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문건]⑥ 블랙요원 법정 증언 "이재명 위한 대납 아닌 北 통전부 상납 자금 추정"

봉지욱 2024. 5. 2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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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요약

① 검찰의 반박은 "<대북송금 800만 달러=이재명을 위한 대납> 뒷받침하는 국정원 문건 다수 존재"  

② 문건 작성한 블랙요원 법정 증언 "경기도 스마트팜 비용 대납 아닌 통전부 상납 자금이라 생각" 

③ 김성혜 통전부 실장 잇따른 돈타령에 '자금의 성격과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대북 공작 실행 

④ 기대와 다른 블랙요원 답변에 당황한 검사 "어쨌든 들은 얘기를 보고서에 적은 것 아니냐" 

뉴스타파는 김성태 쌍방울그룹 회장의 '800만 달러 대북 송금' 사건의 실체를 담은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비밀 문건을 입수해 지난 20일부터 연속 보도하고 있다. 오늘(29일)은 국정원 2급 비밀 보고서를 작성한 블랙요원 김 씨가 문건 내용을 두고 검사와 법정 공방을 벌인 사실을 공개한다. 검사는 국정원 문건이 범죄를 입증할 물증이라고 봤지만, 요원 김 씨의 대다수 답변은 검사가 기대한 내용이 아니었다.

검찰 "국정원 문건 중 불법 대북송금 뒷받침하는 내용 제외하고 보도"

검찰은 '김성태가 북에 보낸 800만 달러=경기도 스마트팜 비용(500만)+이재명 방북 비용(300만)'이라고 주장한다. 뉴스타파 보도 후, 수원지검은 지난 22일자 입장문에서 "불법적으로 유포된 (국정원) 문건 중 불법 대북송금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내용을 제외하고 주가조작에 대한 일방적 주장만을 편집해 보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오늘 기사에서는 검찰이 주장하는 '불법 대북송금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내용'이 과연 무엇인지 제시하고,그게 정말 검찰의 수사를 뒷받침하는 내용인지를 검증한다. 

검찰이 말하는 '불법 대북 송금 경위에 대한 많은 내용'은 2018년도 10~12월에 블랙요원 김모씨가 작성한 보고서 4건을 지목한 걸로 보인다. 실제로 문건에 적힌 일부 문구만을 보면 쌍방울이 경기도를 대신해 스마트팜 비용 500만 달러를 대신 내준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문건을 작성한 요원 김 씨의 법정 증언은 대부분 검사가 기대했던 내용과 거리가 멀었다.  

검찰이 국가정보원에서 2023년 5월 19일에 압수한 문건의 목록. 공문 1건(증제번호 11)을 제외한 13건은 블랙요원 김 씨가 작성했다. 이 중 3건은 2급 비밀로 분류됐다. 지난해 5~6월 검찰은 국정원에 대한 두 차례 압수수색을 통해 대북 송금 관련 보고서 총 45건을 제출받았다.  
2018년 12월 3일자 국정원 보고서 1쪽. 블랙요원 김 씨가 작성했다. 협조자 안부수가 중국에서 김성혜, 이호남 등을 만나고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이다. 

통일전선부 실세 김성혜의 잇따른 자금 요청 "200~300만불만 해달라"  

검찰 수사 내용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국정원 문건 4건은 위 압수 목록에서 빨간색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는 보고서 4건(증제번호 9~10, 12~13)이다. 검찰은 문건 작성자인 요원 김 씨가 이 보고서들에 대해 어떻게 설명했는지 말하지 않고 있다. 요원 김 씨는 지난해 6~7월에 두 차례에 걸쳐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신문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2018년 12월 3일 요원 김 씨가 작성한 보고서 제목은 '협조자의 김성혜 일행 심양 접촉 결과'(증제번호 9)다. 54(안부수)가 김성혜 통일전선부 책략실장과 이호남 정찰총국 공작원 등을 만나고 돌아온 직후에 김 씨를 만나 D/B(디브리핑 : 공작 결과보고)한 내용이다. 안부수는 2018년 6월경부터 국정원의 협조자로 활동하며 공작비를 받았다.

