대응하는 전략 수립에 필요할 뿐 아니라 수출, 금융 조달 등 외부 기관이나 외국과 거래할 때 제공해야 하는 필수 정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탄소배출 측정과 공시는 신뢰성 있고, 국내외 기업 간 비교 가능하며,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탄소배출 측정 및 보고는 표준화된 기준에 따르도록 할 필요가 있는데, 국제지속가능성표준이사회(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 Board·ISSB)가 2023년 6월 제정한 공시기준(ISSB 공시기준)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선 정부는 기업이 정확한 탄소배출 데이터, 감축 목표 및 기타 기후변화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기업을 독려하면서 이를 제도화하고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탄소배출량 측정 기법의 개발, ISSB 표준에 기초한 우리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실정에 맞는 탄소배출 공시기준 제정, 기업의 공시 내용에 대한 적절한 검증 시스템 마련 등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정부도 기업의 탄소배출량 및 감축 노력에 대한 정보를 얻고 추적 관리하면서 정책을 지속적으로 보완해갈 수 있으며, 향후 탄소관세 등 새로운 국제무역질서에도 효율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영국의 탄소공개 프로젝트(Carbon Disclosure Project·CDP) 등도 자국의 기업들에 탄소배출 감축 목표 및 전략 등 기후정보의 공시를 요구하고 있으며, 일본·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도 기업의 배출 정보 공개 범위를 최상위 수준인 'Scope 3'까지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아시아개발은행연구원(ADBI)에서도 '기업의 기후정보 공시'가 연구 및 아시아 개발도상국 역량 개발 프로그램의 주요 어젠다 중 하나로 다뤄지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에 따른 무역질서의 변화를 예측하고, 국제 논의에 동참하는 등 이에 대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웃나라 일본의 발 빠른 대응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최근 기시다 후미오 총리 주도하에 '아시아 녹색전환 컨소시엄(Green Transfomation·GX)'을 출범시키고, 지난 3월 13일 첫 회의를 했다. 이 컨소시엄에는 일본의 글로벌 금융기관(미즈호은행, 스미토모은행, 미쓰비시UFG은행)과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우리나라의 수출입은행), 일본국제협력재단(JICA·한국의 KOICA), 국제기구인 GFANZ(글래스고 탄소중립금융연합체)가 참여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역내의 기후변화 이슈를 주도하고 있는 국제기구인 아시아개발은행(ADB)도 끌어들였다. 아시아 GX를 출범시킨 표면적 이유는 아시아 개도국의 탄소중립을 촉진하기 위해 화석연료 발전소 퇴출 등 녹색전환 정책을 지원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그 실행을 위해 20조엔 규모의 일본 최초의 기후전환채권(Climate transition Bond) 발행 계획도 포함했다.

하지만 일본 주도의 GX가 출범한 목표가 단순히 아시아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 지원에만 있을까.

그 이면에는 글로벌 기후대응 논의에 있어서 일본이 아시아 리더로서 입지를 확립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나아가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대응해 아시아 지역을 블록화해 이를 등에 업고 향후 탄소배출을 둘러싼 무역질서 재편에 대한 일본의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전략도 숨어 있다는 것이다. ADB를 발판 삼아 아시아 지역에 대해 일종의 탄소경제 블록화를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제조업 국가이다.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제조업이 일본의 주력 산업이다. 제조업은 다분히 탄소집약적이다. 탄소배출량을 둘러싼 글로벌 무역질서의 변화에 일본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도 기본적으로 제조업 국가다. 철강·자동차·조선·반도체 등 제조업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8% 수준으로 미국(10.3%), 독일(20.4%), 일본(20.3%), 프랑스(10.7%) 등에 비해 높다. 우리나라 총 온실가스 배출량의 38% 수준(2022년)을 제조업 등 산업 부문이 차지하고 있고, 탄소집약적 업종 비중이 8.4% 수준으로 다른 국가들보다 높은 것도 현실이다. EU, 미국, 일본 등 국제사회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통해 무역장벽을 높일 경우 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다. 산업 부문의 탄소배출 감축 노력과 함께 탄소국경조정에 관한 국제적 논의에 시급히 참여해야 한다.

백승주 아시아개발은행연구원 부원장 前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