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성장애 아들이 세상과 공존하려면

한겨레 2024. 5. 2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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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아들(자폐성 장애)과 지하철을 탔을 때 일이다.

'아들의 시선'을 장착하고 다시 한번 바라본 지하철.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치 그러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아들이 지하철 안에서 승객들과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과 익숙해지기까지 걸린 시간 단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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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애&비장애 함께 살기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아들(자폐성 장애)과 지하철을 탔을 때 일이다. 붐비지 않을 시간이라 곳곳에 빈 좌석이 있었다. 아들을 앉히려는데 아들이 몸에 힘을 주고 버텼다. 서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지하철을 처음 봐서 그런 듯했다. ‘아들의 시선’을 장착하고 다시 한번 바라본 지하철. 아~ 레드카펫처럼 보이겠구나. “어서 와~ 가운데 길게 뻗은 줄은 너를 위한 거야”.

아들이 레드카펫을 걷고 싶어 용을 쓰는데 고민했다. 손을 놓을까 아니면 잡아끌어 자리에 앉힐까. 손을 놓았다. 강제로 자리에 앉혔다 텐트럼(분노 발작)이라도 일어나면 같은 칸 승객들에게 더한 민폐가 될 것 같았다.

엄마의 물리적 힘에서 벗어난 아들이 뛰듯이 걷듯이 자신을 위해 마련된(아들 눈엔 그렇게 비쳤을 것이다) 레드카펫(가운데 선)을 오가기 시작했다. 신나는 마음에 “아갸갸갸~”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양쪽으로 흔들면서, 아들은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공간을 오갔다.

아들 바로 뒤에는 내가 바짝 붙어 따라다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앉아 있는 승객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여러분, 걱정마세요. 만약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제가 즉시 개입할 거예요!’

곧장 시선이 따라 꽂혔다. 아들이 이쪽으로 가면 모든 시선이 이쪽을 향했고 아들이 저쪽으로 가면 모든 시선이 저쪽을 따라 흘렀다. 그렇게 아들을 향해 따라붙는 시선. 어디를 가나 늘 받는 시선. 익숙해졌지만 익숙해지지 않고 싶은 시선. 그런데 어느 순간 지하철 안의 풍경이 생경해짐을 느꼈다. 뭐지? 이 낯선 느낌은?

따라붙는 시선이 사라졌다. 지하철 안은 내가 평소에 알던 지하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휴대전화 보는 사람들, 다정한 연인, 큰소리로 전화하는 누군가. 그 사이를 아들이 왔다갔다 하는데 아무도 시선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의자에 앉아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휴대전화를 보던 한 청년은 아들이 앞을 지날 때쯤엔 무릎을 구부려 발을 집어넣고 아들이 지나가면 다시 발을 앞으로 뻗었다. 내밀고 집어넣고, 집어넣고 내밀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치 그러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아들이 지하철 안에서 승객들과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전율이 왔다. 단 5분이었다. 아들이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과 익숙해지기까지 걸린 시간 단 5분. 이날 경험은 이후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칠 만큼 강한 인사이트를 제공했고, 이날 에피소드는 연극으로도 제작돼 현재 정동극장에서 ‘음악극, 섬’이란 제목으로 공연 중이다.

서로에게 익숙해진다고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함께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특수학교 다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주말마다 세상으로 나가 돌아다니는 이유, 아들이 세상을 익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만 세상 사람들도 아들에게 익숙해지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야 먼 훗날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아들은 세상과 공존해 살아나갈 수 있다.

류승연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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