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우울증 겪던 父, 완쾌됐어요” 새 일자리 만들어준 아들

이가영 기자 2024. 5. 2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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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아들 덕분에 동네 이웃을 대상으로 소형 화물 운송을 하며 우울증을 극복한 장기봉(66)씨. /엠엘비파크

“갑자기 내가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정신과 문도 두드리게 됐죠.”

젊어서부터 이삿짐센터를 운영해 온 장기봉(66)씨는 코로나로 사업을 접은 후 우울증을 앓게 됐다. 경제적으로 아주 풍족한 건 아니었지만 열심히 일해 모은 돈으로 서울에 집을 마련했고, 연금도 나오고, 장성한 아들이 용돈도 주니 물질적으로 어렵지는 않았다. ‘나이 먹으니 할 일이 없다’는 상실감이 문제였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아들 윤성(38)씨는 장씨에게 동네에서 화물 배달하는 일을 추천했다. 아들은 적절한 서비스를 찾다가 ‘당근’을 떠올렸다. 동네 이웃을 대상으로 하니 단거리 위주의 일을 구할 수 있고, 중개수수료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장씨 대신 ‘비즈프로필’을 개설해 당근 페이지를 꾸몄다. 삭막한 느낌을 피하기 위해 친근한 이름을 붙이고 고양이 이미지를 추가했다. 모든 비용은 정가제로 공개했다. 가끔 화물 운송 기사를 불렀을 때 갑자기 가격을 추가해 기분이 나빴던 경험을 살렸다.

그렇게 작년 12월부터 일을 시작한 장씨는 당근을 통해 한 달 만에 20건 넘는 물건을 배달했다. 중고 세탁기를 배달만 해도 될 텐데 직접 설치까지 해주는 장씨의 친절함에 긍정 후기도 달렸다.

장기봉씨가 새로운 일을 하게 된 후 아들에게 보낸 메시지. /엠엘비파크

하루에 한 건씩은 일을 하며 소소하게 용돈을 버니 장씨의 우울증도 단번에 치료가 됐다. 장씨는 아들에게 “당근 안 했으면 일이 없어서 우울증에 빠져버릴 뻔했다. 사람은 일단 움직여야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거 아니겠냐”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윤성씨는 지난 1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아버지 우울증 치료되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이 같은 사연을 전했다. 이후 두 번의 근황을 더 전했다. 지난 3월에는 아버지가 일을 많이 하게 되면서 직접 당근에 답글도 달아주고, 견적도 보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지난 2일 올라온 글에서는 새로운 차량도 장만했다고 전했다. 차량 뒤에 리프트가 있어서 무거운 물건도 쉽게 배달할 수 있게 됐다.

윤성씨는 “아버지에게 일을 쉬엄쉬엄 하라고 잔소리하지만, 여기저기서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재밌다고 하신다”며 “일이 많이 들어오면 지인들에게 일거리도 나누어주면서 베풀게 되니 아버지 정신 건강에도 더 이롭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기뻐하시는 아버지 사진으로 마무리한다”며 “그동안 3편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세 편의 글은 약 500건의 추천을 받았다. 네티즌들은 “정말 효자다” “돌아가신 아버지 보고 싶다” “추천을 안 할 수가 없다”며 장씨 부자를 응원했다.

장씨의 당근 '비즈프로필'에 고객이 남긴 리뷰. /당근

장씨는 이 같은 온라인 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29일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아들이 일을 많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따로 살다 보니 글을 쓴 것까지는 몰랐다”며 “아들 덕분에 바쁘게 살면서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이제 약을 끊어도 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장씨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살려 몇 개월 만에 단골도 확보했다. 보통 당근에서 용달을 찾는 이들은 포장까지 완벽한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장씨는 수십만원을 들여 TV, 냉장고용 전용 커버들을 크기별로 구비해 탑차 안에 고정해서 옮겨준다고 했다. 실제로 장씨의 비즈프로필에는 “너무 친절하세요” “저보다도 물건을 더 소중하게 다뤄주셨어요” 등 후기가 가득했다.

장씨는 “은퇴할 나이기는 하지만, 몸은 아직 성해서 놀기만 하기에도 그런 나이가 됐다”며 “일에 도취돼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으니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잠도 잘 잔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많이 추천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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