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R&D 예산삭감 충격, 우주청도 험난…과학기술 D

박희범 기자 2024. 5. 2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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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4주년 특집 : 윤석열 정부 2년 평가] ⑮끝- 과학기술(우주·양자·바이오 등)

(지디넷코리아=박희범 기자)지디넷코리아는 창간 24주년을 맞아 윤석열 정부 정책 2년을 평가했습니다. 전년과 마찬가지로 통신·플랫폼·로봇·금융·반도체·SW·AI·자동차·배터리 디지털헬스케어·게임 등의 분야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의욕을 갖고 시작한 정책들이 일관성 있게 효율적으로 추진되는지 살펴보았고, 정책의 실수요자들은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들어보았습니다.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평가 점수가 지난해보다 하락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현 정부의 정책이 추진된 지 반환점조차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에 ‘중간평가’의 의미이지만 정책당국에서는 평가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겠습니다. 이번 기획이 향후 정책이 좋은 평가로 발전하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미래를 향한 대한민국 호가 산으로 간다.”

과학기술계 연구자들이 내는 한결같은 목소리다. 윤석열 정부의 대대적인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조치 때문이었다. 

올해 국가 R&D 예산은 26조5천억원으로 2023년에 비해 4조6천억원(14.7%) 가량 삭감됐다. R&D 예산이 삭감된 것은 1991년 이후 33년 만이다. 

지난 2월 KAIST 졸업식장에서 R&D예산 삭감에 항의하던 졸업생이 쫓겨난 사건은 최근 분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당시의 ‘졸업생 입틀막’ 사건은 과학기술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지난 2월 KAIST 졸업식. R&D 예산 삭감에 항의하던 졸업생이 제지당했다. (사진=뉴시스)

지디넷이 24년 창간을 맞아 실시한 윤석열 정부 2년차 과학기술 분야 정책 평가에도 이런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됐다. 평가에 참여한 위원들은 "IMF 때도 R&D 예산은 깎지 않았다"면서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D학점을 부여했다. 

이번 평가에는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과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를 비롯한 과학기술 분야 학회 및 협회 등에서 임직원이 참여했다.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 및 업계 오피니언 리더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병행했다.

평가에 참여한 이일형 국회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회 정책연구소 정책위원은 “과제 예산이 50% 줄었는데, 성과는 그대로 내라고 했다더라. 1~2년 차에 멈춘 과제는 구입 장비를 보관만 하게 됐다"면서 "예산 복원이 아니라, 과제를 원상 복구해야 한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주청이 사천에 둥지를 틀고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달 착륙과 화성 탐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풀어야할 숙제가 산적했다.

출연연 벽허물기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글로벌 톱 사업은 현재 진행 형이다. 그러나 임무 중심의 개방형 협력체계를 표방했던 국가기술연구센터(NTC)는 총선 전 멈췄다. 출연연 통폐합을 전제로 한 ‘구조조정’ 아니냐는 비판 때문이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추진해던 슈퍼컴 6호기 도입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슈퍼컴 6호기 구입 작업은 지난 해 마무리 됐어야 하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해와 올해 유찰 횟수만 네 차례에 이를 정도로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 2차관과 혁신본부장을 한꺼번에 교체했다. 과학기술계가 겪은 초유의 사태였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우주항공청 설립운영 기본방향' 을 브리핑했다. (사진=과기정통부)

R&D 예산 14.7% 4.6조 원 삭감…과기계 전체가 등 돌려

조승래의원실은 지난해 예산 심의 때부터 현 정부가 내건 국정과제 120개 가운데 74번 과제에 주목했다. 74번 국정과제 목표는 ‘국가 과학기술 시스템 재설계’다. R&D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에서 유지한다는 대국민 약속이었다.

국회 과방위 더불어민주당 간사를 맡았던 조승래 의원은 “윤 대통령 자신이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라는 제목으로 ‘과학기술이 선도하는 도약의 발판을 놓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 아니었나”라며 “정부가 스스로 제 발등 찍은 격”이라고 말했다.

