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성자 화백의 아뜰리에, 프랑스 정부가 지정한 문화유산 됐다
재불(在佛) 화가 이성자(1918~2009)가 1992년 프랑스 남부 투레트에 지은 아뜰리에 ‘은하수’가 프랑스 정부가 지정한 문화유산이 됐다.
이성자 화백의 장남인 신용석 투레트화실보존협회장은 “어머니가 직접 설계해 지은 작업실 ‘은하수’가 프랑스 정부가 지정해 관리하는 ‘주목할 만한 현대건축물’에 28일(현지 시각) 지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주목할 만한 현대건축물’은 프랑스 정부가 엄격한 심사를 통해 100년 미만의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을 대상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제도다. 한국 작가가 해외에 세운 아뜰리에가 그 나라 정부가 공식 관리하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 처음이다.
경남 진주 출신인 이성자는 하동과 창녕 군수를 지낸 아버지 밑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신여성이었다. 일본 도쿄 짓센여자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와 촉망받는 외과의사와 결혼했다. 12년 만에 이혼한 그는 이듬해인 1951년 아들 셋을 두고 혼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무일푼, 무명의 처지에서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파리 화단에 진입했다.
한국에서 한 번도 회화를 전공한 적이 없던 그는 1953년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 입학한 지 단 3년 만에 국립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당시 파리 최고 갤러리였던 샤르팡티에 갤러리에서 열린 ‘에콜 드 파리’전에 쟁쟁한 화가들 작품과 함께 이성자의 ‘내가 아는 어머니’가 출품됐다. 1964년엔 같은 갤러리에서 이성자 개인전이 열렸다. 작가는 “내가 붓질을 한 번 하면서, 이건 내가 우리 아이들 밥 한 술 떠먹이는 것이고, 이건 우리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라 여기며 그렸다”는 말을 남겼다. 세 아들 키우던 열정을 오롯이 그림 그리는 에너지로 승화한 것이다.
1992년 투레트에 ‘음양’의 모티브를 형상화해 지은 아틀리에가 바로 ‘은하수’다. ‘양’의 건물에서는 낮에 회화 작업을 하고, ‘음’의 건물에서는 밤에 판화 작업을 했다. 완전히 합일하지 않은 음양의 건물 사이로 시냇물이 흘러 ‘은하수’를 형성하는 상징적이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이성자는 2009년 이곳에서 91세의 생을 마감했다.
지금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테노바에서는 작가의 개인전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가 열리고 있다. 동양의 철학인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서양 기법을 녹여내며 자신만의 세계를 일군 화가를 조명하는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던 바르토메우 마리가 기획을 맡아 대표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미술계 관계자들은 “베네치아 개인전에 이어, 작가의 작업실까지 프랑스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유럽에서 이성자 화백에 대한 관심이 더 뜨거워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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