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창작춤 선구자 김매자 “예전에 췄던 춤 복원해 추는 기분”
“땅을 몸으로 파고드는 우리춤의 독특함 주목해야”
“예전에 췄던 춤을 복원해 무대에서 다시 신명 나게 추는 기분이에요.”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전 이화여대 교수)은 한국 창작춤의 새길을 연 선구자로 불린다. 81살 나이에도 여전히 무대에 오르는 ‘현역 최고령 무용수’. 그가 쓰고 번역한 ‘한국 무용사’와 ‘세계 무용사’가 각각 새롭게 출간(지식공작소)됐다.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창무예술원에서 만난 그는 “제가 사그라졌다가 다시 건강을 되찾은 느낌”이라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 무용사’는 이 분야의 고전으로 손에 꼽힌다. ‘춤 인류학자’로 불리는 독일 출신 민속음악학자 쿠르트 작스(1881~1959)의 1933년 저작. 한장의 사진이 인연이 되어 국내에 소개됐다. “외국에 나가면 꼭 서점에 들렀는데, 작스가 쓴 ‘세계 무용사’에 한국 무용 ‘검무’ 사진이 들어있는 거예요.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김 이사장은 “이 위대한 책에 실린 한국 여성 칼춤 사진에 이끌려 책을 번역하게 됐다”고 40년도 더 된 기억을 소환했다. 1983년 ‘풀빛’ 출판사가 초판을 냈고, 1992년엔 ‘박영사’에서 재출판했지만, 곧 절판됐다. 김 이사장은 “다시는 이 책을 볼 수 없겠구나, 내가 이런 책을 만들었다는 흔적도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이렇게 소생하는 걸 보니 감격스럽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세계 여러 나라 춤의 역사를 돌이키고 살피는 일이 새로운 창조의 출발점”이라며 “춤의 근원은 다 비슷한데, 그 가운데서 우리춤만이 지니는 독특함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춤 속에 들어 있는 땅에 대한 개념을 예로 들었다. “원시인들은 땅을 발로 구르면서 춤을 췄죠. 일본춤도 발로 땅바닥을 다지면서 춰요. 땅에서 기를 받는 것은 전 세계 춤이 같아요. 그런데 우리춤은 몸 전체를 땅에 대고, 몸으로 땅속을 파고들어요. 승무를 봐도 그렇고요. 이런 춤은 한국춤밖에 없어요.”
그는 “여러 외국 무용가들과 협업을 해봤는데 우리춤의 매력에 금세 심취하더라”며 “미국 마사 그레이엄 같은 무용가도 동양의 춤에서 자신만의 특성을 차용했다”고 설명했다.
소녀시절 원래 꿈은 여성국극단 단원이었다. “여자가 남자 복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게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는 “창극 배우가 되기 위해 판소리를 익혔고, 영화감독 겸 배우 윤봉춘에게 연기도 배웠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춤과 노래, 연기를 함께 익힌 이때의 경험은 그가 훗날 무대에서 보인 카리스마의 원천이 됐다. 이화여대에 입학한 이후엔 궁중춤과 민속춤, 불교의식춤, 무속춤 등을 다양하게 익히며 우리춤의 뿌리를 탐색했다. 그는 “대학 때도 인왕산 국사당을 찾아가 굿판을 구경했고, 송암 스님에게 범패를 배우다 천상의 짓소리(사찰에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에 탄복했던 기억이 있다”며 “그 전엔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만 했는데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 무용사’는 대학에서 한국 무용사를 강의하며 모은 자료들과 그동안 춤판에 오르며 틈틈이 메모한 기록들을 정리해 1995년 출간(삼신각)한 책이다. 한국 춤의 기원과 현대의 한국춤까지 한국 무용사를 통사적으로 담아냈다. 이번 증보판은 첫 출간 당시의 오류를 바로잡고 새로운 정보도 반영했다. 근현대 한국춤의 흐름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한국무용사 연표’를 부록으로 첨부했다. 춤 동작을 기호와 그림으로 기록한 각종 무보도 실었다. 김 이사장은 “저는 학자가 아니라 춤꾼”이라며 ”내 춤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탐구하는 입장에서 자료를 모으고 수집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인 그가 ‘전통에 뿌리내린 오늘의 한국춤’을 내세워 1976년 만든 창무회는 국내 최장수 민간 무용단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만의 독특한 ‘한국적 현대춤’은 해외에서 먼저 가치를 인정받았다.
창무예술단은 지금껏 800여 차례 이상 해외에서 공연했다. 1970년대 후반 한복과 버선을 벗고 맨발로 춤을 춘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춤엔 반드시 한복에 버선을 신던 시절이었는데, 이후 ‘맨발 춤’이 일반화됐다. 그는 “힘이 닿을 때까지는 춤을 출 것”이라고 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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