2018년 12월 3일자 국정원 보고서 4쪽. 블랙요원 김 씨가 작성했다. 협조자 안부수가 중국에서 김성혜, 이호남 등을 만나고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이다. 이날 김성혜는 경기도 스마트팜 약속이 진척이 없다면서 안부수에게 200~300만 불을 해달라고 처음 요청했다. 

보고서 3쪽에는 [김성혜, 경기도와의 협력사업 부진에 따른 불안감 표출]이란 소제목이 보인다. 안부수가 김성혜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을 김 씨에게 보고한 것이다.

▲김성혜는 이화영 경기부지사가 10월 말 방북 시 황해도 시범농장 사업 등 여러 협력 사업을 약속했음에도 진척이 없다고 지적 ▲협조자가 이에 대해 대북 제재로 인해 경기도가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하자 ▲김성혜는 이 부지사 말을 믿고 상부(김정은)에 보고한 후 황해도 금송농장을 시범농장으로 지정하여 2천 명의 돌격대가 조직된 상태에서 (진전이 없어) 이를 추진한 내가 어렵게 되었다고 언급한데 이어 ▲12.1 귀북 시 심양 공항에 배웅나간 협조자(안부수)의 손을 잡으면서 "친구로서 부탁하는데 상황이 어렵다. 시범농장 사업을 추진해야 하니 200~300백만불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는 내용이다. 

2018년 12월 9일자 국정원 보고서 3쪽. 블랙요원 김 씨가 작성했다. 김성혜가 최초로 자금을 요청한 건 12월 1일이다. 이로부터 8일 뒤에 안부수는 중국으로 가서 김성혜와 전화 통화를 했고, 통화 내용을 국정원에 보고했다. 이때 통화에서 김성혜는 또 다시 안부수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안부수의 통화 발언은  요원 김 씨가 사전에 멘트를 지정해 준 것이다. 김성혜가 요구한 자금의 규모와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요원 김 씨가 대북 공작을 실행한 것이다.   

불과 일주일 뒤, 김성혜는 안부수와의 통화에서 또 다시 돈을 달라고 요청했다. 2018년 12월 9일자 보고서 3쪽에는 안부수가 김성혜에게 "친구를 살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자금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말하자 김성혜가 "고맙다. 그러나 무리하지 말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적혔다. 

보고서만 보면 검찰의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안부수의 전언에 따르면 '경기도 이화영 부지사가 약속한 시범농장 사업이 진행이 되지 않아 내가 어려워졌으니 2-300만 불을 마련해 달라'고 김성혜가 자금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고서를 작성한 블랙요원 김 씨는 안부수가 전한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이는 법정에서 이뤄진 증인신문에서 드러났다.

요원 김 씨의 대북 공작 "김성혜가 왜 자꾸 돈타령 하는지 자금의 성격과 규모를 파악하라" 

지난해 6월 20일 증인신문에서 요원 김 씨는 "김성혜가 왜 자꾸 돈타령을 하는가 의문이 들었으며, 안부수에게 김성혜가 요구하는 자금의 규모와 성격을 파악하라는 임무를 협조자 안부수에게 하달했다"고 한다. 김성혜가 또 다시 돈을 요구하면 "친구를 살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자금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준비된 답변을 하라고도 지시했다. 보고서에는 담기지 않은 전후 상황이다.

요원 김 씨는 김성혜가 돈을 요구한 이유는 '경기도가 약속한 스마트팜'이 아니라, 이듬해 2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통일전선부가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거나, 윗선 상납을 위한 충성자금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금의 성격과 규모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아래는 검사의 질문과 김 씨의 답변 내용. 

○ 검사 : 증인은 안부수로부터 "내가 자금 마련에 고심 중인 김성혜에게 '노력 중에 있다. 친구를 살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자금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말을 하자, 김성혜가 "고맙다. 그러나 무리하지 말라"며 걱정을 하였다"라는 말을 듣고, 이를 문건에 기재한 것으로 보이는데, 맞나요?

