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작 연대 확실한 책거리 민화 처음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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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술동네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옛 그림이 책거리 그림이다.
작가로 추정되는 이름과 19세기 말 제작연대가 명확하게 확인되는 10폭짜리 책거리 그림 병풍이 최초로 발견됐다.
미술품 전문 운송보관업체 더 프리포트 서울이 최근 고미술시장에서 입수해 소장해온 이 작품은 국내에서 확인된 모든 민화와 궁중회화, 책거리 그림을 통틀어 처음으로 제작연대가 명기된 책거리 민화 병풍으로 다채로운 구성과 조형미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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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술동네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옛 그림이 책거리 그림이다. 조선 말기 이름 모를 화가들이 책장이나 바닥에 쌓인 책과 물건을 내키는대로 붓질해 그린 민화인데, 최근 미국과 유럽 등지의 미술관 순회전을 하면서 한국 전통회화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작가로 추정되는 이름과 19세기 말 제작연대가 명확하게 확인되는 10폭짜리 책거리 그림 병풍이 최초로 발견됐다. 민화 전문가인 정병모 전 경주대 교수(한국민화학교 교장)는 ‘광서(光緖) 15년’(1889년) 연대가 적힌 책가도 병풍을 최근 한겨레에 공개했다. 미술품 전문 운송보관업체 더 프리포트 서울이 최근 고미술시장에서 입수해 소장해온 이 작품은 국내에서 확인된 모든 민화와 궁중회화, 책거리 그림을 통틀어 처음으로 제작연대가 명기된 책거리 민화 병풍으로 다채로운 구성과 조형미가 눈길을 끈다.
이 병풍 제7폭 아래에 ‘광서15년 기축 4월 금파신간’(光緖十五年己丑四月錦波新刊)이란 내용의 간기(책을 펴낸 연대와 내력을 적은 기록)가 보이는데, ‘1889년 4월 금파가 새롭게 간행하다’란 뜻이다. ‘신간’(新刊)이란 용어는 이 그림이 1889년 직후 제작됐음을 일러준다. 정 교수는 간기 중 ‘금파’(錦波)를 간행한 인물의 호로 추정했으나 현재로서 어떤 인물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승려인 화승이나 출판사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병풍의 주된 이미지가 책을 넣는 책갑과 주전자, 부채, 화병, 화분 등 기물들이 다양한 모양과 패턴으로 장식된 점도 돋보인다. 제작연대가 확인되는 만큼 유사한 계통을 지닌 다른 책거리 민화의 연대를 가늠할 수 있는 편년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다.
이 병풍에서 기물의 이름과 용도를 알려주는 정보도 처음 확인됐다. 책거리에는 여러 기물이 등장하지만, 이름은 물론 용도도 알 수 없는 것이 많아 그동안은 추정해서 불러왔다. 이와 달리 이 병풍에는 각 기물 옆에 매화장(梅花幛·매화를 넣는 용기), 화분(花盆), 붕어연적(鵬魚硯滴), 대모반(玳瑁盤·거북 등껍질로 만든 그릇), 문왕정(文王鼎·발이 세개 달리 중국 고대의 제례용기), 봉주전자(鳳酒煎子·봉황모양 주전자), 대선(大扇·큰 부채), 시종(時鐘·시계), 산호편(珊瑚鞭∙산호로 만든 채찍) 등 명칭이 표기됐다.
책거리에 늘 등장하는 유(U)자형 물고기는 붕어이고 용도는 연적이라는 것, 정으로 알았던 기물이 주나라 문왕 때 오동(烏銅∙검붉은 구리)으로 만든 문왕정이란 화로였다는 것 등도 이번에 확인됐다. 또 봉황 모양 주전자를 봉주전자라 부르고, 유리창에 매화를 넣은 것은 매화장이라고 하며, 산호편에 달려있는 것이 시종, 즉 시계라는 점도 파악됐다.
이 병풍그림 안에 펼쳐진 공간과 사물이 상상력에 바탕해 표현된 것도 특징적이다. 전통적인 다시점을 활용하여 사물을 여러 각도로 나타낸 것은 입체파 화가인 피카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역원근법, 평면투시법, 평행투시법, 상향투시법, 하향투시법 등 시점이 다양하고 입체적이다. 칸막이를 가볍게 뚫고 지나가는 비현실적인 표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기물이 무중력 상태로 공중에 떠 있는 구성도 나타난다. 정 전 교수는 “민화를 대표하는 책가도 장르에서 연대와 기물명이 구체적으로 확인됐고, 다른 작품들의 편년까지 할 수있는 실물자료가 최초로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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