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슬퍼하자, 나간 분들 위해"…1→10위 고속 추락 자책한 한화 선수들, '감독 사퇴' 쓴약 됐다

김민경 기자 2024. 5. 2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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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 이글스 주장 채은성은 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떠난 최원호 전 감독과 박찬혁 대표이사를 언급하며 씁쓸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 한화 이글스
▲ 최원호 전 한화 이글스 감독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대전, 김민경 기자] "잠시만 슬퍼하고, 오늘(29일) 경기는 또 최선을 다해서 이기려 해야 한다. 그게 또 도리라고 생각한다."

한화 이글스 주장 채은성은 28일 대전 롯데 자이언츠전에 앞서 최원호 감독과 라커룸에서 마지막 미팅을 진행한 뒤 씁쓸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한화는 27일 '박찬혁 대표이사와 최원호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 최원호 감독은 지난 23일(대전 LG 트윈스전) 경기 후 구단에 사퇴 의사를 밝혀와 26일 구단이 이를 수락하며 자진 사퇴가 결정됐고, 박찬혁 대표이사도 현장과 프런트 모두가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동반 사퇴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선수단은 최 전 감독의 사퇴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화는 지난 23일 대전 LG전에서 4-8로 지면서 10위까지 추락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최근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LG전 패배 전까지도 3연승을 달리고 있었고, 10위로 추락한 이후로는 또 3연승 행진을 이어 가며 8위까지 올라섰다. 지난달 성적 6승17패 승률 0.261로 최하위에 머물렀을 때 잘 넘긴 만큼, 최 전 감독이 계속 지휘봉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최 전 감독이 물러나면서 감독대해을 맡은 정경배 수석코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조금 더 안 좋은 상황이었을 때는 감독님께서 굉장히 힘들다고 말씀을 하셨고, 그런데 최근에는 조금 팀이 상승세로 올라왔다. 그래서 코치진이나 선수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급격히 떨어지는 순위는 사령탑의 목을 조여왔다. 한화는 3월까지 7승1패로 선두를 달리다 4월에 6승밖에 추가하지 못하면서 시즌 성적 13승18패로 8위까지 추락했다. 그리고 지난 23일 시즌 성적 19승29패1무 승률 0.396로 끝내 10위로 추락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최 전 감독은 결국 자리를 내려놨다.

최 전 감독은 지난 3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4-2 승리로 KBO 역대 57번째 100승 감독이 된 뒤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감독이라는 자리의 부담감이었다. 최 전 감독은 2019년부터 퓨처스팀 감독으로 한화와 인연을 맺고, 리빌딩의 발판인 육성을 담당했던 지도자라 지난해 5월 내부 승격으로 1군 감독이 됐을 때 기대를 모았으나 그 기대가 오히려 독이 된 듯하다.

최 전 감독은 "하다 보니까 100승을 하게 됐다. 1군에서 감독 생활은 힘들구나 생각한다. 여러 가지 새삼 느끼면서, 감독 생활 오래 하신 분들이 존경스럽다. 100승까지 가는 과정도 힘든데, 1000승을 하신 분도 계시니까. 오랜 기간 감독 생활을 하면서 우여곡절도 있으셨을 텐데 대단하시구나 새삼 느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17경기를 더 지휘한 뒤 한화 유니폼을 벗었다.

▲ 한화 이글스 주장 채은성 ⓒ 한화 이글스
▲ 한화 이글스 주장 채은성은 이날 개인 통산 700타점을 달성했다. ⓒ 한화 이글스

채은성은 자책했다. 올해 부상과 부진이 겹쳐 주장으로서 자기 몫을 다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채은성은 최 전 감독과 함께한 지난 26일까지 34경기에서 타율 0.217(129타수 28안타), 3홈런, 20타점, OPS 0.606으로 고전했다. 채은성은 지난 시즌을 앞두고 한화가 FA 시장에서 6년 총액 90억원을 들여 영입한 중심타자다. 타선의 중심이자 더그아웃의 리더가 흔들리지 한화도 외국인 타자 요나단 페라자의 화력만 믿고 타선을 끌고 가기는 어려움이 있었다.

채은성은 "일단 감독님이 기분 좋게 나가신 게 아니기 때문에 결국 선수들이 못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열심히 준비해서 또 이기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감독님의 부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안타깝지만 결과가 이렇게 난 것은 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가 못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좋은 결과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결국 우리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난 것이다. 투구를 탓할 게 없다"고 덧붙였다.

채은성과 류현진 등 고참 선수들을 중심으로 선수단 분위기 수습에 들어갔다. 선수들은 좌절하기 보다는 앞을 보고 다시 나아가기로 했다. 채은성은 "이미 일은 벌어졌고, 우리는 또 계속 나아가야 되기 때문에 잠시만 슬퍼하고, 오늘(29일) 경기는 또 최선을 다해서 이기려 해야 한다. 그게 또 도리라고 생각한다. 잘되는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게 우리 일이다. 아직 포기할 단계도 아니고, 남은 경기가 많다. 먼저 나가신 우리 감독님과 사장님 때문이라도 더 열심히 목표한 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자고 이야기했다"고 강조했다.

선수들은 정경배 대행 체제로 치른 첫 경기에서 다짐을 제대로 지켰다. 선발투수 문동주는 6이닝 3실점으로 시즌 첫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든든히 마운드를 지켰고, 타선은 장단 15안타를 터트리면서 12-3으로 이겼다. 채은성은 4타수 2안타 1볼넷 2타점으로 활약하면서 타선에 불을 붙였다. 채은성이 이날 1회 첫 타석 선취 적시타로 개인 통산 700타점을 달성하기도 했다. KBO 역대 60번째 기록이다. 복덩이 페라자는 4타수 4안타(1홈런) 1볼넷 2타점으로 미친 활약을 보여줬다.

정 대행은 경기 뒤 "침체될 수 있는 분위기에서도 선수들 모두 동요하지 않고 오늘 경기 잘 치러준 것에 대해 정말 고마운 마음이다. 누구 한 명을 꼽기보다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준 우리 선수들 모두 칭찬해주고 싶다"고 선수들을 다독였다.

▲ 한화 이글스 채은성 ⓒ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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