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토막 리뷰] 다이소 마법봉을 들고 세상을 둘러싼 악의를 물리치는 주문을 외치다
요술공주 샐리, 요술공주 밍키, 천사소녀 새롬이(마법의 천사 크리미마미),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빨간망토 차차, 마법기사 레이어스, 애천사전설 웨딩피치, 괴도 세인트 테일(천사소녀 네티), 카드캡터 사쿠라, 꼬마마법사 레미, 두 사람은 프리큐어,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어린 시절 남몰래 TV에서 마법소녀를 보며 동경한 적이 있는 기자와 같은 중년 남성이라면 관심을 가질만한 게임이 나왔다.
바로 크래프톤 산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렐루게임즈가 23일 스팀에 출시한 마법소녀 음성 역할 시뮬레이터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다. 제작사에 따르면 다소 심심한 이름이지만, 게임의 평가는 꽤 좋다.
화려한 의성어와 수식어로 점철된 제목으로 눈길을 끌어서인지 이미 많은 마법소녀가 게임을 구매했고, 스팀에서 '앞서 해보기 게임', 즉 얼리억세스로 출시 됐음에도 29일 현재 '매우 긍정적'(사용자 평가 100개 중 97%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리뷰만 보아도 '혼자 하지 말고 꼭 친구들이랑 모여서 한번만 해주세요 제발', '방송하시는 분들은 지금 당장 하셔야 할 게임입니다', '꼭 피시방에서 플레이 하세요!!! 재미가 두배입니다!!!!' 등 긍정적인 평가 일색이다.
마침 할인(6월 7일 할인 종료)도 하고 있고, 흥미로운 게임 리뷰도 필요한 기자는 크나 큰 관심을 갖고 게임을 설치했다. 그런데 아뿔싸. 이 게임은 게임만 설치한다는 되는 것이 아니라 마법봉(마이크)를 필요로 했다. 당장 다이소를 찾아 3000원을 주고 PC용 마법봉(마이크)를 주문했다.
다음으로 이 게임을 리뷰하기 전 중요한 것은 환경이었다. 마침 아들도 학교를 가고, 아내도 친구를 만나러 외출 중인 기회가 왔다. 마법소녀로 변신하기엔 최적의 환경이 갖춰졌다. PC에 마법봉을 연결하고, 인식이 잘 되는지 체크한 뒤 스팀을 켜고 게임을 클릭했다.
게임을 시작하면 흥겨운 음악소리와 함께 PPT에 사용하면 주목받을 것 같은 화려한 색감의 로고와 예쁜 교복을 입은 대머리 수염을 기른 아저씨, 렐루보험사 부장 김부장이 등장하는 타이틀 화면이 뜬다. 그리고 출산율 저하로 위기에 처한 세상에서 마법소녀가 부족해지자 소녀 외에 마법에 소질을 가진 이들을 찾기로 했다는 프롤로그가 나온다.
일단 그래픽은 확실히 화려하지만, 사실 정성스럽다고 보기는 어렵다. 캐릭터의 이미지 생성 및 배경, UI(유저 인터페이스) 등 이미지의 생성에 AI(인공지능)가 사용됐기 때문이다. 거기에 진중한 정자체가 이 게임이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려주는데, 적어도 AAA급 게임은 아님을 확실히 각인시켜 준다.
대신 그만큼 고사양을 요구하지 않아서 Intel Core i3-6100나 AMD FX-8350 CPU에 GTX 580, AMD HD 7870 급의 그래픽 카드가 최소 사양이자 권장사양이다. 물론 가격도 저렴하다.
게임을 시작하면 음성인식을 체크하는데,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인식한 음성을 기준으로 목소리의 크기, 톤 등을 체크하기 때문이다. 만일 여기서 큰 목소리로 주문을 외운다면 게임 내내 목이 터져라 외쳐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에 들어가면 마력을 감지하는 특수 능력을 지난 에이전트 *냥(실제 캐릭터 이름)과 만나 마법소녀로 변신하는 주문 "샤랄라 나날이 예뻐지는 나 자신. 너무나도 소중해!"을 외치게 된다.
그리고 곧 악의를 정화하는 사건을 접하게 된다. 사건의 범인은 얼굴은 예쁘지만 알고 보면 할머니의 연금을 몰래 갈취하는 사기범. 그녀는 얼굴이 예뻐서인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정화하는 마법소녀의 활약이 펼쳐진다.
여기까지 진행하면 좋은 마법봉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기자가 구입한 것은 저렴한 마법봉이기 때문인지 꽤 노이즈가 생겨 큰 목소리로 외치게 되면 음성인식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꼼수일 수도 있는데, 마법에 진심을 담는 것은 나중으로 하고, 첫 음성 인식 때 너무 큰 목소리 보다는 평소의 조용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는 것이 좋다.
얼굴 예쁜 사기범을 정화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전 마법소녀 어르신과의 전투가 펼쳐지게 되는데, 여기서부터가 본편이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자세하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게임을 하다보면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워야 하는 파트도 있고, 빠르게 주문을 외워야 하는 파트도 나온다.
게임 전 물 한잔을 옆에 가져다 놓고 진행하는 것도 좋고, 평소 담배를 피워서 성대의 상태가 좋지 않다면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 무언가를 옆에 두고 진행하는 것도 좋다.
아직 얼리억세스 단계이기 때문인지 전 마법소녀 어르신을 물리치고 나면 일단 게임은 끝난다. 기자는 여기까지 진행하는 것만 해도 마력이 부족해서인지 5번이 넘는 재도전 과정을 겪어야 했다. 제작사에 따르면 현재는 김부장님의 초기 활동만 게임화하였으며, 추후 더 많은 사례들이 추가될 예정이다.
스토리가 끝났지만, 이 게임은 무려 e스포츠의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온·오프라인 대전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소심한 기자는 온라인 대전까지는 진입하지 못했고(이미 온라인에는 뚜어난 마법소녀들이 날고 기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오프라인 대전을 혼자서 경험해 보았다.
오프라인 대전은 가족, 연인과 함께 즐길 수 있게 건전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고를 수 있고, 상대가 외치기 어려워할 그리고 본인이 엘레강스하게 외칠 수 있을 것 같은 단어 키워드를 설정한 뒤 주문력을 겨룰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상대의 정신력을 모두 고갈시킨 마법소녀가 승리하게 되는데, 이 게임을 얼마 전 끝난 '플레이X4'에서 시연했다면 상당한 인기를 끌었을 것 같다.
다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게임에서 처음부터 주문을 진심을 담아 외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흡연과 음주로 인해 성대 상태가 좋지 않은 김부장이라면 나중에 콜록이며 자신의 한계를 안타까워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 게임을 종료하면서 드는 생각은 음성인식 게임의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이다. 마법소녀 지망생들을 이 게임을 통해 끌어들였다면 다음으로는 용자 로봇 매니아들을 끌어들이는 게임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3000원 짜리 슈퍼로봇 음성인식 조정간을 들고 "파이널 퓨우~ 전!", "모 야메룽다! 소코다! 이케! 판네루!", "태권브이, 정의의 정권 가르기!"를 외치는 용자가 될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두근거리는 전국의 용자들이 있을 것이고, 바다 건너 일본 진출도 가능할 것 같다. 어쩌면 미래의 E스포츠는 더 이상 마우스를 현란하게 움직이며 QWER 조합으로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 아니라 마이크를 들고 상대의 정신을 유린하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이동근 마니아타임즈 기자/edgeblue@hanmail.net]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report@maniareport.com
Copyright © 마니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