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의 손익분기점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이명석 | 문화비평가
“내일 이 영화 보지 않으실래요?” 애매한 거리의 지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시사회 초대도 아니고, 자기가 산 표가 두 장 있으니 친구와 가라는 거였다. “취소하시고 다른 날짜에 보세요. 좋아하시는 배우 작품 아니에요?” ‘눈치 없으시네’ 느낌의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저는 열 번은 봤죠. 이번 주만 버티면 손익 분기점이거든요.” “혹시 투자라도 하셨나요?” “아니요. 최애가 망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손익분기점. 모든 모서리가 모난 글자를 입안에 넣고 굴려보았다. 그러다 몇 년 전, ‘글 써서 밥 벌어먹는 법’이라는 강의를 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즈음 작가 데뷔를 부추기며, 책 한 권만 내면 직장을 때려치우고 평생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환상을 부추기는 강의가 우후죽순 솟아났다. 맙소사! 나는 20여 년 원고료와 인세로 생계를 이어온 저술업자로서 이 직업의 손익계산서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여러분은 전업 작가를 꿈꾸며 여기 오셨겠지만, 제 이야기를 들곤 바로 포기하실 수도 있어요.”
냉정한 강의 뒤엔 차가운 물음들이 되돌아왔다. 한 사람이 몹시 주저하더니 말했다. “그런데요. 책을 써서 망하기도 하나요?” 나도 당황할 정도의 솔직한 물음이었다. 잠시 침을 삼킨 뒤에 답했다. “영화를 만들다 망한 사람은 여럿 봤어요. 전세금 빼고 처가집 담보 잡히고 해서. 그런데 책 한 권 쓴다고 바로 망하진 않을 겁니다. 세 권 정도 써도 빛이 안 보이면, 망했다 싶을까요?”
강의나 토론에서, 어떤 질문들은 자리를 나오자마자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계속 머릿속에 남아 스카이콩콩처럼 쿵쿵대며 돌아다니는 녀석들이 있다. 손익과 망함의 분기점은 어디인가? 모든 직업인의 근본 문제다.
대학 때 첫 미팅을 작곡과 학생들과 했다. 숙맥들이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다가, 대뜸 무례한 질문을 했다. “음대는 돈이 많이 들지 않나요?” 여학생들이 처음으로 웃어 줬다. “제일 돈 많은 친구들은 기악을 해요. 악기 하나가 수천만원이고 그걸 들고 다닐 차도 필요하죠. 평범한 애들은 피아노를 하고요. 제일 가난한 애들이 작곡과에 오죠.”
남학생 중엔 내가 제일 손익분기점이 낮은 과를 택한 셈이었다. “철학은 생각만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철학을 업으로 삼으려면 교수를 해야 했고, 유학비라는 커다란 손실을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글쓰는 직업을 택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작가나 해볼까’ 하는 데는, 이 직업의 손익분기점이 낮아 보인다는 점이 작용했을 거다.
대학 친구들 대부분은 나보다 훨씬 높은 손익분기점의 세계로 갔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행복분기점, 소득만족점인 연 소득 1억 원을 진작에 넘긴 경우들도 있다. 그런데 지금도 만나면 주식, 코인, 부동산처럼 자산을 뻥튀기할 궁리를 한다. 나는 궁금했다. “너 정도면 조기 은퇴해도 넉넉하지 않아?” “무슨 소리야. 애들 학비며 들어갈 데가 얼마나 많은데? 우리 클 때랑 달라.” 하긴 공영방송에서도 건물주 연예인을 추켜세우는 사회이니, 사람들의 심리적 손익분기점은 점점 높아져만 가고 있겠구나. 어릴 때부터 최대한의 투자로 의대를 보냈는데, 남들이 더 낮은 투자로 그 직업을 공유하는 게 미치도록 싫을 수도 있겠고.
최애의 영화가 천만은 아니라도 최소한의 손익분기점을 넘겼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도 이해는 간다. 내 아이돌이 기죽는 게 싫어, 뜯지도 않을 앨범 수백장을 산 뒤에 길에 내놓기도 하니까. 그들의 손익분기점은 어디일까? “우리 애가 음방에서 1위만 하면 돼요.” 하지만 손익분기점의 높은 피크는 혈당 스파이크처럼 우리를 어지럽게 하지는 않을까?
내가 글을 쓰는 건 그게 최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익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차애, 여러 취미에 열정을 분산투자하고 있다. 아마추어 공연단을 만들어 연습실비만 건지자며 작은 공연하러 다니기도 했다. 평택호 인근의 야외공연 때 주최 측이 공연비가 적어 미안하다며 작은 팁 상자를 내놓았다. 공연 후 관객들이 너나없이 지갑을 열자 주최 측이 더 기뻐했다. “개관 이후 어린이날 빼고는 최고 액수네요.” 그때는 어린이 관객들의 천원 지폐로만 9만원을 모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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