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해외직구 논란…암, 절반 이상은 원인도 몰라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4. 5. 2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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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관에 쌓여있는 직구물품. 연합뉴스 제공

이(뉴욕/뉴어크) 항구에서는 엄청난 양의 위조품이 목격된다. 가짜 장난감과 아동복이 특히 위험하다. 가연성이나 질식 위험이 있거나 납 성분으로 가득 차 있어서다.
- 올든 위커,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에서

관습적으로 쓰는 말도 막상 그런 상황을 겪고 나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도마뱀 꼬리 자르기'가 그런 경우로 작년 이맘때 눈앞에서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모습을 본 뒤 이 표현을 접하면 그때 생생한 장면이 떠오른다. 

공원길을 걷고 있는데 사람 두세 명이 땅 위의 한 지점을 둘러 서 있기에 뭔가 싶어 봤더니 도마뱀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순간 꿈틀하더니 몸의 중간이 뚝 끊어지는 게 아닌가.

작은 뱀처럼 보이는 분리된 꼬리가 좌우로 격렬히 움직이며 주의를 끈 사이 녀석은 잽싸게 달아났다. 그런데 잘린 꼬리가 꽤 길어 내심 놀랐다. 하긴 꼬리가 아까워 끝만 희생하면 천적의 주의를 돌리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주의를 돌리는 방법이 꼬리 자르기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 주목을 받을 때 더 큰 문제가 터지면 관심이 옮겨가며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린다. 이런 일은 치밀한 계획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어쩌다가 그렇게 되기도 한다. 최근 중국 직구 관련 해프닝은 후자의 사례가 아닐까.

거의 거저나 마찬가지인 가격에 산 제품에서 허용치의 수백 배에 이르는 인체 유해 물질이 검출되면서 소비자의 불안감이 커지자 정부는 서둘러 해외 직구 제품도 KS 인증을 받아야만 들여올 수 있게 법을 바꾸겠다는 대응을 내놓았다.

그러자 직구족들이 격렬히 반발했고 당황한 정부는 입장을 철회하며 사과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뒤에도 면세 한도 조정 등 직구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하다. 반면 정작 사태의 출발점인 유해 물질 범벅인 제품의 수입에 대한 문제는 잊힌 듯하다.

이 상황을 지켜보며 내심 놀란 건 아무리 싸도 그렇지 품질 보증이 전혀 안 된 제품을 그것도 아이들이 쓰는 물건을 사는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여러 사례를 통해 해외 직구를 하면 이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이상한 일이다. 부모도 양극화돼 자녀의 건강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그룹과 무관심한 그룹으로 나뉜 것일까.

● 신장암 발생률 나라별 최대 8배 차이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한 논문을 읽으며 이번 직구 제품 유해성 논란이 떠올랐다. 직접 관련된 건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논문은 11개 나라의 신장암 관련 돌연변이 패턴을 분석한 내용으로 나라별로 발생률도 제각각이고 변이 패턴도 제각각이었다. 게다가 뜻밖에도 사례의 절반 이상은 암 발생 원인을 모른다고 한다. 

11개 나라 신장암 시료를 분석해 밝힌 변이(SBS) 시그너처 기여도를 보여주는 그래프다(맨 오른쪽은 전체 평균). 전반적으로 비슷한 패턴이지만 일본에서는 유독 SBS12(녹색)의 기여도가 높고 루마니아와 세르비아에서는 SBS22a(주황색)와 SBS22b(노란색)의 기여도가 높다. 뒤의 둘은 아리스톨로크산이 돌연변이원으로 밝혀졌지만, SBS12는 아직 변이 발생 원인을 모른다. 네이처 제공

논문은 최근 게놈분석기술의 놀라운 성과 덕분에 가능한 연구 결과다. 신장암 환자의 암세포와 정상 세포의 염기서열을 비교해 암세포와 관련한 주요 변이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염기 하나 또는 두 개가 바뀐 치환 시그너처가 71개, 짧은 DNA 가닥이 끼어 들어갔거나 빠져나간 인델(indel) 시그너처가 18개다.

여기서 시그너처는 암이 생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정 돌연변이의 고유한 패턴을 뜻한다. 보통 암세포는 동시에 여러 시그너처를 지니고 있다. 특정 변이 패턴 하나만으로는 좀처럼 암세포로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편 주요 시그너처 가운데 변이를 일으키는 원인이 밝혀진 게 치환 시그너처는 47개, 인델 시그너처는 9개다. 치환 시그너처 24개와 인델 시그너처 9개는 변인을 일으키는 원인을 모르는 상태다.

연구자들은 11개 나라 962명의 신장암 환자의 암세포와 정상 세포(백혈구)의 게놈을 비교해 주요 변이의 발생 빈도를 분석했다. 또 흡연 여부, 비만도, 혈압 등 생활 습관과 생리 지표의 영향도 조사했다. 

먼저 10만 명 당 신장암 발생률을 보면 나라에 따라 무려 8배가 차이가 났다. 태국은 1.8명에 불과했지만 동유럽의 리투아니아와 체코는 각각 14.5명과 14.4명에 이르렀다. 아쉽게도 11개 나라에 우리나라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발생률 지도를 5.4~7.2명 범위로 중간이다.

