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리포트] 가뭄 오면 생체시계 멈추는 물고기…노화 억제할 단서 될까
휴면 유전자는 척추동물 공통조상부터 진화
휴면 과정 모방하면 세포 노화 정지시킬 수도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280일 동안 자란다. 인간 평균 수명이 71.4세이니 태아기보다 90배 이상 오래 사는 셈이다. 아프리카 호수에 사는 물고기인 킬리피시(killifish)는 반대다. 가뭄이 닥치면 배아 상태에서 발달을 멈추고 수명보다 4배나 길게 잠을 잔다.
미국 과학자들이 킬리피시가 가뭄을 피해 휴면(休眠) 상태에 돌입하는 건 4억7300만 년 전 고대 생물의 유전자 덕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유전자의 뿌리가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만큼 인간과 다른 동물도 휴면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과학계는 휴면 동안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내면 인간의 노화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앤 브루넷(Anne Brunet) 스탠퍼드대 유전학과 교수와 파람 프리야 싱(Param Priya Singh)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해부학과 교수 연구진은 “아프리카 짐바브웨와 모잠비크에서 서식하는 청록색 킬리피시(학명 Nothobranchius furzeri)의 생물학적 휴면 상태 메커니즘을 밝혀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셀(Cell)’에 28일 발표했다. 싱 교수는 스탠퍼드대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브루넷 교수와 연구를 진행했다.
청록색 킬리피시는 건조한 지역에 비가 내려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물웅덩이에 서식한다. 언제 마를지 모를 물웅덩이에 사는 탓에 번식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성체로 자라는 데 필요한 시간은 겨우 14일이고, 성체의 수명은 6개월에 불과하다. 그 사이 빨리 찍짓기하고 알을 낳아 대를 잇는다.
아프리카 킬리피시가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배아에 있다. 이 물고기의 배아는 물웅덩이가 말라 살기 힘든 환경이 되면 휴면 상태에 들어간다. 배아가 휴면 상태가 되면 심장은 박동을 잠시 멈추고, 성장이 늦어진다. 킬리피시 배아는 평균 8개월, 최장 2년까지 휴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는 물고기 수명보다 4배까지 긴 시간이다.
연구진은 휴면 상태에 있는 킬리피시 배아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휴면 기간 중에 발현되는 유전자가 6247개 발견됐다. 연구진이 휴면에 특화한 유전자를 추적해보니 대부분이 4억7300만년 전에 유래한 것으로 추정됐다. 킬리피시의 휴면 유전자가 나중에 생기지 않고 척추동물의 공통 조상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연구진이 발견한 휴면 특화 유전자는 휴면하는 생쥐(Mus musculus)의 배아에서도 발견됐다. 모습과 서식지가 완전히 딴판인 두 종(種)에서 같은 휴면 유전자가 나타난 것이다. 싱 교수는 “휴면을 가능하게 하는 같은 메커니즘이 먼 종들에 걸쳐 휴면의 진화를 위해 반복적으로 채택된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휴면 유전자들은 에너지 생성을 위한 지방 분해와 세포막 구성 과정을 조절한다. 특히 동물의 지방 조직을 구성하는 트라이글리세라이드와 매우 긴 사슬 모양의 지방산이 많이 생성돼 세포 막을 장기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킬리피시의 휴면 특성은 노화 연구에 새로운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테면 킬리피시가 지방 조직을 이용해 세포 수명을 늘리는 방식을 인간에 적용하면 노화를 억제할 수 있다.
앞서 2020년 브루넷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진은 사이언스지에 “일반 킬리피시 배아와 발달을 멈춘 휴먼 배아에서 부화한 성체를 비교한 결과, 휴면기는 성체 물고기의 성장과 수명, 번식능력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즉 자신의 수명보다 더 오랫동안 발생을 중단하는 기간 노화(老化)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싱 교수는 “휴면 과정은 너무 복잡해 현재 연구는 표면만 훑는 수준”이라며 “휴면 중 지질 대사가 어떻게 조절되는지 구체적인 측면을 더 깊이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Cell(2024),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4.04.048
Science(2020),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w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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