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뒤면 국민연금 고갈되는데..공전만 되풀이하다 개혁 좌초
정치권이 국민연금 개혁안을 두고 21대 국회 마지막 회기 날에도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면서 골든 타임을 넘기게 됐다. 보험료·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을 두고 극한 대치를 이어가다 정부 여당이 구조개혁을 들고 나오면서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단일안 대신 시나리오를 의회에 제출하며 책임을 넘긴 정부와 최종 합의에 실패한 국회 모두 국민연금 개혁 좌초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22대 국회 개원 후에도 여여간 대치가 이어지면서 개혁 추진 동력을 얻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와 관련해 여야 원내대표는 21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지난 28일까지 연금 개혁안에 대한 안건 합의에 실패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연금개혁안 통과만을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여당이 구조개혁을 포함해 22대 국회에서 관련 과제를 재논의하자는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22대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1988년 9%로 오른 뒤 동결된 상태고, 평균소득 대비 받게 될 연금액의 비율인 소득대체율은 같은 기간 70%에서 40%로 급감했다.
정부와 국회가 손 놓고 있는 동안 국민연금 기금의 지속 가능성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였다. 지난해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국민연금을 현행 제도대로 유지할 경우 2041년부터 국민연금 재정 수지 적자가 발생해 2055년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지난 4차 재정추계 당시 국민연금이 2042년에 수지적자가 발생하고 2057년에 기금이 소진할 것으로 예측했다. 당초보다 기금고갈 시점이 약 2년 앞당겨진 것이다. 최근에는 국민연금 개혁을 하지 않으면 6년 뒤에는 그해 지급할 연금 급여를 그해 거둔 보험료로 충당하지 못해 기금을 깨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주식 등 국내 자본시장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학계의 우려가 나왔다.
국회는 2022년 7월 여야 합의로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를 꾸렸다. 당초 연금특위 산하에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간자문위원회에서 연금개혁 초안을 마련하면 정부가 2023년 10월까지 종합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민간자문위에서 재정 안정성 강화와 노후 소득 보장을 두고 위원들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누차 국민연금 개혁의 시급성을 강조해온 정부 마저도 단일 개혁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국민연금은 5년마다 재정계산을 하고 개혁안을 내도록 돼있는데, 보건복지부 산하 전문가위원회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지난해 10월 '2023 국민연금 재정계산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 보고서에서 구체적인 제안 없이 보험료율과 지급개시연령, 기금 수익률, 소득대체율 등 4가지 요소를 조합한 24가지 시나리오만 제시했다. 정부는 이후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내놨지만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 방식 등 구체적인 모수(숫자)가 포함되지 않아 '맹탕' 개혁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다시 공을 넘겨받은 국회에서는 의견 수렴을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켰고 그 결과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 인상의 '대안1'이 다수 선택을 받았다. 이후 여야는 보험료율 13%에는 뜻을 모았으나, 소득대체율을 두고 입장 차를 드러냈다. 여당이 소득대체율 44%라는 절충안을 제시했고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이를 전격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결국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달 말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때부터 정부 의견이 달라졌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연금 개혁을 21대 국회가 아닌 22대 국회로 넘겨 처리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이후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는 "21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조급하게 하기보다 22대 국회에 넘겨 충실하게 논의하는 것이 맞다"고 입장을 공식화했다.
결국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과제가 22대 국회로 넘어갔지만 빠른 진전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국회 연금특위의 위원 중 상당수가 재선되지 못하면서 구성을 다시 해야하는데다 내후년부터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21대 대통령 선거, 제23대 국회의원 선거가 1년 단위로 예정돼 있어 정치권에서 연금 개혁을 꺼낼 '실익'이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게다가 정부·여당이 모수개혁을 구조개혁과 함께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상황이 꼬여가는 분위기다. 구조개혁은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등 국민연금 제도의 숫자 조정에서 더 나아가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직역연금 등 전체 연금 제도의 구조를 함께 보고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그만큼 논의해야 할 내용이 방대하고 복잡해 개혁안 마련까지 오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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