신장암 발생 기여도, 상대적인 영향력이 특히 높은 단일염기치환(SBS) 시그너처는 7개로 이 가운데 5개는 11개국에서 기여도가 비슷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원인을 알고 있는 시그너처는 3개이고 나머지 4개는 원인을 모른다.

평균 기여도가 각각 30%와 20%로 1위와 2위인 SBS40a와 SBS40b도 원인을 모른다. 신장암을 일으키는 변이 시그너처의 절반 이상이 발생 원인을 모른다는 말이다. 원인이 알려진 시그너처로는 평균 기여도 3위인 SBS4로 담배 연기에 포함된 발암물질이다. 흡연은 확실한 신장암 위험인자라는 말이다. 
 

신장암의 주요 변이 시그너처의 하나인 SBS4는 흡연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흡연이 폐암뿐 아니라 다른 많은 암의 원인임이 드러나면서 각국은 금연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영국은 2009년생부터 평생 담배를 사지 못하도록 하는 ‘금연법’이 하원을 통과하면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각국의 담배 구매 가능 나이를 나타내는 지도다. 위키피디아 제공

●  일본에서만 유독 높은 변이 있어

특정 국가에서만 기여도가 높은 변이 시그너처 3개 가운데 SBS22a와 SBS22b는 아리스톨로크산이라는 분자가 원인이다. 두 시그니처는 루마니아와 세르비아에서 유난히 높고 다른 나라에서는 기여도가 미미하다.

이는 유럽 발칸반도의 밀밭에 자생하는 잡초인 아리스톨로키아의 씨앗이 밀알에 섞여 들어간 결과로 보인다. 잡초 학명에서 짐작하듯 씨앗에는 오리스톨로크산이 들어있다. 이 인과관계가 알려진 뒤 밀알이 오염되지 않게 조심하고 있어 미래에는 이 지역의 신장암 발생률이 떨어질 전망이다.

한편 SBS12 시그니처는 유독 일본 신장암 환자의 암세포에서만 유난히 높아 분석한 36명 가운데 72%인 26명에서 발견됐다. 반면 나머지 10개 나라에서는 불과 2%에서만 나타났다. 그런데 문제는 SBS12을 일으키는 원인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차이는 유전적 요인이나 임의의 돌연변이로는 설명할 수 없으므로 분명 일본 고유의 환경 요인이 있을 텐데 아직 찾지 못했다.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인접 국가의 신장암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날 수 있다며 “동아시아인 수천만 명이 강력한 돌연변이원에 노출됐을 수도 있어 그 원인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SBS12 시그너처는 일본인 간암에서도 두드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장암 위험요인 가운데 흡연 다음을 차지하는 비만은 정작 변이 시그너처와는 관련이 없었다. 비만 자체가 돌연변이를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고혈압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런 요인들은 몸의 대사나 생리에 영향을 줘 다른 원인으로 변이가 일어난 세포가 암세포로 성격을 바꾸는 과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  암의 80%는 예방 가능?

이번 논문의 교신저자인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기관(IARC/WHO)의 폴 브레넌 박사는 2022년 학술지 '국립암연구소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변이 시그너처의 원인을 밝히면 암 예방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며 좀 더 많은 연구비를 투입할 필요성을 논했다.

브레넌 박사는 선진국 암 발생의 40%만이 예방할 수 있다는 환경과 생활 습관 같은 외부 요인이 원인이라는 설명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나머지 60%는 복제 과정 오류인 임의의 돌연변이나 유전요인(가족력)으로 암이 생긴다는 말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머지 60% 역시 대부분은 외부 요인이 원인이겠지만 아직 그 실체를 모를 뿐이다.

브레넌 박사는 암 종류별로 발생률이 하위 5분위인 나라의 평균 발생률과 영국의 발생률을 비교했다. 그 결과 영국의 발생률이 남자는 평균 5.6배, 여성은 4.4배 더 높았다. 하위 5분위 나라의 암 발생이 100% 임의 돌연변이나 유전요인 때문이라고, 예방할 수 없다고 봐도 영국 암 발생의 80%는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암 발생의 원인을 규명해 예방책을 찾는 게 암 발생률을 낮출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환경저널리스트 올든 위커는 온갖 화학물질로 범벅이 된 유독한 옷의 실상을 파헤친 책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에서 무분별한 해외 직구의 문제를 언급했다. 이 책 9장 '신뢰하되 검증하라'에서 저자는 미국 세관을 현장 취재하며 실상을 그렸는데 '홍수처럼 밀려드는' 배송 상자 더미에서 정신없이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어떨지 안 봐도 짐작이 갔다.

어떤 원료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일부 직구 제품에 설사 알려진 발암물질이 허용치 넘어 검출되지 않더라도 안심할 수 있을까. 걱정도 사서 한다고 생각할 독자도 있겠지만 이번 논문을 읽으며 이런 쪽의 지식이 아직은 멀었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10권),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가 있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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