● 요원 김 씨 : 예. 거기에 대해서 약간 설명이 필요한데요. 11월 말, 12월 초에 김성혜가 자꾸 돈타령을 하는데 제가 담당관으로서 '왜 자꾸 돈타령을 하는'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는 '자금의 성격과 규모가 뭔지 먼저 파악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요. 두 번째는 저희 국정원 고유의 업무입니다만, 북한 측의 중량감이 있는 인사가 어려움에 처해 있어 딜(거래)이 될 만한 규모나 시점이 된다고 하면...딜(거래)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해서 제가 안부수한테 12월 8일 중국에 가기 전에 자금의 규모와 성격을 계속 파악해보라는 임무를 줍니다. 그런데 '자금 마련에 고심 중에 있다'라는 건 그 얘기를 계속 끌고 가기 위해서 제가 안부수 회장한테 준 일종의 가장된 스토리였습니다. 지금 PPT 상단에 있는 '친구를 살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자금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으니 기다려달라'는 표현은 가장 스토리에 불과한데, 당연히 김성혜는 '고맙다'는 사의를 표명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12월 한 달 정도 자금의 규모와 성격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노력을 했었고, 그런 상황에서 나왔던 문건인 것 같습니다. 

- 2023년 6월 20일 국정원 요원 김 씨에 대한 비공개 증인신문

2023년 6월 20일 국정원 요원 김 씨에 대한 비공개 증인신문 법원 녹취서. 

요원 김 씨 "경기도 스마트팜 아닌 북미 정상회담 자금이나 통전부 상납 자금이라 생각" 

요원 김 씨는 이날 법정에서 문건 작성 배경을 설명 했다. 보고서의 내용은 안부수가 자신에게 전한 내용을 그대로 적은 것일 뿐이었다. 요원 김 씨는 김성혜가 경기도가 약속한 스마트팜 사업비를 주지 않아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다고 말한 사실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김 씨는 김성혜의 계속된 자금 요청에 다른 목적이 숨어있다고 보고 안부수를 통해 대북 공작을 벌였다. 당시 김성혜는 미국을 오가며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실무진이었다. 국정원 보고서에도 김성혜가 중국 북경에서 미국 측 인사를 만나고 돌아온 사실이 나와 있다. 이에 요원 김 씨는 검사에게 "북미 회담을 위한 거마비 혹은 통전부가 윗선에 상납하기 위한 자금일 것이라고 추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성혜가 돈을 요구한 진짜 목적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협조자 안부수와 결별했기 때문이다. 결별의 이유는 뉴스타파가 앞서 보도했듯 안부수가 김성태와 만나면서 주가 조작 가능성이 포착됐고, 이에 국정원 연루 가능성까지 우려됐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국정원 문건]③ 블랙요원 법정 증언 "쌍방울 주가조작, 다른 요원이 먼저 포착")  

이날 신문에서 검사는 요원 김 씨의 배경 설명에 크게 당황하는 듯했다. "어쨌든 안부수가 보고한 그대로 문건에 기재한 것 아니냐"고 김 씨에게 반복해서 물으며 강조했지만, 문건 속 내용은 들은 얘기를 그대로 전한 '전언'일 뿐이었다.  

아래는 검사의 질문과 김 씨의 답변 내용.

○ 검사 : 증인이 알아본 이 자금의 성격은 무엇으로 특정이 되었는가요?

● 요원 김 씨 : 특정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첫 번째로 제가 생각했던 것은 11월 말~12월에 북미회담을 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들이 회담에 참석을 하려고 할 때 움직일 수 있는 거마비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로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돈을 자꾸 요구하는 것은 통전부 측에서 중대한 임무를 띠고 어딘가로 움직이려고 하는 게 아닌가'라고 예측을 했었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아마 다른 문건에도 나올지 모르겠는데, 북한 사회는 철저하게 상납 구조라는 게 있습니다. 하부기관이 상부기관한테 자금을 만들어서 바치는 게 현실적으로 존재를 하는데, 그래서 '통전부 측에서도 상부에 돈을 바치기 위해서 이런 돈을 자꾸 만들려고 하지 않는가' 두 가지 정도로 추정을 하면서 알아본 과정에서 나온 겁니다. 
 
