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몰락을 기록한다 [청소년의 달 특집: 그들의 목소리➊]
오아시스 속의 바이러스
희망처럼 보이는 몰락과 죽음
감정을 옮길 수 있는 문학
숙주로서의 문청이 될 수 있다면
# 기성세대든 학교든 중고등학생에게 독서를 강요합니다. 하지만 정작 '써봐야 한다'는 논의는 이뤄진 적 없습니다. '창작의 길'을 걸으려는 청소년들을 위한 논의도 지금껏 없었습니다.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문해력 부족 문제'가 어쩌면 여기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 더스쿠프 Lab. 리터러시가 '청소년의 달' 5월을 맞아 창작을 꿈꾸는 중고등학생들이 느끼는 '문예창작환경'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약간 거친 글이지만, 학생들의 생각을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윤문 과정을 최소화했습니다.
청소년이 문학을 한다고 하면 어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입시 준비를 강요받는 이 시점에서 단순히 책을 읽는 것도 아닌 창작을 하겠다고 말하면 선뜻 동의해주는 기성세대가 있을까.
답을 찾기 전에 '문학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기록된 문학이란 뜻은 '언어를 표현매체로 하는 예술 및 그 작품'이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몰락이다. 난 문학이 아무것도 없는 모래벌판 속 오아시스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사막의 오아시스가 왜 몰락이냐"고 묻는다면 난 "오아시스를 찾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오아시스를 갈망하면서 찾아다닐 때 느끼는 절망감ㆍ자괴감 등이 내가 문예창작을 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많은 이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오아시스의 물을 그대로 마시면 사람은 이내 죽는다. 물 속 바이러스와 세균을 인체가 이겨내지 못해서다. 끝없는 고통 속에 오아시스를 찾으면 공교롭게도 그 끝엔 죽음이 있다. 그래서 난 글을 쓸 때 오아시스의 절망감을 되새긴다. 나는 몰락한 자들의 이야기를 주로 쓴다. 청소년에게도 문학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문학을 향한 갈망은 몰락이다.
오지만디아스(Ozymandias)를 아는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가 창작한 소네트(유럽의 정형시)다. 고대 이집트 제19왕조 제3대 파라오 람세스 2세의 그리스어에서 기원했다.
고대의 땅에서 온 여행자에게 들은 얘기일세.
돌로 만들어 거대하지만 몸통은 없던 두 다리가
사막에 서 있었다네. 그 옆의 모래밭에
부서진 두상이 반쯤 묻혀 있었는데, 찌푸린
얼굴과 입술에 차디찬 미소를 띠고 있었지.
그 조각가에게 말하더군, 죽은 돌덩이임에도
그가 자신의 손과 마음을 바쳐 조소한 열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남아 드러난다고.
그리고 그 주춧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이라.
이 몸의 위업을 보라, 강한 자들아. 그리고 절망하라!
그 옆엔 아무것도 없었네. 무너져 닳아버린
뭉툭하게 삭아버린 그 엄청난 잔해의 주위로,
끝이 없고 황량하며,
외롭고 평탄한 모래벌판이 멀리까지 뻗어 있었네
오지만디아스 중엔 '그 옆엔 아무것도 없었네. 뭉툭하게 삭아버린 그 엄청난 잔해의 주위로, 끝이 없고 황량하며, 외롭고 평탄한 모래벌판이 멀리까지 뻗어 있었네'라는 구절이 있다. 현재의 외롭고 평탄한 모래벌판은 어쩌면 이 시대의 청소년 창작자가 문학에 느끼는 감성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을 못 버는 직업 1위가 시인이란 글을 봤다. 이 시대에 글을 쓰는 게 옳은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내 대답은 여전히 '그렇다'였다. 나에게 시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벗어나기 어려운 모래벌판 위를 걷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문학을 사랑하는 '문청'이기 때문에 나는 이 시대에도 종이와 펜을 잡고 시나 소설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디서도 문학을 하는 청소년이 있음을 상상하고 배려해주진 않는 듯하다.
문학은 내 감정을 상대방에게 옮길 수 있는 매체다. 이 점에서 나는 문학이 바이러스라고도 생각한다. 오아시스 깊숙이 숨어있는 바이러스. 바이러스는 혼자서 증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숙주 세포 내에서 복제하며 살아간다. 청소년 중 누군가가 대표 숙주가 된다면 청소년 개개인이 생각하는 문학의 방향이 더욱 다양해지지 않을까. 또 그렇다면 나는 내가 숙주가 되는 것을 결코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홍수빈 청소년 작가지망생
su0714bin@naver.com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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