이상목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 상임대표는 “삭감된 예산이 10년 뒤 미래 한국의 경쟁력을 좀 먹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도 독일과 영국처럼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자율성의 원칙이 도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정부 행태에 일침을 놨다.

* 지디넷 자체 집계
KISTEP 국가별 총 연구개발비 비교.

실제 지난 2023년과 2022년 R&D 예산 통계를 보면, 총예산 대비 비율이 2024년 4.03%로 전년 대비 0.83%떨어졌다.

이 상임대표는 “1982년 R&D 예산이 편성된 이후 IMF 때도 R&D 예산만큼은 삭감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측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따라 과기계 예산삭감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안다”며 “그 때문에 과기정통부 1,2 차관과 혁신본부장이 바뀐 것으로 아는데, 정작 예산에서 책임 있는 기재부에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황정아 의원 당선인(더불어민주당)은 매년 R&D예산 규모를 5% 이상 법률로 정하는 R&D 국가예산목표제를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추진 중이다.

우주분야 "사천 우주청 시대 본격화 ...난제 산적"

우리나라에서도 우주항공청 시대가 열렸다. 지난 27일 경남 사천에 문을 열고 우주시대를 본격화 했다. 지난 대선 ‘항공우주청’이라는 단어로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우주청은 과학기술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번에 문을 연 우주청 주요사업은 발사체, 위성, 달, 항공 등 4개 분야다. 프로그램은 모두 12개다. 달 착륙은 8년 뒤인 오는 2032년, 화성 착륙은 21년 뒤인 2045년이 핵심 목표다.

관심사였던 만큼 우주청을 걱정하는 주위 목소리도 컸다. 풀어야 할 과제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우주개발은 이제 시작이다.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과는 비교가 안 된다. 유로컨설턴트가 내놓은 우주 분야 투입 예산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7억2천300만 달러였다. 미국은 732억 달러를 쏟아 붓는다. 우리의 101배 수준이다. 일본은 46억 5천300만 달러로 6배 수준이었다.

지난 27일 개청한 우주청 간판.(사진=뉴시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2023년도 글로벌 R&D투자동향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연구개발비는 총 1천195억 달러다. 미국은 8천60억 달러로 우리의 7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일본 역시 1천774억 달러로 우리보다는 훨씬 많다. 우주 강국으로 가기 위해선 우주 분야 예산 투입부터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근거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 책임연구원은 “우주청 탄생 배경도 다소 정치적이다. 항공우주청이라는 이름으로 거론된 시점이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전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공감이 모자랐다”고 지적했다.

우주청 인력 선발도 험난하다. 인력 선발에 관여했던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최근 우주청이 선발한 5급 사무관 선발이 미달인 것으로 안다”며 “이런 식이라면 올해 말까지 채용 목표 293명을 다 채울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현재 우주청 근무자는 110명이다. 향후 183명을 더 채워야 한다. 그러나 사천까지 이주해 근무할 지원자가 많지 않다는데 과기정통부의 고민이 있다.

과기정통부가 천명한 대전은 R&D, 사천은 우주청과 산업, 고흥은 발사체 등 3각 트라이앵글론도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워싱턴 DC에 위치해 있다. 산하시설 11개가 미 전역에 나눠져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K 연구자는 "사실 사천에는 KAI(한국항공우주산업) 외에 이렇다 할 기업이 없다"면서 "우주산업이 취약하고, 산업부도 관련 부서 규모가 작아 결국 과기정통부 산하 우주부문으로 넘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천문연구원과의 관계 설정도 애매하다. 천체 관측과 카메라 탑재체 테스트 등을 해온 천문연이 발사체와 위성, 우주개발이 주목적인 우주청과 깊은 연관성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우주청장 직급과 산하기관으로 소속이 바뀐 항우연과 천문연 기관장 간 직급 '충돌 우려'도 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같은 차관급이 이사회를 구성해 동일한 차관급을 선정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을 리 없다는 얘기다.