○ 검사 : 그게 사실의 여부를 떠나서 어쨌든 문건 상으로 안부수로부터 들은 명목은 '경기도가 약속했던 스마트팜 사업이 있는데, 그것을 들어주지 않아서 곤경에 처했고, 그래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실이지요?

● 요원 김 씨 : 조금 전에는 제가 배경 설명을 드린 것이고, 지금 문건에 나와 있는 그대로 이해를 하시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검사 : 거마비 등에 대한 내용은 증인께서 배경으로 추정을 해본 것이고 '경기도가 약속했던 스마트팜 사업을 지키지 않아서 곤경에 처했고 그렇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다'고 얘기한 것은 전언 자체로 문건에 나온 그대로지요? 

● 요원 김 씨 : 예. (안부수의) 전언 자체는 이 문건에 나와 있는 그대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 2023년 6월 20일 국정원 요원 김 씨에 대한 비공개 증인신문

2023년 6월 20일 국정원 요원 김 씨에 대한 비공개 증인신문 법원 녹취서. 

요원 김 씨의 판단은 "김성혜가 자금 요구하며 꺼내든 2천명 돌격대는 '전언'일 뿐, '첩보' 아냐" 

이날 법정에서는 '전언'과 '첩보'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전직 국정원 블랙요원의 설명에 따르면 "협조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적으면 '전언'이고 국정원 요원이 이 '전언'에 대한 확인을 거치면 '첩보'가 된다. 여러 요원들이 비슷한 첩보를 수집하면 교차 확인이 된 '정보'가 된다"고 한다. 

2018년 12월 3일자 보고서에는 김성혜가 경기도가 약속한 황해도 시범농장 사업이 김정은에게 보고가 됐고, 2천 명의 돌격대까지 조직이 됐다고 말한 사실이 적혀 있다. '2-300만 달러를 마련해달라'는 요청의 근거로, 안부수가 김성혜로부터 듣고 요원 김 씨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전언'일 뿐이라는 게 요원 김 씨의 설명이다. 증인신문을 지켜보던 재판장도 직접 '전언'과 '첩보'의 차이에 대해 김 씨에게 물었다.  

2023년 6월 20일 국정원 요원 김 씨에 대한 비공개 증인신문 법원 녹취서. 재판장이 직접 김 씨에게 질문했다. 

내일 주간 뉴스타파 '2급 비밀 문건과 요원의 법정 증언' 추가 공개

요원 김 씨의 법정 증언 내용은 국정원 문건 속 문장의 의미와 배경 설명이 더해졌단 점에서 중요하다. 검찰은 뉴스타파가 보도 중인 국정원 문건에 대해 '불법 대북송금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내용'이 있다고 주장했을 뿐 보고서를 작성자인 요원 김 씨가 설명한 문건의 의미와 작성 배경은 공개하지 않았다. 

더구나 검찰은 김 씨만 불렀을 뿐, 문건을 작성한 다른 요원들은 증인으로 부르지 않았다. 국정원 문건을 재판부가 증거로 채택했고, 뉴스타파가 검찰이 말하지 않는 문건 속 내용들을 밝히고 있는 만큼 나머지 요원들에 대한 증인 신문도 필요하다. 

뉴스타파는 내일(30일) 저녁 8시 주간 뉴스타파에서 요원 김 씨가 작성한 2급 비밀 문건을 추가로 공개한다. 위 문건 목록에 증제번호 12~13번으로 기재된 문건이다. 이 문건들은 2018년 12월에 작성됐는데, 협조자 안부수가 평양에 가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뒤, 다시 중국으로 나와 김성혜 실장을 잇따라 만나면서 파악한 은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김성혜는 안부수를 두 번 만났고, 한 번 통화했다. 더구나 평양까지 초청해서 김영철과도 만나게 했다. 당시는 2019년 2월 북미 베트남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이에 대한 요원 김 씨의 법정 증언도 내일 추가로 공개한다. 

뉴스타파 봉지욱 b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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