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주는 병원 찾아 메뚜기처럼 전국 뛰어다녀…100일간 뭐했나"

천선휴 기자 2024. 5. 2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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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 100일…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 인터뷰
"갈 길 정한 전공의 복귀는 말장난…빨리 대책 내놔야"
26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의 보호자가 대기하고 있다.2024.5.26/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지금 환자들끼리 여기는 몇 달 걸린다, 저기는 몇 달 걸린다 정보 공유하면서 전국을 메뚜기처럼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지경이 되도록 100일 동안 뭘 한 겁니까?"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전공의들이 떠난 지 100일이 지나도록 환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져만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한 건 없다. 전공의는 돌아오지 않았고, 정부는 "의료대란은 없다"는 말만 되뇌였다. 그 사이 환자들은 고통 속에 피폐해져갔다.

김 대표는 "현재 환자들의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방 항암'이 늘어난 것과 항암 부작용에 대한 처치 문제를 꺼냈다.

'가방 항암'은 항암 치료를 받는 암 환자들이 치료제와 치료제를 정맥에 주입하는 기구를 가방에 챙겨 다니며 직접 항암 치료를 한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김 대표는 "원래 입원해서 해왔던 것들인데 집에서 항암주사를 맞으라고 하고 있다"며 "항암치료 후도 문제다. 부작용으로 흉수나 복수가 차는데 물이 차면 정확하게 바늘을 삽입해 빼줘야 한다. 과거엔 전공의들이나 숙련된 분들이 해왔던 걸 이젠 할 사람이 없으니 배에 배액관을 꽂아 달고 다니게끔 한다"고 말했다.

항암 치료를 하다 생긴 부작용들로 가까운 병원을 찾아도 이들을 선뜻 받아주는 곳을 찾기는 힘들다.

김 대표는 "소화제 정도 주는 거면 몰라도 문제가 생기면 본인들이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데 어떤 병원이 그걸 감당하고 치료하려고 하겠나"라며 "특히 흉수, 복수가 차서 빼낼 때 잘못 꽂으면 염증도 생기고 문제가 발생하는데 집 근처 병원급들 가봐야 응급실에서 받아주지도 않는다"고 토로했다.

2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오가고 있다. 2024.5.21/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김 대표가 대변하고 있는 암 환자 등 중증질환자들이 다니던 상급종합병원들은 모두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터라 이번 의료공백 사태에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빅5 병원만 해도 전체 의사 수 대비 전공의 비율이 40%에 육박했다. 의대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이탈하면서 외래진료는 이전 대비 50% 넘게 줄어들고, 응급을 제외한 수술 횟수도 크게 축소됐다.

그럼에도 정부는 "의료대란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27일에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도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전체 입원환자는 증감을 반복하며 매주 조금씩 회복하는 추세"라며 "전주 대비 4% 증가했고, 평상시의 95% 수준"이라고 말했다. 중환자실 입원환자 수는 평시의 96% 수준, 응급실 내원환자 수도 82%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환자들은 정부의 이 같은 발표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대체 뭐가 차질없이 돌아가는 것이냐"며 "지금 대형병원에서는 신규 암 환자는 하나도 받지 않고 있고 정상 치료를 받는 것도 30%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도권 대형 병원에서 거부당한 신규 환자들은 2차 병원이나 지역 병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김 대표는 이 마저도 포화상태라 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많다고 했다.

김 대표는 "2개월~3개월 대기는 기본인데 정부는 이걸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며 "병원에서 환자를 안 받아서 잘 돌아간다는 게 정상이라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정부는 의료공백 사태 이후 전공의 의존도를 낮춘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전날에도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료개혁특위) 산하 '전달체계·지역의료 전문위원회' 제2차 회의를 열고 지금의 비상진료체계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 등 상급종합병원 운영 혁신방안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의료공급·이용체계를 안착시키는 로드맵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 대표는 "100일이 지났다. 환자는 고통 속에 버텨왔다"며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바꿀 거였으면 이미 병원들과 얘기가 다 끝났어야 하는 것 아니냐. 이 와중에도 전공의 돌아오라고 하는 건 정부가 말장난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매달 2만 명의 신규 암 환자가 발생하는데 스트레스 받아서 암 환자가 더 늘어날 것 같다"며 "전공의도 정부도 각자 갈 길을 정해놓았으니 이제 앞뒤 안 맞는 말은 멈추고 실행을 해달라"고 강조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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