양자 바이오 기타분야 "속도 한창 불구 슈퍼컴 구입 등 일부선 삐그덕"

최근 과기정통부와 과학기술계는 1000큐비트급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양자과학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예타(예비타당성조사)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가 최근 R&D 분야 예타 폐지를 선언해 과학기술계도 기대감을 갖고 예의 주시했다.

올해 초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20큐비트 양자컴퓨터 시연에 성공했다. 오는 2026년까지 50큐비트 초전도양자컴퓨팅시스템 구축에 나선다.

지난 27일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국내 최대 양자 전용 설비인 양자팹 구축 계획이 공개됐다. 총 451억 원을 들여 KAIST에 구축한다. 이 사업에는 KAIST를 중심으로 나노종합기술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SK텔레콤, 대전테크노파크가 참여한다.

미국선 지난 해 아톰컴퓨팅과 IBM이 1000큐비트가 넘는 양자컴퓨터를 처음 공개했다.

양자컴퓨터가 제대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최소 100만 큐비트 수준까지는 올라가야 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진이 20큐비트급 양자컴퓨팅 시스템을 시연했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과기정통부는 향후 8년간 9천960억 원을 들여 양자 컴퓨터와 양자 네트워크 등의 개발을 추진 중이다.

슈퍼컴 6호기 도입은 지지부진하다. 지난해와 올해 유찰 횟수만 네 차례다. 이 사업은 2천929억 원을 들여 600페타플롭스(PF) 성능의 슈퍼컴퓨터를 올해 말까지 구축하기로 했던 사업이다. 정부는 합성생물학이나 바이오헬스 등 바이오 기술 개발에도 공을 들였다.

최근엔 바이오 이니셔티브를 공개했다.

현재 합성생물학, 바이오 데이터 플랫폼, AI・디지털바이오 등 주요 기술 분야별로 세부 실행계획을 수립 중이다.

오는 2035년까지 글로벌 바이오 선도국 진입이 목표다.

이에 반해 슈퍼컴 구축 사업은 지난해 8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지만, 지지부진하다.

최근 AI 열풍이 계산공학 분야에도 불어 닥쳤다.

GPU(그래픽처리장치)가 CPU만큼 중요해졌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내년 예약 판매도 모두 끝난 상황이다. 엔비디아 측은 현재 내년 주문량이 2백만 대나 밀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슈퍼컴퓨팅 업무에 종사하는 과학기술계 연구자는 “일단 추가 예산 일부를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4만~5만 달러짜리 GPU가 1천 여 개는 있어야 한다고 볼 때 최소 480억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러나 돈이 문제가 아니라, 공급 요청을 해도 내년까지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 연구자는 다섯 번째 입찰에 들어가도 응찰자가 없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외에 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 5대 강국 도약을 기치로 12대 전략기술 품목을 정해 글로벌 톱 프로젝트 등 투자를 확대해 나가는 중이다.

또 ▲초격차 R&D 프로젝트 기획 및 추진, ▲민관합동 회의체 중심 전략 로드맵 수립, ▲중장기 프로그램형 R&D, ▲양자기술 산업기반 조성, ▲기술 스케일업, ▲초연결 인프라 구축, ▲전략적 국제협력, ▲연구산업진흥단지 신규 지정 등을 진행 중이다.

남승훈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회 부회장(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출연연의 자율성과 책임성 강화를 위해 총액배분 자율편성 제도를 실효성 있게 개선하고 안정적인 인건비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며 “현재의 구조적인 한계를 과감히 벗어날 때”라고 말했다.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장은 "선진국형 R&D 시스템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율적인 연구 환경부터 조성해야 할 것"이라며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평가 제도와 도적적 연구자 육성을 위한 보상체계 등이 갖춰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희범 기자(hbpark@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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