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 트라우마 vs 병원 전무’ 하동군, 보건의료원 건립 놓고 갈등
경남 하동군이 보건의료원 건립 사업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하동군은 병원급 의료기관이 관내에 한 곳도 없어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과거 사업 실패로 ‘채무 트라우마’가 생긴 하동군의회는 빚을 갚고 있는 마당에 적자운영 가능성이 높은 사업 추진은 신중해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29일 하동군에 따르면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예산 363억원(94억 군비 포함)을 들여 하동읍 현 보건소 부지 1만1720㎡에 병상 50개 이내, 10개 진료과(전문의 4명, 공중보건의 12명) 규모로 하동군 보건의료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군의회는 지난달 25일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보건의료원 실시 설계비 13억39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군의회는 보건의료원 건립의 운영비 과다 책정, 운영 적자 우려에 따른 대책 마련 등을 예산 삭감 이유로 내세웠다.
이후 하승철 군수는 군의회 앞 등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반발했고, 양 측은 서로 반박 자료를 내며 정면 충돌한 상태다.
쟁점은 보건의료원 실효성과 사업성에 대한 견해차다. 하동군은 인구 4만1300명으로 인구감소지역이다. 경남에서 유일하게 병원급(2차) 의료기관이 없다. 30분 이내 응급실 이용 환자비율은 2.5%(경남 61.1%)로, 응급의료 접근성이 취약하다.
하동군은 지난 12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타당성 연구용역 결과를 거쳐 보건의료원 건립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군은 인근 지역 종합병원 2곳이 보건의료원을 위탁 운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연간 24억원 가량의 재정적자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8년 경남도의료원 진주병원이 개원되면 의료 수요가 유출돼 지역 인구가 감소될 가능성이 있어 보건의료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하동군의 입장이다.
반면 군의회는 빚에 허덕이는 하동군이 보건의료원 건립 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년간 표류 중인 갈사만산업단지 조성 사업(사업비 1조5790억원)과 대송산업단지(사업비 2767억원)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2003년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갈사만 산업단지’가 표류하면서 분양대금 채무 문제로, 하동군은 대우조선해양에 620억원대(하동군 예산의 15%)의 손해배상금을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물어줬다. 관련해 어업권 손실보상 등 10건의 추가 소송도 진행 중이라 모두 패소하면 총 배상금액만 1290억원을 더 물게 된다.
민간사업자의 부도로 하동군이 사업을 떠안게 된 대송산업단지 조성 사업도 1300억원(지방채) 가량의 빚을 져 975억원을 갚고 325억원이 아직 남아 있다.
군은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양 측 이견을 좁혀 내달 임시회 때 안건을 다시 올린다는 방침이다. 하동참여자치연대 관계자는 “농어촌지역의 필수의료는 하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라며 “하동군과 군의회는 뇌혈관·심혈관 질환 등의 응급의료체계 구축 등에 대해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 j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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